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법 시행령 제정안···노동계‧경영계 양측 모두 불만노동계 “면죄부 주는 것” 반발 vs 경영계 “과잉 처벌” 우려건설업종-현장특성 반영안돼···기업 책임전가 경영부담 늘어중소건설사들 중대재해법 대처에 곤혹···“부작용 초래할 것”
“법률의 모호함이 시행령에서도 해결되지 못해 매우 아쉽게 생각한다. 이대로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면 선의의 피해자 내지 범법자만 잔뜩 양산할 공산이 매우 크다”(건설협회 관계자)
“시행령 제정안이 규정한 직업성 질병으로 중대산업재해 요건을 충족할 수 있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 직업성 질병으로 인한 중대산업재해에 면죄부를 준 것과 다름없다”(한국노동조합총연맹)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에 대한 얘기다. 중대재해법 시행이 반년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정부가 법의 일부 내용을 구체화한 시행령 제정안을 공개했으나 노동계와 경영계 어느쪽도 만족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노동계는 핵심 내용이 빠져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경영계는 규정이 모호해 과도한 책임을 지울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다.
중대재해법의 골자는 안전사고 발생시 사업주와 경영책임자에 대한 형사책임 강화이다. 산업재해가 발생하면 관련된 모든 회사 관계자에게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다. 제정안은 다음 달 23일까지 입법 예고 기간 의견수렴을 거쳐 확정된다. 문제는 입법예고 기간에 정부가 노사 등 이해관계자와 대화에 나설 예정이지만 시행령이 대폭 수정될 가능성은 제한적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현재 노동계에서는 과로가 주원인인 뇌심혈관계 질환이 빠진 점에 반발하고 있다. 24개 질병 항목 중 ‘덥고 뜨거운 장소에서 하는 업무로 발생한 열사병’ 정도를 과로사와 관련된 직업성 질병으로 볼 수 있다. 노동계에서는 최근 택배업계가 과로사 방지 문제 등을 놓고 대규모 파업에 나서는 등 논란이 있었음에도 해당 사안이 제외된 점에 불만이 나온다.
즉 중대재해법이 시행되더라도 지난해 10월, 쿠팡 물류센터에서 일하다 심근경색으로 숨진 고 장덕준 씨는 과로사 판정을 받았어도 책임자는 처벌받지 않게된다. 이동영 정의당 수석대변인은 “질병 구분 없이 10명 이상 직업성 질병 발생 때 중대재해로 인정하는 기존 산업안전보건법보다 씬 더 후퇴한 것”이라고 전했다.
직업성 질병에 대해서는 중증 기준이 마련되지 않아 경미한 질병까지 중대재해로 간주될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시행령 제정안에는 급성 중독 등 24개 항목의 직업성 질병을 규정하고 있지만 중증에 대한 기준은 마련돼 있지 않다. 한국노총은 “시행령 제정안이 규정한 직업성 질병으로 중대산업재해 요건을 충족할 수 있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라며 “직업성 질병으로 인한중대 산업재해에 면죄부를 준 것과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중대재해법에는 안전보건 관리체계 구축 의무에 안전보건에 관한 인력·시설·장비 등을 갖추는 데 적정한 예산을 편성하는 것을 포함했지만, 구체적인 기준은 제시하지 않았다. 특히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산재로 숨진 고 김용균 씨 사건 이후에도 2인 1조 원칙과 신호수 배치 등 핵심 요구 사항도 반영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정부 관계자는 “2인 1조 작업이 바로 포함된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설명했다.
김부겸 국무총리는 노동계를 향해 “종사자 수가 적은 사업장에 대해 시행 시기를 유예하거나 면제하는 것에 우려가 있을 것”이라면서도 “일시에 모든 사업장에 이 법을 적용하는 것이 과연 현실적으로 맞는 일이겠나”라고 반문했다. 이어 “모든 사업장에 한꺼번에 적용하기를 원한다면 책임 범위와 처벌 내용은 후퇴할 수밖에 없는데 그것은 괜찮나”고 말했다.
중대재해법 적용 대상인 경영 책임자의 범위를 구체화하지 않은 점도 논란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경영 책임자의 개념과 범위가 명확하지 않아 중대재해법상 의무 주체가 누구인지 구체적으로 파악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특히 경영 책임자에 대한 면책 규정이 마련되지 않은 점도 문제로 거론된다. 개인 부주의 등으로 중대재해가 발생했을 경우 경영 책임자가 의무를 다했더라도 책임을 물을 수 있어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시행령에는 중대산업재해가 발생한 경우 사업주나 경영책임자는 사망시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 사망 외 중대산업재해 시에는 7년 이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 벌금이 부과된다. 여기에 법인은 사망시 50억원 이하, 사망 외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 받는다.
시행령 제2장 제4조 4(매년 안전 및 보건에 관한 인력, 시설, 장비 등을 갖추기에 적정한 예산 편성), 제3장 11조 2(교육 실시 등 필요한 조치를 하거나 지시할 것) 등 ‘적정한 예산’, ‘필요한 조치’ 등의 추상적 문구로 기준과 범위가 모호하다는 점도 지적사항으로 꼽힌다. 건설업계의 경우 건설현장이 수십개에서 수백개에 달하는 데 이를 감안하지 않고 최고경영자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이 과하다며 보완을 요구하고 있다.
경총은 “직업성 질병의 목록만 규정하고 중증도 기준이 마련되지 않아 경미한 질병까지 중대재해로 간주될 수 있다”며 “안전보건 관리체계 구축을 위해 적정한 예산을 편성해야 한다고 모호하게 규정한 부분을 보완하고 경영 책임자의 개념과 범위도 명확히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도 “중대재해의 적용범위가 지나치게 넓어 기업인들에 대한 과잉처벌이 될 수 있다”며 “경영책임자뿐 아니라 현장 종사자의 안전의무 준수도 중요한 데 이에 대한 규정은 없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고용노동부는 “뇌심혈관질환 등이 포함될 경우 기저질환 있는 고령층, 가족력 보유자 등 질병발생 가능성이 높은 계층에 대한 채용이 위축될 우려가 있다”며 “처벌과 연계되는 만큼 자칫 뇌심혈관질환 등에 대한 업무상 재해 인정에 소극적일 수 있는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것”이라고 항변했다.
김 총리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에 반발하는 경영계를 향해서는 “세계 10위의 경제력을 자랑하면서 산재에 대해서는 후진국이라는 오명을 안고 가는 게 맞나”라며 “기업들이 산재에 충분히 관심을 갖고 산재를 줄였다면 과연 중대재해처벌법이 필요했겠나”라고 전했다.
이밖에도 업계에선 중대재해법으로 인한 부작용을 우려하는 모습이다. 현재 모든 사업주는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건설물이나 기계설비, 근로자의 작업 또는 그 밖의 업무로 인한 유해·위험 요인 등을 찾아내고 사고예방 및 안전조치를 이행하기 위한 위험성 평가를 의무적으로 실시해야 한다. 평가 결과나 조치사항 등은 반드시 기록하고 보존해야 한다.
이렇다보니 현장관리자는 각종 점검부터 준비, 결과보고 등 최소 70여 개에 달하는 서류작업에 매달리며 과중한 ‘페이퍼 워크’로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는데 중대재해법이 시행되면 이같은 페이퍼워크만 늘어나 관련 부서만 더욱 바빠지고 실효성은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안전보건 전담조직 설치 대상에 대해서도 업종 특성이나 현장 적용성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중대재해법대로라면 시공능력평가액 순 상위 200개 건설사는 안전보건업무를 전담하는 조직을 새로 설치해야 하고 하도급사의 안전보건관리 비용와 공사기간까지 원청 건설사가 보장해야 한다. 업계가 주장한 50위 내 전담조직 설치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실제로 시평 100위권 바깥의 기업은 대부분 중소기업으로, 본사 인력이 수십여명에 그치는 것이 현실이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중소 건설사의 경우에는 영세할수록 안전 인력이나 예산에 대한 투자를 늘리기가 쉽지 않다”며 “이번 제정안은 업계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고 만일 이대로 시행되면 선의의 피해자 내지 범법자만 양산할 공산이 매우 크다”고 우려를 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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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웨이 주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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