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근 시인은 6일 오후 11시31분 페이스북에 “몰랐다고?”라는 물음으로 시작하는 글에서 이같이 말하며 “최영미 시인이 지난 가을 모 문예지의 페미니즘 특집에 청탁받아 쓴 시가 새삼 주목을 끌고 있는 것”이라고 적었다.
이어 류근 시인은 “놀랍고 지겹다”면서 “60~70년대부터 공공연했던 고은 시인의 손버릇, 몸버릇을 이제야 마치 처음 듣는 일이라는 듯 소스라치는 척하는 문인과 언론의 반응이 놀랍고, 하필이면 이 와중에 연예인 대마초 사건 터뜨리듯 물타기에 이용당하는 듯한 정황 또한 지겹고도 지겹다”고 했다.
그는 오래 전부터 고 시인의 성추행이 있었지만 문단이 이를 쉬쉬했다고 비판했다. 류 시인은 “솔직히 말해보자”며 “소위 ‘문단’ 근처에라도 기웃거린 내 또래 이상의 문인 가운데 고은 시인의 기행과 비행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이 얼마나 되나”라고 물었다.
이어 “심지어는 눈앞에서 그의 만행을 지켜보고도 마치 그것을 한 대가의 천재성이 끼치는 성령의 손길인 듯 묵인하고 지지한 사람들조차 얼마나 되나. 심지어는 그의 손길을 자랑스러워해야 마땅하다고 키득거린 이들은 또 얼마나 되나”라고 꼬집었다.
류 시인은 ‘문학 권력’에 대한 비판도 이어갔다. 그는 “암울했던 시대에 그(고은 시인)가 발휘했던 문학적 성취와 투쟁의 업적은 여기서 내려놓고 이야기해야겠지”라면서도 “그의 온갖 비도덕적 스캔들을 다 감싸 안으며 오늘날 그를 우리나라 문학의 대표로, 한국문학의 상징으로 옹립하고 우상화한 사람들은 지금 무엇 하고 있냐”고 지적했다.
“그들이 때마다 노벨문학상 후보로 고은 시인을 떠밀어 세계인의 웃음거리로 ‘옹립’해 놓고 뒤에서 도대체 어떤 더럽고 알량한 ‘문학 권력’을 구가해 왔나”라고 덧붙였다. 또 “위선과 비겁은 문학의 언어가 아니다. 최영미 시인의 새삼스럽지도 않은 고발에 편승해 다시 이빨을 곤두세우고 있는 문인·언론도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도 모른 척한 이들은 다 공범이고 주범”이라고도 했다.
최근 서지현 검사의 ‘검찰 내 성폭력’ 폭로 이후 사회 각계각층에서 한국판 ‘미투 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이에 최영미 시인이 지난해 계간 ‘황해문화’ 겨울호에 발표한 시 ‘괴물’도 재조명됐다.
‘괴물’은 “En선생 옆에 앉지 말라고/ 문단초년생인 내게 K시인이 충고했다/ 젊은 여자만 보면 만지거든// K의 충고를 깜빡 잊고 En선생 옆에 앉았다가/ Me too(미투)/ 동생에게 빌린 실크 정장 상의가 구겨졌다”라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
▼다음은 류근 시인 페이스북 게시글 전문이다.
몰랐다고?
고은 시인의 성추행 문제가 '드디어' 수면 위로 드러난 모양이다. 최영미라는 시인께서 지난 가을 모 문예지의 페미니즘 특집에 청탁받아 쓴 시가 새삼 주목을 끌고 있는 것이다. 놀랍고 지겹다. 6~70년대부터 공공연했던 고은 시인의 손버릇, 몸버릇을 이제서야 마치 처음 듣는 일이라는 듯 소스라치는 척하는 문인들과 언론의 반응이 놀랍고, 하필이면 이 와중에 연예인 대마초 사건 터뜨리듯 물타기에 이용 당하는 듯한 정황 또한 지겹고도 지겹다.
솔직히 말해 보자. 나는 한 번도 끼어들지 못한 소위 '문단' 근처에라도 기웃거린 내 또래 이상의 문인들 가운데 고은 시인의 기행과 비행에 대해 들어보지 못한 사람 얼마나 되나. 심지어는 눈앞에서 그의 만행을 지켜보고도 마치 그것을 한 대가의 천재성이 끼치는 성령의 손길인 듯 묵인하고 지지한 사람들조차 얼마나 되나. 심지어는 그의 손길을 자랑스러워해 마땅해야 한다고 키득거린 연놈들은 또 얼마나 되나.
암울했던 시대에 그가 발휘했던 문학적 성취와 투쟁의 업적은 여기서 내려놓고 이야기해야겠지. 그의 온갖 비도덕적인 스캔들을 다 감싸 안으며 오늘날 그를 우리나라 문학의 대표로, 한국문학의 상징으로 옹립하고 우상화한 사람들 지금 무엇 하고 있나. 마치 5.16 군사 쿠데타를 일으킨 후 장도영 씨를 군사혁명위원회 허수아비 의장으로 내세워놓고 권력의 알맹이를 다 차지한 박정희 졸개 같은 세력들, 그들이 때마다 노벨문학상 후보로 고은 시인을 떠밀어 세계인의 웃음거리로 '옹립'해 놓고 뒤에서 도대체 어떤 더럽고 알량한 '문학 권력'을 구가해 왔나.
위선과 비겁은 문학의 언어가 아니다. 나는 선배들에게 늘 이렇게 듣고 배웠다. 최영미 시인의 새삼스럽지도 않은 고발에 편승해서 다시 이빨을 곤두세우고 있는 문인들이여, 언론들이여. 베드로처럼 고개를 가로젓는 문인들이여, 언론들이여. 부디 당신들도 회개하라. 당신들도 부디 반성하고 고백하고 부끄러움을 장착하라. 당신들이 그토록 존경해마지 않는다고 부르짖는 김남주 시인은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른다고 조롱하는 주인의 목을 바로 그 종의 손으로, 바로 그 낫을 들어 단숨에 베었다.
눈 앞에서 보고도, 귀로 듣고도 모른 척한 연놈들은 다 공범이고 주범이다. 눈앞에서 그 즉시 그의 손을 자르고 목을 베어야 옳았다. 괴물과 괴물의 각축이 되어서, 결국 성범죄 아수라장이 되어버린 듯한 이 나라, 여기에 무슨 OO 내 성폭력이라는 범주가 새삼 필요한가. 온 나라가, 온 안팎이 성폭력에 징집돼 있는 것 아닌가. 아아, 시바!
(지난 가을 발표된 청탁 시가 이 시점에 새삼 호출되는 이유가, 퇴물이 된 문학이 이 시점에 굳이 이런 식으로 대접받는 이유가 부디 모종의 물타기가 아니길 바랄 뿐.)
뉴스웨이 김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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