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탕·밀가루 등 잇단 담합 적발···가격 인상 명분도 흔들대표 직접 사과·재발방지 약속···신뢰 회복은 행동으로

식품 가격이 오를 때마다 따라붙는 말이 있다. 원재료 가격이 올랐고 환율과 인건비 부담이 커져 가격 조정이 불가피하다는 설명이다. 소비자에게 반가울 리 없지만 기업의 비용이 늘었다면 가격 인상 자체를 무조건 문제 삼기도 어렵다.
이 설명이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한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기업이 말하는 비용 부담과 가격 결정 과정을 소비자가 믿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원재료 가격이 올랐다는 말을 믿어야 이를 제품 가격에 반영할 수밖에 없었다는 설명도 납득할 수 있다.
그런데 올해 식품업계에서 벌어진 일들은 이 전제를 흔들었다. 설탕에 이어 밀가루와 전분·전분당까지 주요 식품 원재료 시장에서 담합이 잇따라 적발됐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이들 품목에 부과한 과징금만 1조8000억원을 웃돈다.
설탕과 밀가루, 전분당은 과자와 빵, 음료, 소스 등 수많은 가공식품에 들어간다. 식품기업들이 가격 인상 배경으로 가장 먼저 꼽아온 것도 원재료 부담이었다. 그런데 정작 그 원재료 시장에서 업체들이 가격과 거래 조건을 함께 정한 사실이 드러났다.
물론 담합이 있었다고 해서 그동안의 모든 식품 가격 인상이 부당했다고 볼 수는 없다. 국제 원재료 가격과 환율이 오르면 제조원가가 높아지는 것은 사실이다. 인건비와 물류비까지 늘어난 상황에서 비용 상승분을 제품 가격에 반영하는 것도 기업의 경영 판단이다.
문제는 가격 인상의 필요성과 별개로 이를 받아들이는 소비자의 시선이다. 그동안에는 원재료 가격이 올랐다는 설명이 가격 인상의 근거가 됐다면 이제는 그 가격부터 제대로 결정된 것이 맞느냐는 의문이 따라붙게 됐다. 반복된 담합이 남긴 것은 과징금만이 아니라 기업이 내놓는 설명에 대한 불신인 셈이다.
최근 국정감사에서 김찬호 CJ제일제당 대표와 이운익 삼양사 대표가 직접 사과한 것도 이런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특히 CJ제일제당은 관련 협회 탈퇴와 경쟁사 접촉 관리, 가담 임직원 인사조치 등 재발방지책까지 내놨다. 잘못을 인정하고 책임 있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신뢰를 되찾기 위한 첫 단계다.
하지만 식품 가격을 둘러싼 의혹은 끝나지 않았다. 공정위는 최근 CJ제일제당과 대상, 오뚜기 등을 상대로 다시 현장조사에 나섰다. 이번에는 김치와 두부, 유지류, 선물세트, 즉석밥류, 장류 등 소비자가 직접 구매하는 제품의 가격 결정 과정이 대상이다.
아직 조사 단계인 만큼 담합 여부를 예단할 수는 없다. 다만 원재료에 이어 완제품 가격까지 공정위가 들여다보는 상황 자체가 식품업계에는 가볍지 않다. 앞선 담합으로 흔들린 신뢰를 회복하기도 전에 소비자가 다시 가격 결정 과정을 의심하게 됐기 때문이다.
기업이 가격을 올리는 데는 이유가 있다. 원가가 오를 수도 있고 환율과 인건비 부담이 커질 수도 있다. 가격 인상이 불가피한 순간도 분명 있다. 그러나 아무리 타당한 이유가 있어도 소비자가 이를 믿지 못한다면 설명은 힘을 잃는다.
그동안 식품업계는 가격을 올릴 때마다 왜 올릴 수밖에 없는지를 설명해왔다. 이제는 설명을 하나 더 보태는 것만으로 부족하다. 소비자가 그 설명을 믿을 수 있도록 만드는 일이 먼저다. 대표가 고개를 숙이고 재발 방지를 약속한 것은 시작일 뿐이다. 담합이 다시 반복되지 않고 가격이 공정한 과정을 거쳐 결정된다는 것을 보여줘야 사과에도 무게가 실린다.
원가 상승에 따른 가격 조정은 불가피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설명이 받아들여지려면 가격을 결정하는 과정부터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 반복된 담합으로 생긴 불신을 또 다른 설명으로 해소하기는 어렵다. 이제는 말이 아닌 행동으로 소비자의 신뢰를 되찾아야 할 때다.
뉴스웨이 김다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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