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개봉 전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전지현을 만났다. 상기된 얼굴의 전지현은 1000만 ‘도둑들’을 함께 한 최동훈 감독과의 두 번째 작업에 기대감이 컸다. 이미 그는 ‘암살’ 합류시기부터 최 감독에 대한 무한 신뢰가 있었다. 전지현 정도의 배우라면, 아니 그저 전지현이라면 작품에 대해 ‘이것도 저것도 제면서’ 소위 ‘간’을 보고 또 봐도 누구하나 뭐랄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 상대가 천하의 최동훈 감독이라도. 하지만 그는 이번 ‘암살’과의 특별한 만남을 전했다.
“아마 처음 말씀드리는 것 같아요. 저 시나리오도 나오기 전에 감독님한테 ‘암살’ 얘기를 전해 듣고 ‘출연하겠다’고 말씀드렸어요. 최동훈 감독님이라면 그냥 믿었고, 앞으로도 믿어요. ‘도둑들’때 너무 기분 좋은 경험을 해서 그랬을 것 같아요. 당시에 내가 좋은 것, 싫은 것, 애매한 것까지 그냥 다 잘 맞았어요. 감독님이 날 이용하시는 법을 알고 계세요. 저 스스로가 모르는 전지현에 대해서. 너무 감사하고 그저 무한 신뢰를 보낼 수밖에 없어요(웃음)”
그는 ‘도둑들’때의 묘한 경험을 전했다. 촬영 당시 한 번은 모니터 앞에 앉아 있던 최 감독이 숨이 차도록 뛰어오더란다. ‘지현씨, 숨도 쉬지 말고 연기해라’고 디렉션을 준 뒤 다시 모니터로 뛰어갔다고. ‘숨도 안 쉬고 어떻게?’라며 피식 웃었단다. 좀 더 호흡을 짧게 가져가면서 대사를 쏟아냈다. 모니터 후 자신의 변화에 스스로가 놀랐다고.
“연기가 너무 새롭게 다가왔죠. 사실 그래서 ‘암살’에 대한 스스로의 기대감도 더 컸던 것 같아요. 이번엔 감독님과 어떤 경험을 할까. 여기에 ‘안옥윤’이란 인물의 매력이 더욱 크니 ‘무조건 가자’란 생각만 들었죠. 한국영화에서 나오기 힘든 캐릭터잖아요. 저격수, 웨딩드레스를 입고 피가 낭자한 가운데도 총격전의 중심에 선 인물, 정말 멋지잖아요. 여자들도 예쁘게 보이고 싶은 게 본능이지만, 때론 멋져 보이고 싶은 욕구도 분명히 있잖아요.”
전지현은 캐릭터 접근 방식을 두고 ‘도둑들’ 때와는 정반대로 도전했다. ‘도둑들’은 캐릭터가 주인공인 잔칫상 같은 영화였다. 그는 ‘예니콜’을 연기하면서 인물에 대해 하나 둘씩 무언가를 쌓아나갔단다. 하지만 ‘암살’ 속 안옥윤은 정 반대였다. 인물을 만들어 나갈수록 하나씩 지워나갔다. 최동훈 감독도 전지현의 이런 점을 지지해줬단다.
“‘도둑들’은 강한 캐릭터이기에 인물로서 어필해야 할 부분이 정말 많았어요. 이게 보이니깐 이런 점도 있었고, 그런 점을 복합적으로 더해나갔죠. 하지만 ‘암살’의 ‘안옥윤’ 정 반대였어요. 우선 시대를 알아야하는 점이 있었죠. 시대를 이해하면서 그 안에의 사건이 중심이 되는 스토리 구조라서 캐릭터의 확실한 부분만 남기도 좁혀나갔죠. ‘예니콜’은 캐릭터만 확실하면 되지만 ‘안옥윤’은 시대적 공감 위에 살아 있는 인물이라 이런 방식을 취했어요.”
그렇게 탄생된 전지현의 ‘안옥윤’은 특별했다. 끔찍한 가족사의 비극, 독립에 대한 죽음을 불사한 열망, 여기에 살인청부업자와 설명되지 않는 로맨스까지 더해졌다. 연기에 연기가 더해져야 하는 캐릭터다. 하지만 전지현은 보이는 것 대부분을 지워나갔다고 했다. 감정의 깊이가 측정되기 힘든 인물인데 말이다. 그의 설명은 간단했다. 이유가 분명했다.
“지워나간 캐릭터를 중심으로 연기조차 하지 말아야겠단 생각이 들었죠. 사실 그 점이 제일 어려웠어요. 보여줄게 너무 많은 인물인데, 너무 많은 그 것을 다 보여주면 ‘안옥윤’이 관객들의 뇌리 속에서도 지워질 것이라 생각했어요. 결국 ‘암살’이란 극단적 상황 속에서 관객들도 숨이 막힐 듯한 긴장감을 느껴야 한다면 내가 캐릭터에서 벗어나야 겠더라구요. 단순했어요. 내가 욕심을 버리자. 그게 해답이더라구요.”
다소 어둡고 무거운 느낌의 ‘암살’이지만 액션을 빼놓고는 또 ‘암살’을 말하기도 힘들었다. 전지현은 이번 영화 속에서 5kg에 가까운 기다란 장총을 한 손에 들고 건물 옥상을 이리저리 뛰어 넘고 날라(?) 다닌다. 이미 ‘도둑들’에서 와이어 액션은 차고 넘칠 정도로 경험했다. 과거 ‘블러드’란 영화에선 ‘뱀파이어 헌터’로 출연하면서 액션에는 도가 튼 경험까지 맛을 봤다.
“‘블러드’ 준비하면서 액션을 잘하고 싶어서 운동을 시작했죠. 지금도 매일 하루 1시간 반 정도는 꾸준히 근력과 유산소 운동을 해요. 그런데도 이번 ‘암살’은 정말 힘들더라구요. 하하하. 우선 뭔가를 항상 들고 뛰어다녀야 하잖아요. 더군다나 ‘안옥윤’이 특급 저격수에요. 총에 대해선 프로페셔날로 보여야 하니깐. 아마추어 같이 보이기 싫었죠. 처음에는 모형총을 쓰려고 했는데 너무 티가 나서 나중에는 그냥 총을 들고 뛰었죠. 촬영을 하고 다음 날 일어났는데 온 몸에 누구한테 얻어맞은 것처럼 아프더라구요. 하하하.”
재미있는 질문 하나, ‘암살’은 무려 140분에 가까운 러닝타임이다. 전지현이 거의 대부분의 흐름을 이끌고 간다. 전문 저격수이다 보니 총기 액션이 상당하다. 한국영화에선 보기 힘든 액션이 많다. 만약 최동훈 감독이 ‘지현씨, 출연 분량 전체를 다시 찍어야 한다’고 제안한다면. 정말 죽어도 다시 찍기 싫을 정도로 혀를 내둘렀던 장면이 있을까. 그는 이 질문에 박장대소를 하며 웃었다. 그는 아주 의외의 장면을 꼽았다.
“아이고, 그걸 다시 찍어야 한다고요. 휴 진짜 고민되네요. 글쎄, 어떤 장면이 힘들었지? 사실 액션은 어느 정도 감수했던 부분이고, 운동을 꾸준히 해서 그런지 별로 안힘들었어요. 하하하. 조진웅 최덕문 두 선배가 현장에선 ‘대장님’이라고 불러서 진짜 묘하게 힘도 났고. 아! 있어요. 제가 의외로 기다리는 걸 못해요. 암살단과 경성역에 들어와서 검문소를 통과하는 장면인데, 그 장면만 하루 종일 찍었어요. 나중에는 ‘우리 언제 넘어가냐’며 다들 푸념까지 했었다니까요. 하하하. 감독님이 의외의 장면에서 이상한 집착이 있으세요. 하하하. 불과 10여m 전진하는 데 24시간이 넘게 걸렸으니(웃음)”
그는 드라마 ‘별그대’와 ‘도둑들’ ‘베를린’의 연타석 홈런포를 기록했다. 전지현이란 브랜드의 강력함도 있겠지만, 오롯이 작품운으로만 그 행운을 돌렸다. 대중들의 관심이 그 밑바탕에 있었기에 지금의 전지현이란 이름도 가능한 것 아니냐며 당연스럽게 말한다.
“사실 정말 뜻밖의 흥행작은 ‘베를린’이었어요. 너무 어두웠잖아요. 건방진 말일수도 있지만 ‘될까?’란 생각이 강했죠. 그런데 너무 잘되더라구요. ‘별그대’는 정말 ‘암살’ 결정 뒤 잠시 시간이 남아서 선택했었어요. 하하하. 근데 ‘별그대’가 제 드라마 첫 주연작인건 모르셨죠? 하하하. 사실 ‘별그대’는 박지은 작가님에 대한 신뢰가 커서 선택했죠. 그런데 이게 영화와는 너무 틀려요. 나중에는 거의 실시간으로 촬영이 진행됐으니. 또 천송이가 대사가 얼마나 많아요. 그게 묘한게, 시간이 지나니깐 대사가 머릿 속에 그림처럼 떠오르더라구요. 캐릭터 빙의? 그거 경험해 봤어요(웃음)”
스타 전지현으로 살아온 세월보다 이제 그에겐 ‘아내’ 전지현이란 타이틀도 더해졌다. 그와 함께 대중들의 시선도 좀 더 부드러워졌다. 그것을 전지현 본인이 더욱 살갑게 느끼고 있단다.
“예전에는 ‘네가 얼마나 잘하나 보자’란 시선이 강했다면 지금은 좀 부드러워 지신 것 같아요. 저도 좀 편하게 다가서는 법을 배운 것 같고, 이것도 연륜인가? 하하하. 결혼이 이 모든 것의 정답은 아니지만 하나의 방법이 된 것만은 사실이에요. 여유가 생긴 것 같아요.”
김재범 기자 cine517@
뉴스웨이 김재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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