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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1조8600억’ 소송인데”···은행도 금감원도 ‘쉬쉬’

오피니언 기자수첩

[차재서의 뱅크업]“‘1조8600억’ 소송인데”···은행도 금감원도 ‘쉬쉬’

등록 2021.11.15 09:01

차재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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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orter
기업은행이 ‘조 단위’ 국제 송사에 휘말렸지만 자세한 내막을 알 길이 없어 우려가 커지고 있다. 비밀 유지 의무를 빌미로 당사자인 은행은 물론 금융감독당국까지도 사안에 대해 철저하게 입을 닫고 있는 탓이다.

공시를 통해 확인된 내용은 이렇다. 싱가포르 무역금융 회사 안타니움 리소스(Antanium Resources PTE) 외 7곳은 작년 4월 기업은행을 상대로 홍콩국제중재센터(HKIAC)에 1조8600억원의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기업은행이 투자신탁 신탁업자 지위에서 체결한 계약상 의무를 위반했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소송 건이 20개월 지난 지금에서야 공개된 것은 최근 원고 측이 손해배상 청구금액을 늘리면서 지난 5일 그 숫자가 확정됐기 때문이다. 최초 확정금액은 작년 12월16일 청구된 약 4만8700만달러였는데, 당시 환율(1093.20원)을 적용하면 약 5324억원이라 2019년 연결 재무제표 자기자본 기준 공시대상에 해당하지 않았다.

기업은행 측은 중재 결과가 은행 재무 상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고 주장한다. 은행은 투자신탁재산을 한도로 책임을 부담하는 만큼 매출채권매입계약의 준거법인 영국법으로 봤을 때 신청인의 청구엔 근거가 없다는 입장이다.

다만 의아한 대목은 공시만으로는 기업은행이 정확히 어떤 상황에 놓였는지 확인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해당 기업과 은행에 입장차만 나와있을 뿐, ‘왜’ 중재 신청을 냈는지 알 수 없어서다.

기업은행 측은 “국제중재규칙 관련 비밀유지 의무와 투자자 보호를 위한 신탁 계약상 정보유출이 금지돼 있어 공시된 내용 이외 안내가 불가능하다”고 일축했다.

금감원 측도 마찬가지다. 감독당국으로서 관련 사안을 확인하긴 했지만 소송 내용을 자세하게 알지 못할뿐더러, 공개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소송 주체인 기업은행의 몫이라며 거리를 뒀다.

하지만 이들이 침묵하는 게 과연 투자자와 소비자를 위한 일인지는 의문이 앞선다. 사건이 발생한 경위 정도는 공유하는 게 도움이 되지 않겠냐는 사견에서다. 적어도 기업은행이 어떤 연유로 분쟁에 빠졌는지를 알아야 ‘신청인의 청구엔 근거가 없다’는 은행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 있지 않겠냐는 얘기다.

특히 홍콩 중재조례(Cap. 609) 18조 1항에서 당사자 합의 없인 비밀을 유지하도록 규정한 사항은 ‘중재 합의에 따른 중재 절차(the arbitral proceedings under the arbitration agreement)’와 ‘판정(an award made in those arbitral proceedings)’이다. 그리고 2항에선 당사자가 법적 권리 또는 이익을 보호하거나 법률에 따라 공개·전달할 의무가 있는 경우는 예외로 둔다. 따라서 어디까지 비밀에 부쳐야 하느냐를 놓고는 해석을 달리할 여지가 있다.

게다가 이번 분쟁은 투자자와 소비자도 반드시 알아야하는 사안이다. 충당금 적립이나 배상금 지급 등으로 은행의 재무건전성이 악화되면 이들에게도 간접적으로나마 그 여파가 이어질 수 있어서다.

조금 분위기는 다르지만 정부도 국민의 알 권리 차원에서 사모펀드(PEF) 론스타와의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S)’ 상황을 정례적으로 브리핑하고 있지 않은가.

분쟁이 일단락될 때까지 보안을 유지해야 한다는 기업은행과 금감원의 입장을 존중하지만 이번과 같은 대응엔 아쉬움이 남는다. 투자자와 소비자를 배려하는 적극적인 경영행보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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