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환 NH농협금융 회장
우선 가계부채의 ‘양적 팽창’ 문제를 짚어보기로 하자. 어느 나라든 금융위기 충격 이후 강한 상승 복원력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부채를 덜어내는 과정(de-leveraging cycle·자산가격 하락을 수반하는 부채축소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불행히도 우리 경제는 경기침체 국면에서 민간부채가 오히려 급격히 늘어나면서 이러한 치유과정을 경험하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중소기업대출로 분류되는 자영업자대출이 약 250조원 정도인데, 이 역시 엄밀히 따지면 가계부채이다.
따라서 중소기업 대출을 포함한 실질 가계부채는 1550조원으로 GDP에 견줘보아도 100% 수준에 육박한다. 즉, OECD 국가 중에서도 가계부채 수준이 절대적으로 높을 뿐만 아니라 부채의 증가 속도가 경제 성장에 비해 지나치게 빠르다는 의미이다. 내수의 축을 이루는 민간 소비가 살아나지 않는 한 가계부채 연착륙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앞으로도 가계의 실질소득 감소가 시차를 두고 소비 위축, 고용 감소로 이어지는 경기 악순환구조가 심화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금리 상승국면이 본격적으로 전개될 경우 가계부채 부실이 경제 전반에 걸친 시스템 리스크로 확산될 개연성이 높다.
부채의 ‘질적 저하’역시 가계건전성 악화를 초래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첫째, 가계부채는 주택관련 대출에 대한 집중도가 과도하게 높아 주택가격 충격에 취약한 특성을 지니고 있다. 2016년 3분기 기준, 예금취급기관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550조원으로 가계대출의 62% 수준이다. 또한, 최근의 금융위기 이후 평균 전세가격이 두 배 가까이 급등하는 가운데 전세대출이 큰 폭으로 증가하였다. 이는 ‘ 전세의 부채화’(leveraging process)로 인해 전세 보증금의 형질이 가계 순자산에서 금융부채로 변질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월세-전세-주택보유’로 이어지는 재산증식 사다리가 무너지면 가계의 충격흡수 여력이 약해지기 마련이다. 역 전세난 등 주택 및 전세가격 충격에 따른 가계부채 부실이 우려되는 대목이다.
둘째, 가계부채 구성을 보면 자영업자대출 비중이 높아 경기 충격에 취약한 구조이다. 최근 소비 절벽, 소비 빙하기와 같은 격한 표현이 난무할 정도로 자영업을 둘러싼 내수 기반이 극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자영업의 영세성, 저부가가치 업종 특성, 경쟁 심화 등에 따른 영향으로 부채함정에 빠지는 자영업자가 급격히 늘어나는 추세이다. 특히, 부채의존도가 높고 신용력이 취약한 영세 자영업자나 저신용 다중채무자를 중심으로 가계부채 잠재부실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끝으로 급격한 대출구조 변화가 가정 경제를 상환흐름 충격에 노출시키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최근 정책당국이 가계부채의 질적 개선을 목적으로 원금을 상환하는 방식(모기지금융)으로 구조개선을 적극 유도하고 있다. 가계대출에서 분할상환이 차지하는 비중을 보면, 2011년 7.7%에서 2016년 10월 39.5%로 불과 몇 년 사이에 5배 이상 증가하였다. 이러한 변화로 대출기간 중 상환부담이 늘어나 결국 가계의 부채상환 여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일례로, 미국의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는 상환액 상향 조정에 따른 채무불이행이 금융위기를 촉발시키는 트리거로 작용한 측면이 있다. 따라서 대출구조 개선은 보다 장기적 관점에서 모기지금융의 비중을 점진적으로 늘려나가는 전략적 접근이 필요해 보인다.
가계부채 대응은 크게 리스크관리와 체질 개선에 초점을 두고 추진할 필요가 있다. 구체적으로, 스트레스 테스트를 통해 금리, 주택가격 등 대외충격에 대비한 시나리오 대응 체계를 가동할 필요가 있다. 가계부채의 체질 개선을 위해서는 기존의 부채 대책을 답습하기보다 실질소득 감소, 자영업 내수기반 악화, 부채의 질 저하 등의 근원적인 문제를 정책으로 녹여낼 수 있는 해법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뉴스웨이 조계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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