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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고속철도 시장 '해외 개방', 政 근본대책 절실···"철도 주권 뺏긴다"

국내 고속철도 시장 '해외 개방', 政 근본대책 절실···"철도 주권 뺏긴다"

등록 2022.09.02 00:48

윤경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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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산업, 입찰 자격 완화로 해외 업체 진입 시 물거품 위기부품사 96%가 영세 업체··· 수주량 줄면 더 이상 못 버텨"해외 업체 진출 허용하면 산업 붕괴 자명, 제도적 보호 필요"

국내 철도차량 입찰 제도는 응찰가를 가장 낮게 적어낸 업체가 수주하는'최저가 낙찰제'를 적용하고 있다. 철도업계 안팎에서는 이 제도가 입찰 업체의 기술력이나 과거 납품 실적 등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해 정작 철도를 이용하는 시민 안전과 편의를 살피지 못한다는 논란이 꾸준하게 제기돼 왔다. 사진=코레일 제공국내 철도차량 입찰 제도는 응찰가를 가장 낮게 적어낸 업체가 수주하는'최저가 낙찰제'를 적용하고 있다. 철도업계 안팎에서는 이 제도가 입찰 업체의 기술력이나 과거 납품 실적 등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해 정작 철도를 이용하는 시민 안전과 편의를 살피지 못한다는 논란이 꾸준하게 제기돼 왔다. 사진=코레일 제공

해외 업체의 무분별한 국내 고속철도 시장 진출을 두고 입찰 제도를 개선하는 등 정부의 근본적인 대책 수립을 철도차량 부품업체들이 호소하고 나섰다. 최근 고속차량 발주 사업의 입찰참가 자격조건이 완화되면서 해외 업체의 국내 시장 진입이 가시화되고 있다. 발주 물량이 해외 업체에 몰릴수록 기술 자립은커녕 해외에 종속이 될 것이고 이는 국내 산업 생태계 붕괴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우려된다.

1일 철도차량 부품산업 보호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에 따르면 '국내 철도부품산업 발전을 위한 제언'호소문을 한국철도공사(코레일)와 SR 등에 전달하고"경쟁을 명분으로 해외 업체의 무분별한 국내 고속차량 사업 입찰을 허용해서는 안된다"며 "정부 차원에서 어떤 정책적 지원이 필요한 지 숙고해 달라"고 밝혔다.

호소문에는 191개 국내 철도차량 부품업체들이 서명에 동참하며 해외 업체의 국내 고속차량 시장 진입 반대 의사를 피력했다. 비대위가 호소문을 발표한 배경에는 스페인 철도차량 제작사인 '탈고(TALGO· Tren Articulado Ligero Goicoechea-Oriol)'의 국내 시장 진출이 자리한다. 탈고는 국내 철도차량 제작사인 A사와 컨소시엄을 맺고 9월 7일 입찰공고 예정인 한국철도공사(코레일)가 발주한 136량짜리 '동력분산식' 고속차량 EMU-320 입찰 사업에 참여할 것으로 알려졌다.

부품 업체들은 코로나19 영향 등 외부변수로 인해 어려운 환경에 처하기도 했지만 최근 들어 발주 물량 회복에 따라 어렵사리 반등의 기회를 잡고, 재도약을 위한 도움닫기를 하고 있는 상황. 해외 업체의 국내 진출이 본격화하면 순수 국산 기술로 고품질의 고속차량을 생산하는 국내 완성차 업체들이 설 자리를 잃게 되고, 이는 영세 사업장이 전체의 96%에 달하는 협력 부품 업체의 생존에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특히 탈고는 동력집중식 고속차량 제작 업체로 코레일이 입찰에서 요구하는 '동력분산식' 고속차량 제작·납품한 실적은 전무한 상태다. 하지만 국내 입찰 시장에 참여하기 위한 자격요소 문턱이 낮아지면서 아무 제재없이 입찰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또 부품 업체들은 "고속차량 이전에도 기존 일반 전동차 시장에 경쟁 체제가 도입되면서 기술력이나 품질이 아닌 최저가가 우선되는 난데없는 '치킨 게임'이 벌어졌다"며 "완성차 제작사들은 저가의 중국산 부품을 사용해 단가를 낮춰 입찰 경쟁에 나서기 시작했고, 국내 부품제작사들은 물량을 확보하지 못해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었다"고 입찰 제도의 폐해를 설명했다.

국내 철도차량 입찰 제도는 응찰가를 가장 낮게 적어낸 업체가 수주하는'최저가 낙찰제'를 적용하고 있다. 철도업계 안팎에서는 이 제도가 입찰 업체의 기술력이나 과거 납품 실적 등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해 정작 철도를 이용하는 시민 안전과 편의를 살피지 못한다는 논란이 꾸준하게 제기돼 왔다. 부품 업체들은"외산 부품 사용 확대로 인한 국내 부품 시장 침체는 지속적으로 진행돼 왔다"며 "하지만 정책적인 도움은 고사하고 가격이 높다는 이유로 외면 받는 등 '역차별'을 당해왔다"고 강조하고 있다.

입찰 가격을 최대한 낮추기 위해 저가 중국산 부품 등이 해외에서 수입되기 시작하면서 국내 부품 업체들이 설 자리가 사라지고, 품질 개선에 대한 유인이 점점 없어지고 있다는 의미다. 관세청의 수출입무역통계에 따르면 한국이 중국으로부터 수입한 철도차량부품 연간 규모는 2015년 1948만3000달러(약 263억원)에서 2021년 7592만5000달러(약 1025억원)로 코로나19 여파로 인한 공급난 등 외부 이슈에도 불구하고 6년 만에 4배 가까이 증가했다.

같은 기간 한국의 대(對)중국 철도차량부품 무역적자는 –1705만6000달러(약 –230억원)에서 –7300만4000달러(약 -985억원)로 늘어나 중국산 부품 의존도가 심화되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이밖에 부품 업체들은 국내 고속차량을 '오직 기술 자립이라는 일념 하에 정부와 국내 완성차량 제작사 및 부품 제작사들이 약 30여 년간 2조7000억원을 들여 탄생시킨 첨단 기술 집약체'라고도 부연했다.

한국이 세계 4번째로 고속철도를 상용화한 철도 선진국으로 거듭나기까지 국내 철도부품사의 사명감과 희생이 바탕에 깔려 있었던 만큼 국산 기술이 퇴색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해달라는 의미다. 해외의 사례를 들며 국산 고속차량 기술 보호의 중요성을 역설하기도 했다. 부품 업체들은 "글로벌 고속차량 경쟁이 격화하는 가운데 유럽, 미국, 일본, 중국 등 각국은 저마다 입찰 문턱을 높여 자국 산업을 보호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고 언급했다. 이어"기술개발완료부터 상용화까지 막대한 시간과 자본이 투입되는 고속차량의 특수성과 기술력을 국가 핵심 성장 동력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유럽의 경우 시행사가 발주를 하면 입찰 초청서를 발송한 업체들만 입찰 참여가 가능한 구조다. 여기에 자체 규격 규정인 'TSI(Technical Specifications for Interoperability)'라는 규제 장벽으로 비유럽 국가의 진입을 사실상 원천 차단하고 있다. TSI는 유럽 내 운영되는 철도의 상호 호환성을 만족하기 위한 요건들을 규정하는 데, 설계나 건설, 개량, 개조, 운영 및 유지관리, 안전 요건 등은 물론 차량에 들어가는 세부 부품 규격까지 포함돼 있어 비유럽권 업체가 규정을 따르기 까다롭다.

스페인 역시 자국에서 발주한 철도차량 사업에 해외 업체가 참여하려면 전문성이나 무역 관련 요구 사항 등 전문 제작 활동을 위한 적합성 여부를 종합적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하지만 세부 기술사양서를 공개하지 않아 어떤 식으로 평가를 받는 지 정보 획득이 어렵다. 고속차량 입찰 조건에 높은 납품 기준을 두고 기술력 등 업체의 역량을 따져보는 경우도 많다. 실제 지난 2018년 입찰 공고가 난 쿠알라룸푸르-싱가포르 고속차량 사업의 경우 입찰 시 300km/h 이상 운영속도를 내는 고속차량 10편성 이상을 납품한 실적이 필요했다. 영업운행 기간은 적어도 5년이 넘어야 했다.

전 세계 철도차량 시장 점유율 1위인 중국은 철도차량 입찰 참여 시 자국법인과의 공동응찰을 의무화하고, 완성차는 70% 이상, 전장품은 40% 이상의 자국 부품을 사용해야 한다는 규정을 두면서 자국 고속차량 산업을 보호하고 있다. 미국은 '바이 아메리카 규정'을 적용해 입찰 시 재료비의 현지화 비율을 70% 이상으로 정했다. 일본도 해외 업체의 시장 진입을 원천봉쇄하고 있다.

부품 업체들은 글로벌 시장 수출을 위해 지금은 국내에서 고속차량 운영 실적을 쌓아야 할 '골든 타임'이라고 강조하며 호소문을 맺었다. 해외 업체 진입으로 안방에서조차 충분한 납품 실적을 쌓지 못한다면 더 이상 대외경쟁력을 키울 기회는 찾아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국은 지난 2016년 튀르키예(터키) 철도청의 고속차량 발주 사업 당시 정식으로 입찰 초정을 받았지만, 최고속도 300km/h급 동력분산식 고속차량 납품 실적이 필요하다는 자격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입찰 참여가 무산된 바 있다.

부품 업체 관계자는 "철도부품산업은 우리나라 철도 산업의 근간으로 '철도 주권'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라도 부품제작사가 지속적으로 사업을 영위할 수 있도록 정부가 국내 시장을 보호해 달라"며 "정책 입안 시 철도산업에 종사하는 지자체와 공공기관, 부품제작사, 완성차량 제작사와 사전 공감대를 형성하고 함께 추진한다면 국내 철도산업의 선순환 구조는 빈틈없이 자리 잡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뉴스웨이 윤경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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