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해운사에 8000억대 과징금 제재 확고해수부·업계, ‘운임 공동행위는 오랜 관행’ 주장
더욱이 해수부가 ‘해운법 개정안’을 근거로 무혐의를 내세우면서 공정위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공정위 역시 경쟁당국으로서 ‘공정거래법’에 어긋나는 행위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처벌하겠다는 방침이다.
공정위는 지난 5월 운임을 담합한 혐의로 국내외 해운사 23곳을 제재해 총 800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한다는 내용의 심사보고서를 발송하고 전원회의 심의와 의결을 앞두고 있다. 한국~동남아 노선 취항 선사들이 지난 2003년 10월부터 2018년 12월까지 총 122차례에 걸쳐 운임을 담합했다는 이유에서다.
공정위 제재에 해운업계를 비롯해 해수부 등이 즉각 반발에 나서면서 전원회의 일정이 계속 미뤄지고 있다. 특히 해수부가 자체적으로 해운법 개정안을 지난 10월 국회 법안 소위원회 심사를 통과하면서 사안은 더욱 복잡해진 상태다. 개정안에는 ‘이런 내용을 법 개정 이전 협약에도 적용한다’는 내용도 담겼기 때문이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공정위의 과징금 결정이 무력화될 수 있다는 의미다. 다만 아직 전체회의와 법사위, 본회의 등 입법 절차가 남아있어 최종 통과까지는 지켜봐야 한다.
앞서 문성혁 해수부 장관은 “해운업법 개정안을 반대하는 것이 솔직히 이해가 안 된다”며 “전 세계적으로 해운사의 공동행위(담합)를 허용하는 데에는 업종의 특수성이 있다는 점을 이해해달라”고 말했다.
해수부의 강력한 조치에 조 위원장 역시 공정거래법 위반 시 ‘원칙대로 해결하겠다’며 강하게 맞섰다. 조성욱 위원장은 “공정위가 다루는 해운 운임 담합 사건은 해운법 29조를 넘어서는 불법 행위에 대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며 “위원회 심의를 거쳐 제재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고 밝혔다.
공정위는 해운사들은 운임 협의 과정에서 화주들의 반대로 가격 인상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자, 법이 허용하는 범위를 넘어선 담합행위에 나섰다고 판단하고 있다. 실제 이번 해운사 담합 논란의 핵심은 기존 해운법이 허용하고 있는 공동행위 범위를 넘어선 법 위반이냐는 것이다.
공정위에 따르면 이번에 제재 대상이 된 해운사들은 화주들을 배제하고 해운사들끼리 운임을 올리기로 합의했다. 이후 개별 회사차원에서 운임 인상을 각 화주에 통보했다. 공동 담합행위로 보이지 않기 위해서다. 이들은 가격 인상에 동의하지 않은 화주에 대해선 선적 거부로 대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해운사가 상호 협의한 것보다 낮은 운임을 적용하자, 벌금을 부과하기도 했다.
공정위는 이런 담합 행위로 화주와 소비자들에게 피해가 전가됐다고 판단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개정안을 소급 적용해 이번 담합 행위에 면죄부를 주면, 향후 발생하는 해운사들의 악성 담합에 대해서도 제재 근거가 사라지게 된다”며 “만약 해외 글로벌 선사들이 미주 노선 등에서 가격 담합에 나서면 어떻게 해야하나”고 주장했다.
공정위 최종 결정이 지연되고 있는 상황에 업계가 공정위 제재를 피하기 위해 ‘동의의결’ 신청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동의의결이란 제재 대상 사업자 스스로 문제의 원상회복 또는 소비자나 거래 상대방의 피해구제 방안을 제시하면, 공정위가 타당성을 판단해 위법 여부를 확정하지 않고 사건을 신속하게 종결하는 제도다. 그러나 이번 사건과 같은 입찰담합 행위는 동의의결 제도 적용 대상이 어렵기 때문에 동의의결 구상은 어렵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현재 두 부처간 협의된 사안은 없지만 공정위는 관련 산업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위해 해수부의 의견을 적극 수렴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조 위원장은 협의 과정에서의 제도적 보완일 뿐, 공정위 판단을 구속하거나 경쟁 당국으로서의 독립성을 훼손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성욱 위원장은 “조사·심의 중인 사안과 관련하여 정부 부처가 공정위에 의견을 제출하는 것은 현재도 가능하나, 투명하게 운영하기 위해 공식적인 창구를 마련하겠다”며 “부처간 이견이 크거나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큰 사건에 대해서는 공정위가 직권으로 관계부처에 의견제출 및 진술을 요청할 수 있는 근거를 명확히 규정해 의견수렴 절차를 활성화겠다”고 말했다.
뉴스웨이 변상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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