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3일 토요일

  • 서울 3℃

  • 인천 2℃

  • 백령 7℃

  • 춘천 2℃

  • 강릉 5℃

  • 청주 2℃

  • 수원 4℃

  • 안동 2℃

  • 울릉도 8℃

  • 독도 8℃

  • 대전 2℃

  • 전주 2℃

  • 광주 3℃

  • 목포 6℃

  • 여수 8℃

  • 대구 4℃

  • 울산 9℃

  • 창원 7℃

  • 부산 9℃

  • 제주 11℃

정경호 “왜 그래? 심심해? ‘맨홀’ 보면 되잖아!!!”

[인터뷰] 정경호 “왜 그래? 심심해? ‘맨홀’ 보면 되잖아!!!”

등록 2014.10.17 10:40

김재범

  기자

공유

사진 = 김동민 기자사진 = 김동민 기자

인터뷰 장소에 들어섰다. 소속사 관계자들이 있었고 그들은 강아지 두 마리를 돌보고 있었다. 잠시 후 안에서 나온 이 배우는 반갑게 인사를 건낸 뒤 얼릉 강아지를 안고 보듬어 주고 있었다. 꼭 아빠가 갓난쟁이 자식을 안고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이었다. 딱 그렇게만 보였다. 눈빛도 아주 푸근하고 순진해 보였다. 외모는 어떤가. 사실 이 배우가 기분 나빠할 수 도 있겠다. 하지만 실제 너무 마른 체형에 바람만 불어도 훅하고 날아 갈 것 같았다. 가지런히 정리된 머릿결은 윤기마저 나는 듯했다. 옷은 반듯한 캐주얼이다. 그냥 한마디로 모범생의 표준 스타일이다. 그런데 이 배우가 희대의 살인마라니. 그것도 도심 속 지하 세계를 지배하는 어둠의 제왕이란다. 영화 속 그 모습이 궁금하다고. 나직한 목소리에 거침없는 행동과 눈빛은 오금마저 저리게 만든다. 영화 ‘맨홀’ 속 배우 정경호다.

개봉 뒤 언론과 대중이 바라본 ‘맨홀’에 대한 평가를 호불호가 극명했다. 여러 이유가 많았지만 그 가운데 정경호의 살인마 연기에 대한 악평은 단 한 줄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사실 ‘맨홀’은 흥행 여부를 떠나서 극중 살인마 ‘수철’에 대한 평가가 높을 수밖에 없었다. 평소 정경호와 영화 속 ‘수철’의 반전 이미지는 관객들의 머릿속을 혼란스럽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군대에서 정말 생각이 많아졌어요. 배우 생활에 대한 고민을 참 많이 했죠. 내 나이에 어떤 연기를 하고 어떤 배역을 할까. 또 내 나이가 아니면 못하는 배역 등등. 여러 경우의 수를 두고 상상을 좀 많이 해봤어요. 그리고 제대 후 ‘롤러코스터’ ‘무정도시’를 촬영하면서 그 고민을 좀 구체화하기 시작했죠. 평범하지 않은 캐릭터와 작품에 대한 매력을 느껴보자였어요. 우선 내가 갖고 있는 선한 이미지를 완벽하게 깨버릴 기회를 찾고 싶었죠. ‘맨홀’이 그때 왔구요.”

사진 = 김동민 기자사진 = 김동민 기자

정경호는 사실 ‘맨홀’의 스토리 라인에 끌렸던 점은 없었단다. 캐릭터인 ‘수철’에 대한 관심이 좀 더 컸던 게 ‘팩트’다. 하지만 진짜 ‘팩트’는 연출을 맡은 신재영 감독에 대한 믿음이 그를 사로잡았단다. 그는 영화의 흥행 여부를 떠나 신 감독에 대한 믿음이 대단했다. 다음 작품도 꼭 신 감독도 함께 하고 싶다고 한다. 시기만 맞는다면.

“주변에서 너무 쎈 배역이라 반대로 분명히 있었죠. 그런 쎄고 악한 이미지라서 그냥 덥썩 물었던 것도 절대 아니에요. 데뷔 감독님이라는데 시나리오상의 색깔이 너무 확고했어요. 그림에 대한 느낌도 상당히 구체적이었죠. 감독님이 만드신 단편과 중편을 구해서 봤는데, 정말 독특했어요. 그냥 ‘이분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하시는 분일까’란 질문이 떠올랐고 만났는데 그냥 영화만 생각하시는 분이에요. 그냥 ‘믿고 가자’는 생각이 단 번에 들었죠.”

신 감독과 함께 정경호는 ‘수철’에 대한 이미지를 구체화 시켜나가기 시작했다. 영화 촬영 두 달 전부터 수많은 대화를 통해 수철을 창조해 나갔다. 머리카락 하나부터 발끝까지 정경호는 점차 수철이 되어 갔다. 이날도 영화 속 대사를 눈앞에서 선보일 때는 온몸이 섬뜩해지는 묘한 경험을 했다. 특유의 순딩이 얼굴과 자신을 ‘멸치’라고 농담하는 정경호지만 대사 한 마디에 그는 순식간에 수철로 돌변했다.

사진 = 김동민 기자사진 = 김동민 기자

“수철이란 인물이 실제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만화잖아요. 하하하. 아니 혹시 있을 수도 있겠단 생각을 해보기는 해요.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일이 현실에서도 벌어지는 데. 감독님과 제가 일치를 본 부분은 수철을 이유가 있는 악인으로 그리느냐, 아니면 절대 악인으로 그리는가의 경계선이었는데. 나름대로 사연을 담고 가자는 거였죠. 무지막지한 인물이기에는 제가 풍기는 이미지와 영화 속 주제가 좀 어긋날 것 같았어요. 감독님이 저를 선택한 이유도 행동에 이유가 있을 것이란 모습 때문이라고 하셨죠.”

그렇게 만들어진 수철은 극강의 섬뜩함으로 스크린을 지배했다. 우리 주변에 항상 있는 맨홀 속을 점령한 채 사람들을 하나 둘씩 빨아 들였다. 가끔씩은 자신이 연기하는 수철의 모습에 끔찍함을 느껴 자신도 놀랐다고. 스스로야 상대 배우를 때리고 끌고 다니고 죽이고를 반복하니 그다지 어려울 것은 없었다고 농담을 한다. 하지만 자신에게 당한(?) 배우들은 오죽했겠냐며 미안해한다.

“새론이나 유미 모두 같은 회사 식구들이라 너무 친해요. 그런데 영화 속에선 그렇게 죽일려고 눈에 불을 켜고 쫒아 다니느라 되게 미안했죠(웃음). 저랑 결투를 벌이는 최덕문 선배도 진짜 고생하셨어요. 맨홀 안에서 저한테 얻어맞고 이리 쓰러지고 저리 부딪치고. 어휴. 아 진짜 고생은 빈우 누나에요. 사실 영화 속에서 빈우 누나를 죽이는 장면에선 저조차도 좀 끔찍했죠. 그 장면에선 진짜 기분 이상해지더라구요. 다시 절대 못할 장면이에요. 에휴.”

사진 = 김동민 기자사진 = 김동민 기자

너무 힘든 경험이었기에 다시는 살인마 연기를 못할 것 같다고 손사래를 친다. 정경호는 차라리 노출 연기를 하라면 하겠다며 웃었다. 악역 특히 살인마 연기 같은 감정 소모가 심한 역할은 배우의 에너지를 바닥까지 비워야 한다며 고개를 저었다. 앞으로 5년 정도는 살인마와는 안녕이란다.

“친한 (하)정우형이 ‘추격자’에서 살인마 연기를 한 걸 보면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제가 경험해 보니깐 알겠더라구요. 악역은 사실 의도적으로 배우가 힘을 줄 수밖에 없어요. 거의 무의식적으로 힘이 들어가요. 그럴때마다 감독님이 잘 이끌어 주시죠. 저 같은 경우도 진짜 괴물과 어느 정도의 사람 같은 모습의 경계선을 잘 타야 하는 톤이 있었어요. 몇몇 장면은 너무 사람같이 나와서 편집된 것도 많아요. 좀 아쉬웠죠. 아무튼 앞으로는 그냥 노출연기로 도전을 해볼까 해요(웃음). ‘무정도시’에선 거의 매회 벗었는데요 뭘. 하하하.”

그는 ‘맨홀’의 촬영 현장 에피소드를 전하며 촬영 당시의 즐거움을 전하는 데 바빴다. 끔찍하고 기억하기 싫은 섬뜩함이 넘쳐나는 영화지만 현장만큼은 애교와 해피가 넘쳐났단다. 우선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워낙 친한 동료들과의 작업이고, 정경호 자체가 확실하게 선을 그을 줄 아는 성격 때문이기도 했다.

사진 = 김동민 기자사진 = 김동민 기자

“제가 당연히 능력이 모자란 게 있겠죠. 전 역할에 빙의돼서 고통 받으시는 선배님들 보면 ‘난 언제 저렇게 될까’란 생각만 들어요. 전 ‘컷’ 소리만 나면 그냥 ‘정경호’로 돌아오니. 하하하. 장르가 공포 스릴러라서 그렇지 현장은 완전히 코미디 영화 촬영장이었어요. 질질 끌려가다가도 ‘컷’소리 나면 킥킥거리고 웃고. 진짜 웃긴 건 주사 맞은 거죠. 아이고 배야. 하하하.”

정경호와 스태프들은 촬영 들어가기 전 혹시 모를 불상사를 대비해 예방주사를 맞았단다. 영화 속에서 몇몇 장면은 실제 맨홀을 이용해 촬영했다. 여러 질병에 노출될 염려가 있었다. 하지만 그 다음이 완전 코미디였다고. 정경호는 이 얘기에 포복절도했다.

“주사를 맞고 보통 2주 뒤에 항체가 생긴다고 하더라구요. 그런데 우린 바로 다음 날 촬영을 시작했어요. 다들 ‘대체 우리 주사 왜 맞은거냐’고 폭소를 터트렸죠. 뭐 큰 부상이나 사고 없이 촬영을 끝냈으니 웃고 넘길 에피소드죠 한정된 예산에 스케줄을 맞추려니 어쩔 수 없었어요.”

사진 = 김동민 기자사진 = 김동민 기자

정경호는 영화 속 ‘맨홀’에 대해 ‘끔찍하다’고 한 마디로 정의했다. 냄새와 느낌 그리고 축축하고 어둑한 느낌이 주는 공포감이 워낙 컸다고. 실제 ‘맨홀’에서 찍은 장면은 영화 속에 등장하는 장면 중 세 손가락에 꼽는단다. 촬영 허가도 나지 않을뿐더러 사고 위험 때문에 찍을 수도 없었다고. 대부분은 세트에서 찍었단다. 하지만 자신이 경험한 ‘맨홀’은 묘한 느낌을 전해왔단다.

“가끔은 지금도 집 근처를 지날 때 맨홀을 보면 좀 이상한 기분이 들어요. 혹시 저 안에 누가 있을까. 누가 날 보고 날 노리는 건 아닌가 하고. 되게 웃기죠. 하하하. 근데 진짜 영화 자체의 독특함과 색깔은 보장할 수 있어요. 소재의 독특함과 그 안에서 벌어지는 얘기. 더군다나 ‘맨홀’은 우리 주변에 어딜 가나 있잖아요. 서늘한 가을, 극장가에서 진짜 서늘함 한 번 느껴보세요. ‘맨홀’로 오시죠. 제가 초대합니다.”

사진 = 김동민 기자사진 = 김동민 기자

정경호의 장난스런 초대 멘트. 그가 손짓을 하면서 웃는 모습에 언뜻 ‘맨홀’ 속 수철이 보이는 것 같았다. “왜 그래, 심심해?”라며 영화 속 대사를 다시 한 번 읊조렸다. 어느덧 ‘맨홀’ 속 수철의 아지트에 갇힌 느낌이다. 영화 ‘맨홀’ 그리고 배우 정경호였다.

김재범 기자 cine517@

관련태그

뉴스웨이 김재범 기자

ad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