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사태 격화 속에 유가는 7년여 만에 최고치를 찍었다.
브렌트유 선물은 한국시간 2일 오후 1시 19분 기준 배럴당 110.23달러로 5.30달러(5.0%) 올랐다. 이는 2014년 7월 이후 최고치라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같은 시간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 선물도 5.02달러(4.1%) 오른 108.41달러로 110달러 선에 육박했다.
각국 정유업체들이 제재 위반 가능성을 피하기 위해 러시아산 원유 구매를 중단하기 시작하면서 에너지 공급 문제가 심각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화하고 있다.
호주뉴질랜드은행의 원자재 전략가 대니얼 하인스는 "원유 가격은 계속 올라갈 것"이라면서 "공식 제재 없이도 러시아산 원유 공급에 제약이 생겼다는 현실에 시장이 눈을 뜨고 있다"고 블룸버그통신에 말했다.
천연가스 가격도 급등, 블룸버그에 따르면 유럽 시장의 천연가스 가격을 대표하는 네덜란드 TTF 천연가스 가격은 이날 23.4% 뛰어올랐다.
유럽에서는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러시아산 액화천연가스(LNG) 공급이 감소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러시아는 세계 최대 천연가스 수출국이자 주요 원유 공급국이다. 러시아의 석유 수출은 세계 공급량의 약 8%를 차지한다.
전쟁 피해가 커지고 서방의 러시아 제재 수위가 높아지면 공급망에 큰 차질이 초래될 것이라는 우려에 에너지 가격 상승세가 이어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유럽 등 각국 정유업체들은 서방 제재의 영향을 걱정해 러시아산 원유 구매에 주저하는 반면, 러시아는 경제의 생명줄인 원유 판매를 유지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고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전했다.
이 신문은 소시에테제네랄(SG), 크레디트스위스, ING 같은 유럽 은행들이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러시아산 원유·천연가스 수입과 관련해 무역금융의 한 형태인 신용장 개설을 거부하고 있다고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대금 지급이 큰 문제로 떠오른 것이다. 구매자의 거래은행이 신용장을 개설해 대금 지급이 예정대로 이뤄지리라는 것을 보증하는 것은 원자재 거래의 일반적인 관행이다.
뉴욕타임스(NYT)도 미국과 유럽연합(EU)이 러시아의 에너지 수출에 대한 직접 제재는 꺼리고 있지만, 일부 업체들이 러시아산 원유 구매에서 손을 떼고 있다고 보도했다.
NYT에 따르면 최근 각국 원유 거래업체와 유럽 정유업체들은 러시아 원유 구매를 대폭 줄였다.
또 핀란드 네스테, 스웨덴 프림 등 일부 정유업체는 러시아산 원유 구매를 아예 중단했다고 밝혔다.
네스테 측은 "시장의 현 상황과 불확실성 때문에 러시아 원유를 북해산 같은 다른 원유로 대부분 대체했다"고 밝혔다. 이어 향후 제재와 잠재적인 러시아의 맞대응을 주시하고 있으며 다양한 옵션을 준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업체들이 이처럼 몸을 빼는 것은 이들 또는 이들이 이용하는 운송회사·은행·보험사들이 이미 시작됐거나 향후 추가될 서방의 제재를 위반하게 될까 봐 걱정하기 때문이라고 에너지 전문가들은 진단했다.
또한 전시인 우크라이나 인근 해역 등을 운항하는 운송 선박이 미사일에 격추될 수 있다고 우려하는 업체도 있고, 러시아 정부를 재정적으로 지원하는 것으로 비치기를 원하지 않는 곳들도 있다.
러시아 수출업체들은 최근 며칠 사이 자국산 원유를 배럴당 20달러가량 할인했지만, 구매업체는 별로 없다고 애널리스트들은 말했다. 바이어들은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중동산 원유로 갈아타고 있는데 이런 움직임은 국제유가 상승에 불을 지폈다.
러시아의 원유 수출량은 하루 약 500만 배럴로서 이 중 대부분은 유럽으로 간다.
유가 정보업체 'OPIS'의 에너지 분석 책임자 톰 클로자는 "은행과 보험회사, 운반선 업체, 그리고 심지어 다국적 석유기업까지 사실상의 (러시아 원유 수출) 금지를 단행한 것"이라고 NYT에 말했다.
그는 러시아의 원유 수출이 얼마나 줄었는지, 수출 감소가 지속될지를 제대로 파악하려면 몇 주가 걸릴 것이라면서도 "러시아의 (원유)공급이 제약받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이에 러시아 기업들은 유럽 정유업체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중국의 정유업체들에 원유를 판매하려 하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 중국이 세계 에너지 시장과 러시아에 미치는 영향력이 더 커질 수 있다고 일부 전문가는 지적했다.
한편 미국을 포함한 국제에너지기구(IEA) 회원국들이 이날 유가 안정을 위해 비상 비축유 6천만 배럴을 방출하기로 합의했으나, 국제유가에 미친 영향은 크지 않았다.
이는 방출 비축유 양이 미국의 사흘 치 소비에 해당하는 양으로 상대적으로 많지 않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와 관련해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등의 협의체인 'OPEC 플러스(OPEC+)'가 이날 4월 공급량을 논의할 예정이지만 소폭 증산에 그칠 것이라고 블룸버그는 예상했다.
IEA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세계 에너지 안보가 위협받고 있다고 경고했다.
앞서 BP, 엑손모빌, 셸 같은 세계적 석유기업들도 러시아의 석유·가스 사업에서 철수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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