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무료’ 광고 금지하자 ‘혜택’ ‘우대’로 문구 바꿔요율 변동 無·유관기관 제비용률 공시 누락도 빈번경실련·한투연 “금감원 직무유기·증권사 도덕적 해이 심각”
2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금감원이 지난 3월 수수료 무료 광고를 내지 못하도록 조치한 이후 일부 증권사들은 ‘무료’ 문구를 ‘혜택’이나 ‘우대’ 등으로 바꾼 뒤 동일한 수수료율을 적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앞서 금감원은 지난 3월 25일 비대면 계좌 수수료 무료 이벤트를 실시하고 있는 증권사 22곳을 점검한 뒤 실제 거래비용이 ‘0원’이 아닌 경우 광고상 ‘무료’ 표현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권고했다. 증권사들이 유관기관제비용 명목으로 거래금액의 일정 요율을 별도 부과하고 있어 사실상 수수료 무료가 아니라는 판단에서다.
증권사들은 그간 수수료 무료를 내세우면서도 ‘유관기관제비용 제외’라는 문구를 작게 첨부해 일정 요율을 적용해왔다. 유관기관제비용이란 한국거래소의 거래·청산결제수수료와 예탁결제원의 예탁 수수료, 증권사가 금융투자협회에 내는 협회비 등이다. 현재 거래소, 예탁원 등 유관기관이 법으로 정한 정률 수수료는 거래대금의 0.0036396% 수준이다.
당시 금감원은 유관기관제비용률 산정 시 정률 수수료 외에도 금융투자협회비 등 매매거래와 관련성이 낮은 비용 요소를 개인에게 징수하는 것은 비합리적이라고 지적했다. 금감원은 “매매거래와 관련성이 낮은 비용을 유관기관제비용에서 제외하고 부과 비율을 재검토해 산정기준의 합리성을 제고하도록 개선하라”며 “구체적인 제비용률 수치를 광고, 약관, 홈페이지 등에 명시해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러나 금감원 권고 조치 3개월이 지난 지금 여전히 대다수 증권사들은 정률 수수료 이상의 유관기관제비용률을 적용하고 있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조사에 따르면 중·대형 증권사 14개사 중 이날 기준 삼성증권, 키움증권, 이베스트투자증권, 한국투자증권, 신한금융투자 등 5개사만이 정률 수수료율인 0.0036396%를 지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케이프투자증권은 조사 대상 증권사 중 가장 높은 0.0066300%를 개인 투자자에 부과하고 있다. 하이투자증권(0.0064874%), NH투자증권(0.0050319%), 유진투자증권(0.0049390%) 등도 높은 요율을 적용 중이다. 이들 증권사는 금감원 권고 조치가 있었음에도 전과 후의 요율 변동이 없었다.
윤순철 경실련 사무총장은 “증권사들이 지난 10년동안 수수료 무료라고 해놓고 실제로는 여러 비용을 부과하고 있다. 이에 대해 금감원도 파악하고 있지만 적극 시정하려는 노력이 없다”며 “정부의 주식 양도소득세 부과가 시행되기 전에 선별적으로 (수수료 같은) 부분이 정리돼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미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이같은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경실련과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한투연)는 이날 서울 종로구 동숭동 경실련 강당에서 증권사의 불법 수수료 문제를 지적하고 금감원의 감독 규정을 강화하라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조사에 따르면 증권사들이 지난 10년간 비대면계좌 매매거래 수수료가 무료인 것처럼 허위 광고를 통해 투자자에게 떠넘겨 챙긴 부당 이익은 1조9912억원에 이른다. 연 2% 복리이자를 감안하면 증권사들이 시장 전체에 배상해야 하는 손해액은 2조2011억원으로 이중 개인투자자에게 배상해야 할 손해액은 1조4198억원에 이른다는 것이다.
경실련은 2013년 9월부터 2020년 4월 시행한 수수료 관련 광고 69건을 수집해 자체 분석한 결과 표시광고법, 약관법, 자본시장법 위반 등 관련 법령을 위반한 사실 총 584건을 적발했다고 밝혔다. 유관기관제비용으로 수수료를 받았기에 ‘거래수수료 무료’라는 표기는 표시광고법 위반이며 유관기관제비용률을 사전에 공시하지 않은 것은 약관법·자본시장법을 위반했다는 지적이다.
정의정 한투연 대표는 “마트에서 ‘만원짜리 수박 무료’라고 적어놓고 아주 작게 ‘농민 수고료 3000원 별도’라고 하는 것과 같다. 무료와 3000원이 어떻게 같은 개념이겠나”라며 “그렇게 합해진 돈이 2조원인데 명백한 불공정행위이자 부정행위”라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금투협 회비는 증권사 자체 자금으로 내야지 유관기관제비용 명목으로 회비를 고객에게 징수하고 있다”며 “허위·과장 광고 뿐만 아니라 고객에게 받지 말아야 할 돈을 받은 것은 증권사들의 심각한 모럴 해저드”라고 지적했다.
뉴스웨이 허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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