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운아이드걸스(이하 브아걸)의 제아와 솔로의 제아, 진짜 모습은 누구일까.
최근 인터뷰를 위해 서울 강남구 한 카페에서 제아를 만났다. 그는 자연스럽게 의자에 앉아 인사를 건넸다. 잠시 말이 없던 제아, 긴장을 했나 싶었지만 그건 인터뷰 자리가 편하다는 증거였다.
인터뷰는 솔직하고 담백하게 진행됐다. 조잘조잘 시끄럽고 과장된 수다가 오간 것도 아니고 어색함을 깨려 일부러 취하는 리액션도 없었다. 간간히 큰 웃음이 오갔으며 친구처럼 내숭 없는 표현도 흘러나왔다.
대화를 나누다 보니 브아걸 제아와 솔로 제아를 굳이 단호한 이분법으로 나누려던 생각이 아차 싶었다. 털털한 모습도, 당연할 수 밖에 없는 연륜도, 그리고 슬프고 외로운 감성도 모두 제아 한 사람인데 말이다. 브라운관을 통해 비춰지는 제아의 이미지만을 떠올리면 안됐다.
◆ ‘나쁜 여자’가 봄과 잘 어울리는 이유
“3년 만에 나왔는데 많이 기다려준 팬들에게 좋은 선물을 들려주고 싶어서 두 곡을 준비했어요. 긴장되지는 않는데 너무 오랜만이라 ‘예전에는 어떻게 했지’하고 기억이 안 나는 게 많아서 해야 할 게 많네요.”
제아는 지난 15일 자정 새 싱글앨범 ‘나쁜 여자’를 발매했다. 이번 앨범은 2013년 발매한 첫 솔로앨범 ‘저스트 제아(Just JeA)’ 이후 3년 만이다. ‘나쁜 여자’는 다른 사람이 생겨 이별을 고하는 여자의 심정을 담은 노래다. 브라운아이드소울의 정엽이 피처링으로 참여하고 유니크노트와 공동 작곡 작사했다.
제목만 보면 브아걸 활동에서 보여준 세고 당당한 이미지를 표현한 노래 같지만, 사실은 정반대다. 자신이 헤어짐을 택하는 건데도 스스로 상처받고 힘들어하는 여자의 모습을 담은 것. 이에 제아는 “정엽이 작사를 했기 때문에 내 이야기라고 할 수는 없지만 마음이 아픈 것에 대한 공감대는 있다”고 설명했다.
‘나쁜 여자’는 가사를 한 줄 한 줄 음미하며 들어야 더욱 와닿는다. 특히 ‘가끔 바람도 펴봐요/가끔 나쁜 거짓말도 해봐요/늘 그렇게 나만 보지 말고/다른 곳도 쳐다봐요’라는 가사는 화자의 심경을 그대로 대변한다.
“이건 곡과 가사가 같이 나와서 딱 맞는 곡이에요. 정엽오빠가 하는 가게까지 찾아가서 가사 첫 줄만 바꾸면 안되냐고 말했는데, 그러면 엣지가 없어진다고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웃음)”
그만큼 섬세한 감정에 집중했다는 증거다. 그래서인지 제아는 이번 앨범을 두고 ‘밝은데 슬픈 봄’이라고 표현했다. 이게 무슨 모순인가 싶을 수 있지만, 찬찬히 곱씹어보다 보면 왠지 알 것도 같다.
“독특하게도 이번 앨범이 봄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어요. 봄에서 여름 넘어갈 때 좀 기분이 꾸물꾸물한데 그때 들으면 더 좋지 않을까 싶었죠. 그래서 재킷도 심지어 핑크이고, 뮤직비디오에서도 발라드에서 잘 안 쓰는 컬러를 쓴 거에요.”
“또 아침햇살이 밝은데 슬픈 느낌 있잖아요? 다 행복한데 나만 그렇지 않은 느낌. 이 곡이 밝은 느낌의 슬픔으로 다가왔어요. 어두우면서 슬픈 것보다 밝으면서 슬픈 게 더 강렬하다고 생각해요.”
다른 수록곡 ‘눈물섬’은 시간이 흘러도 잊을 수 없는 사랑과 그 쓸쓸한 그리움을 버려진 섬에 빗대어 그린 곡이다. ‘나쁜 여자’와 같은 슬픈 발라드 감성을 담고 있지만 내용은 정반대다.
공통점이 있다면 공감과 여성성. 더 나아가 여성의 입장에서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노래다. 이에 대해 제아는 “첫 번째 솔로앨범 타이틀곡은 장황했다. 그때 나에게 다가오지 못한 사람들이 공감하고 다가왔으면 좋겠다. 대중성과 내 색깔을 동시에 보여주려고 한 앨범이다”라고 밝혔다.
“발라드는 드라마 OST 등으로 많이 보여줘서 생소하진 않을 거에요. 이번 앨범에서 보여주고 싶은 건 여성성이에요. 더 나아가 여자들이 공감할 만한 내용이라 거기에 주목해서 들어줬으면 좋겠어요.”
‘눈물섬’은 제아가 2010년경 유럽 여행을 다녀온 직후 작곡한 노래다. 여행을 할 때 혹은 심정의 변화가 있을 때 악상이 주로 떠오른다는 그는 ‘눈물섬’을 가장 아끼는 곡 중 하나라고 말했다.
“예전에 발표한다고 했다가 회사에서 거절당한 노래에요. 그래서 이번에 꼭 내겠다고 했어요. 그런데 다들 ‘눈물섬’이 ‘나쁜 여자’보다 더 좋다고 하는 거에요! 그래서 제가 회사에 ‘그것 보라고, 내가 그러지 않았냐고’ 했죠. (웃음) 재조명됐으면 하는 곡이에요.”
본인이 표현하고 싶은 것들을 응축해낸 앨범이어서 그런 것일까. 제아는 음원 성적보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대중에게 다가갈 수 있을까를 더 고심했다.
“지난 앨범 타이틀곡이 좀 어렵긴 했죠? 선공개했던 곡보다 성적이 좀 안 좋았는데 내 자식이 어디 가서 사랑 받지 못한 것처럼 신경 쓰이긴 하더라고요. (웃음) 그래서 이번 앨범 역시 성적이 신경 쓰이지만, 차트에 오르는 것보다 많이 불러주는 노래가 됐으면 좋겠어요. 빅마마의 ‘체념’이나 이은미의 ‘애인있어요’처럼 노래방에서 여자들이 많이 부르는 노래요.
◆ 굳이 제아를 알려고 애쓰지 않아도
제아는 참 다재다능하다. 솔로앨범을 내기 이전부터 브아걸 앨범과 다른 가수의 곡에 직접 참여했는가 하면, 대학교수로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가르치는 것에 큰 뜻이 있지는 않았어요. 종종 기회가 있었던 거에요. 그런데 가르침을 놓고 싶지 않은 게, 거기서 배우는 게 상당하거든요. 잊고 있던 것을 찾게 되고 저도 공부하고 있는 입장인데, 가르치면서 배워 나가고. 그게 중요한 것 같아요. 가르치는 일은 놓지 않고 계속 쥐고 가고 싶어요.”
“어떤 것들을 배우냐”고 물었더니 제아는 “학생들이 의도치 않게 희한한 방향으로 실력이 늘어갈 때 희열이 있다. 그런 친구들에게 좋은 영향을 받는 것 같다”고 답했다.
이런 배움은 대학 강단에서만 느낀 것은 아니었다. 제아는 최근 케이블채널 Mnet ‘프로듀스 101’을 통해 실력과 인간미를 동시에 지닌 트레이너로서 활약했다.
“방송을 하면서 친구들의 놀라운 성장속도를 보고 깜짝 놀랐어요. 솔직히 첫 날 연습생들을 봤을 때 느낌은 트레이너들 모두 ‘어떡하지’ 이런 느낌이었어요. 그런데 회를 거듭하면서 거짓말 같이 다들 늘더라고요. 눈에 익어서 그런 건지 모르겠는데 그러다 보니 더 예뻐 보이기도 했어요.”
‘프로듀스 101’에서 제아는 연습생들에게 단호한 지적과 따끔한 훈육으로 가르침을 줬다. 다른 호랑이 선생님들에 비해서 훨씬 부드럽고 친절했다. 물론 다른 이들도 강단 있게 혼도 내고 애정을 갖고 대했지만, 유독 제아가 연습생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남달랐다.
연습생들의 꿈이기도 한 걸그룹 활동을 하고 있어서 그런 것일까. 그만큼 진심으로 연습생들을 대하는 따스함이 전해졌다.
이날 역시 제아는 최종 11인에 뽑혀 곧 데뷔를 앞두고 있는 아이오아이(I.O.I)에게 “아이돌 멤버 이름까지 많은 분들이 아는 경우는 드물다. 그만큼 좋은 조건에서 출발을 하는 건데, 으쌰으쌰해서 초심 잃지 않고 활동하는 동안 잘 해냈으면 좋겠다”며 “그간 고생도 많이 했고 연습기간이 긴 친구들도 많아서 빛을 봤으면 좋겠다”고 진심 어린 조언을 건넸다.
이제 막 시작하려는 파릇파릇한 후배들을 보면 감회가 남다를 수 밖에 없다. 제아가 속한 브아걸은 어느덧 올해로 데뷔 10주년을 맞았다. 위기도 전성기도 겪으며 긴 시간을 쉼 없이 달려왔다.
“10년 전에는 얼굴 없는 가수로 시작해서 우리가 연예인이 되고 알려질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어요. 지금으로부터 10년이 흐르더라도 그렇게 많이 달라지지 않고 더 활발히 활동하면 좋겠어요. 오래 활동하시는 분들 보면 참 존경스러워요. 저도, 저희도 그렇게 아름답게 음악하고 싶어요.”
이런 음악을 향한 열정과 욕심은 인터뷰 동안 자연스럽게 드러났다. 이번 앨범의 특징을 묻는 질문에 음악적인 테크닉으로 답하는가 하면, 자신의 음악을 설득시키고 전달하기 위해 스스로를 설명했다. 심지어 이번 앨범은 음악방송 활동을 진행하지 않는데, 그 이유는 “3분의 제한 시간이 있어 감정 표현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 같아서”였다.
“앞으로 스패니쉬 감성을 담은 음악도 해보고 싶어요. 완전히 어쿠스틱한 분위기도요. 아, 그런데 혼자서 섹시한 콘셉트는 못할 것 같아요. (웃음) 솔로활동에서는 나만이 보여줄 수 있는 걸 해서 재미있고, 그룹활동할 때는 나라는 사람을 내려놓고 완전히 다른 모습이 되어 보는 거죠. 둘 다 재미있어요.”
자신은 원래부터가 발라드로 시작했다는 게 제아의 말이다. 또 그는 “멤버들한테 고마운 게 하나 있는데 내가 팀이 아니었다면 춤을 진짜 하나도 안 췄을 것이다. 브아걸의 댄스곡이 사랑 받으면서 안무실을 계속 갔는데, 사실 난 작업실이 좋다”고 나름의 폭탄 고백을 했다.
“늘 세게 고음을 지르다 보니, 제아는 그냥 지르는 사람인줄 아는 사람이 많더라고요. 그런데 그것만 있는 것은 아니거든요. 이번 앨범을 통해 진짜 내가 보여주고 싶은 것들을 보여주려고 했고, 여리여리한 것까지는 아니지만 가성도 쓰고 하면서 여성미를 강조했어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내면에 숨겨진, 슬프고도 아름다운 감성이 궁금해졌다. 그래서 “실제 성격도 이런 발라드와 같냐”고 묻자, 제아는 “그건 또 아니다”라고 답했다. 이어 “내 내면에 그런 것들이 내제되어 있는 걸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제아는 “브아걸로서 모습과 솔로로서 모습이 어떻게 달랐으면 좋겠냐”는 질문에 “같았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제아가 처음으로 발매했던 앨범 이름이 ‘저스트 제아’였듯 제아는 그저, 그냥 제아였다.
‘무언가 더 있을 거야’ 작정하고 파고들지 않아도 그의 감성이 뭉근하게 배어나올 것이다. 이번 ‘나쁜 여자’가 복잡미묘한 감수성의 제아를 보여주는 것처럼 말이다.
이소희 기자 lshsh324@
뉴스웨이 이소희 기자
lshsh324@newsw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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