공정위, 러시아 전쟁 이후 가격 정보 교환 조사
SK에너지와 HD현대오일뱅크가 약 4년간 휘발유·경유·등유의 판매가격 관련 정보를 교환하고 일부 가격을 담합했다는 혐의로 공정거래위원회의 심의를 받게 됐다.
공정위 사무처는 7일 SK에너지와 HD현대오일뱅크의 휘발유·경유·등유 담합 사건에 대한 심사보고서를 위원회에 제출하고 두 회사에 송부했다고 밝혔다.
심사보고서에는 심사관이 조사 과정에서 파악한 행위 사실과 위법성 판단, 제재 의견 등이 담겼다. 심사보고서가 위원회에 제출되고 피심인들에게 송부되면서 해당 사건의 심의 절차가 개시됐다.
다만 심사보고서는 심사관의 의견으로 공정위 위원회의 최종 판단을 구속하지 않는다. 향후 독립된 위원회 심의를 거쳐 법 위반 여부와 제재 수준이 최종 결정된다.
공정위 심사관은 두 회사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직전인 2022년 2월부터 미국·이란 전쟁 직후인 올해 3월까지 약 4년간 휘발유·경유·등유의 입금가와 확정가, 판매정책 등 가격 관련 정보를 교환한 것으로 판단했다.
또 미국·이란 전쟁 이후에는 판매가격인 입금가를 두 차례 담합한 것으로 판단했다. 심사관은 이 같은 행위가 공정거래법상 가격담합과 정보교환 관련 규정을 위반한 중대한 행위에 해당한다고 보고 시정조치와 과징금 부과 의견을 제시했다.
이번 행위의 영향을 받은 관련 매출액은 약 44조1천억원으로 심사관은 추산했다. 하루 평균으로는 약 300억원 규모다. 다만 이 금액은 담합이 최종 확정돼 발생한 매출액이 아니라 심사관이 해당 행위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산정한 관련 매출액이다.
국내 휘발유·경유·등유 시장은 정유사가 원유를 수입·정제해 생산한 제품을 직접 판매하거나 주유소·도매업체 등을 통해 공급하는 구조다. 지난해 기준 SK에너지, HD현대오일뱅크, GS칼텍스, S-OIL 등 4개사가 전체 시장의 약 98%를 차지했다.
SK에너지의 시장점유율은 28.1%, HD현대오일뱅크는 21.0%로 두 회사의 합산 점유율은 49.1%다. 공정위는 GS칼텍스와 S-OIL에 대해서는 담합 가담을 입증할 증거가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정유사와 주유소 등 거래처는 사후정산 방식으로 석유제품을 거래한다. 주유소는 정유사가 우선 정한 입금가를 기준으로 제품을 공급받고, 정유사가 다음 달 초 전월 거래에 최종 적용할 확정가를 결정하면 입금가와 확정가의 차액을 정산한다.
입금가는 정유사가 주유소 등에 석유제품을 공급할 때 우선 적용하는 가격이며, 확정가는 이후 최종적으로 적용되는 가격이다. 정유사가 정하는 가격과 판매정책은 주유소의 판매가격과 소비자가격에 영향을 줄 수 있다.
공정위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국제유가가 급변한 상황이 두 회사의 가격 관련 정보 교환을 시작하게 된 계기 중 하나로 작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공정위에 앞서 검찰도 두 회사의 가격 담합 혐의를 수사해 재판에 넘겼다. 검찰 수사 과정에서는 두 정유사 임직원이 공정위 현장조사 일정을 미리 파악하고 전산 자료와 메신저 대화 등을 삭제했다는 증거인멸 의혹도 제기됐다.
공정위의 조사 정보 관리와 관련해 오행록 공정위 카르텔조사국장은 감사담당관실에서 관련 조사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공정위 내부에서 정보가 유출된 것은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SK에너지와 HD현대오일뱅크는 향후 공정위 심의 과정에서 사실관계와 법률적 쟁점에 대해 적극적으로 소명하겠다는 입장이다.
SK에너지는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하고 있으며 전원회의 등 심의 절차에 성실히 참여해 사실관계와 회사 입장을 충실히 소명하겠다고 밝혔다.
HD현대오일뱅크도 심사보고서 상정을 무겁게 받아들이면서도 아직 심의 절차의 시작 단계인 만큼 향후 사실관계와 법률적 쟁점에 대해 충실히 소명하겠다고 밝혔다.
HD현대오일뱅크는 교환된 정보가 이미 시장에 공개됐거나 다양한 경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사후 정보였으며, 회사의 가격 및 판매정책 결정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또 미국·이란 전쟁 이후 입금가 담합 혐의에 대해서도 경쟁사 관계자의 일방적인 진술에 근거한 것이라며 담합 사실을 부인했다.
두 회사는 심사보고서 수령일로부터 8주 이내에 서면 의견을 제출하고 증거자료의 열람·복사를 신청할 수 있다. 공정위는 방어권 보장 절차가 종료되는 대로 위원회를 열어 법 위반 여부와 구체적인 제재 수준을 최종 판단할 예정이다.
이번 사건은 국내 정유시장의 높은 시장집중도 속에서 가격 관련 정보 교환과 가격 합의가 경쟁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가 핵심 쟁점이 될 전망이다. 다만 현재 단계에서는 심사관의 판단이 나온 상태인 만큼 최종적인 법 위반 여부와 제재 수준은 공정위 전원회의 심의를 통해 결정될 예정이다.
뉴스웨이 김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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