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비·설비투자 선행···양산 물량 불확실신규 공급사 가격 경쟁···투자비 회수도 난항정부 제도 개선·대기업 지원책, 상생 생태계 조성 나서
K방산이 수주잔고 120조원의 호황을 누리고 있지만 중소 협력사들은 웃지 못하고 있다. 무기체계 개발비는 먼저 투입해도 양산 물량을 확보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고 신규 업체와의 가격 경쟁까지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형 방산업체의 수출 성과가 공급망 전반의 성장으로 이어지려면 중소기업에 집중된 개발 부담과 불공정한 거래 관행부터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6일 한국방위산업학회에 따르면 올해 3분기 말 기준 국내 방산업체 빅4(한화에어로스페이스·현대로템·LIG D&A·한국항공우주)의 수주잔고는 약 120조원에 달한다.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 방위산업의 위상도 높아지고 있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가 집계한 최근 5년간 글로벌 무기 수출 시장에서 한국의 점유율은 직전 5년간 2.6%에서 3.0%로 상승했다. 주요 방산 수출국으로서 존재감을 키우고 있는 셈이다.
실적 역시 성장세를 뒷받침하고 있다. 올해 1~3분기 방산 빅4의 합산 누적 매출은 약 32조7000억원, 영업이익은 약 3조7400억원으로 집계됐다. 대규모 수주를 바탕으로 생산과 수출이 확대되면서 국내 방위산업의 외형과 수익성이 함께 커지고 있다.
문제는 이 같은 호황이 산업 생태계 전반으로 확산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형 방산업체들이 수주 확대와 실적 개선의 성과를 거두는 것과 달리 중소 방산업체들은 늘어난 사업 기회만큼의 성장 효과를 체감하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중소 협력사들이 겪는 대표적인 어려움은 연구개발 단계에서 발생하는 선투자 부담이다. 대형 방산업체에 부품이나 장비를 납품하려면 완성 무기체계의 개발 일정과 기술 기준에 맞춰 제품을 먼저 개발해야 한다. 양산 단계에서 납품 기회를 확보하기 위해 협력사가 자체적으로 연구개발비와 시설 투자비를 투입하는 구조다.
실제 수출용 무기체계는 작은 부품부터 대형 장비까지 수많은 구성품이 결합된 완성품 형태로 제작된다. 각 부품이 설계와 공정 기준에 맞춰 정확하게 작동해야 전체 무기체계의 성능과 신뢰성을 확보할 수 있다. 이 때문에 협력사들은 체계 개발 초기부터 제품 개발과 시험·검증에 참여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이 과정에서 중소기업의 자금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 양산 납품을 전제로 개발에 참여하더라도 실제 물량 확보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개발을 마친 뒤에도 신규 공급사와 가격 경쟁을 벌여야 하는 경우가 있어 양산 참여 여부와 투자비 회수 가능성을 장담하기 어렵다. 개발에 투입한 자금이 운전자본에 장기간 묶이면서 다른 사업에 투자할 여력까지 줄어드는 문제도 발생한다.
결국 중소 협력사들은 양산 참여를 기대하며 연구개발과 설비 투자에 먼저 자금을 투입하지만, 개발 성과가 실제 납품으로 이어질 수 있는 제도적 안전장치는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대형 방산업체의 수주가 늘어도 협력사들이 안정적인 물량과 수익을 확보하지 못하면 방산 호황의 온기가 산업 전반으로 확산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업계에 뿌리내린 거래 관행도 중소기업의 성장을 가로막는 요인으로 거론된다. 대형 방산업체 간 경쟁과 갈등이 협력사 선정 과정에까지 영향을 미치면서 중소기업들이 기술력과 경쟁력만으로 사업 기회를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한 중소 방산업체 관계자는 "방산업체들 사이에 갈등이 생기면 편을 나눠 중소기업들을 줄 세우는 일이 있다"며 "기업 간 경쟁 자체는 당연하지만 이런 관행이 굳어지면서 기술력 있는 업체들도 사업에 참여할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정부도 이러한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제도 개선을 논의하고 있다. 방위사업청은 업체 간 갈등을 줄이고 공정한 경쟁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방위산업발전법 개편을 검토하고 있다. 기업 간 경쟁을 통해 기술 수준을 높이는 동시에 불필요한 갈등으로 사업 추진에 차질이 발생하지 않도록 제도적 기반을 정비하겠다는 취지다.
대형 방산업체들도 협력사 지원을 통한 생태계 강화에 나서고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협력사가 연구개발이나 부품 국산화 과제를 직접 제안하면 개발비와 시설 투자를 지원하고, 개발 성과가 검증된 업체에는 양산 참여 우선권을 부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협력사의 초기 투자 부담을 낮추는 동시에 기술 경쟁력을 갖춘 기업이 안정적으로 공급망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구상이다.
해외 시장 진출 지원도 추진한다. 해외 전시회 공동 참가를 비롯해 해외 연구개발(R&D)·생산·물류 인프라 공유, 수출 금융 지원, 현지 정착에 필요한 인력과 기술 지원 등을 통해 협력사들의 글로벌 사업 확대를 돕겠다는 계획이다.
이 밖에도 주요 방산업체들은 파트너스데이와 연구개발 지원금 약정식 등을 개최하며 협력사와의 상생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단순한 납품 관계를 넘어 기술 개발부터 해외 진출까지 협력 범위를 넓혀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려는 움직임이다.
앞으로는 이 같은 지원책이 협력사의 실질적인 부담 완화와 사업 기회 확대로 이어지는지가 관건이다. 연구개발에 참여한 업체의 양산 선정 기준과 물량 배정 원칙, 개발비 회수 조건 등이 명확해져야 중소기업도 후속 투자와 생산 계획을 안정적으로 수립할 수 있다. 지원금이나 금융 지원을 넘어 개발 성과가 지속적인 매출과 수익으로 연결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정부 관계자는 "중소 방산업체 지원 정책을 알리기 위해 설명회를 개최하고 매년 안내서를 발간하는 등 현장과의 소통을 이어가고 있다"며 "앞으로도 방산 생태계 육성과 방위산업 활성화를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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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웨이 이건우 기자
redfield@newsw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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