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기사의 결론은 반(反) ESG 관련 움직임과 주장이 아무리 자유시장 경제의 철학에 근거한 대의명분을 갖더라도 현재의 ESG흐름을 거스르기 어렵고 결국 '워크(Woke, 깨어있는) 주식회사'에 굴복하거나 타협할 것이라는 내용이다.
그럼 여기서 말하는 '워크 주식회사'란 무엇일까? '워크 주식회사'란 그 개념정의가 간단치 않으나 풀어서 설명하자면 "사회나 환경 문제 등에 관심을 갖고 깨어있는 것 같이 보이는 회사'라는 뜻이다. 부정적 뉘앙스를 깔고 있다. '워크 주식회사'의 저자인 비벡 라마스와미가 당초 이 문제를 제기한 배경은 다음과 같다.
자유시장 경제의 구루인 밀턴 프리드먼은 주식회사의 목적을 주주 이익 극대화라고 주장했다. 만일 이 주주 우선주의에서 벗어나면 기업의 효율성이 저하되고 수익률이 악화돼 결과적으로 사회에도 부정적인 영향이 미칠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지지자들은 프리드먼이 중요한 점을 놓쳤다고 비판한다. 즉 기업은 자연 상태에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 내재된 각종 자원과 인프라 등의 지원을 받으며 사회 속에서 존재한다는 점을 간과했다고 비판한다.
사회 혹은 시민들로부터 권한을 위임받는 정부가 기업의 설립을 허용했기 때문에 기업은 영리 활동을 할 수 있다. 또한 사회는 주주들에게 일반인이 누릴 수 없는 특별한 책임, 즉 '유한책임'을 부여했다. 유한책임이란 기업으로부터 피해를 당한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해당 기업의 주주들에게 개인적인 피해 보상 청구를 할 수 없도록 만든 법적 장치이다.
이 장치는 '인류의 가장 위대한 발명품 중 하나'일 수 있다. 많은 경제사학자들은 이러한 '유한책임'이 산업혁명의 원동력이 되었다고 칭송하기까지 한다. 이렇듯 사회로부터 특별한 선물(특권)을 부여받은 기업은 의당 사회적 책무를 져야 한다는 주장이 이른바 '전통적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자들'의 논거다.
하지만 이에 대해 비벡 라마스와미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주주 우선주의를 재차 강조했다. 즉 회사법이 주주 우선주의를 명문화한 이유에는 단순히 주주만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보호하기 위한 의도가 깔려 있다는 주장이다.
부연하자면 기업에 유한책임을 허용한 배경에는 경제적 이익 창출에 전념하라는 목적과 함께 사회의 여타 영역에 미칠 수 있는 기업의 막대한 영향력을 제한코자 했던 것이다. 이는 비영리법인들에 세제 감면 등 다양한 혜택을 부여하는 대신 영리활동의 영역을 침범하지 말고 공익적 활동 및 자선활동 등에만 제한한 것과 같은 이치다.
비벡은 말한다. 즉 회사법은 기업의 목적을 주주이익으로만 한정함으로써 민주주의와 여타 시민 사회를 기업의 막강한 영향력으로부터 차단하고 보호하고자 했다.
따라서 비벡은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분리해야 할 시점에, 오히려 ESG 혹은 이해관계자 자본주의가 그 연결고리를 강화함으로써 거대한 자산을 보유한 기업들이 사회의 핵심 가치와 방향성을 결정하고 좌지우지하는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고 말한다.
민주적 사회란 기본적으로 주식 보유 유무 및 그 규모 등과 무관하게 누구나 동일한 1인 1표의 선거권을 부여받는다. 그리고 그 선거권의 행사를 통해 의사결정이 이루어지고 작동되는 사회이다. 그런데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는 이 기본원칙을 무너뜨릴 수도 있다는 주장이다.
자칫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로 인해 민주주의 정신이 훼손될 수 있고, 정파성에 의해 보다 강화된 이해관계자 자본주의가 '자본주의' 그 자체를 죽일 수도 있다고 말한다. 이것이 바로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로 인해 예상되는 또 다른 부정적 외부성의 문제다.
따라서 워크 주식회사란 사회 정의나 환경 문제 등에 깨어 있는 듯하나, 다른 시각을 결코 용납하지 않는 좌파적 기업운동이나 그 세력의 눈치를 살피는 투자자 그룹이나 경영진을 주로 통칭한다.
비벡의 주장에 일리도 있다. 즉 ESG가 당파적 계산과 득실에 의해 과도하게 정치화되었을 때 당초 그 원형으로부터 변형, 일탈돼 또 다른 부정적 외부성을 야기할 수 있는 개연성을 비벡이 예리하게 포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주장의 치명적 오류는 ESG투자나 경영의 광범위한 이념적 스펙트럼 상에서 좌측 극단에만 그가 의도했든 의도치 않았든 천착했다는 점이다. 즉 그 극단에 위치한 이해관계자주의와 최근 주류 자본시장이나 주류 경영계에서 주목하는 ESG투자와 경영은 커다란 차이점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 점을 놓쳤다.
비벡이 상정하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란 기업의 막대한 재력, 로비력, 네트웍, 영향력과 기업인의 정계진출 등으로 좌파적 국가 정책 결정 및 급진적 제도와 규제 등이 도입됨으로써 자유 시장경제가 위협받고 결과적으로 민주적 여론 형성과 사회운영 시스템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하지만 그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예처럼 극우 성향 기업인의 정치 참여 사례는 간과한다.
비벡이 놓치고 있는 점은 또 있다. 최근 유행하는 ESG는 투자와 경영 메커니즘을 활용한 접근법일 뿐이지, 좌파적 급진적 사회개혁 운동과는 무관하다는 점이다. 물론 ESG를 정파적 목적으로 극단화하려는 일부 정치집단들은 존재할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은 소수의 예외적 극단론자들일 뿐이다.
현재와 향후, 금융과 자본시장에서 운위되는 ESG는 가장 시장주의적인 접근법 중 하나이다. 투자와 경영의 핵심 중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위험과 기회'의 매니지먼트에 있어서 전통적인 재무 중심 뿐만 아니라 비재무 변수까지, 유형적 자산뿐만 아니라 무형적 자산까지 체계적으로 정량화해서 관리하자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예를 들어 보겠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탄소 배출은 투자와 경영의 고려요소가 아니었다. 하지만 온실가스배출권 거래제도, 탄소세, 탄소국경조정세 등이 등장한 오늘날에는 기업들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변수로 등장했다.
기업 재무실적을 결정하는 매출, 자본투자, 운영비용 등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가 되었다는 뜻이다. 특히 에너지 과소비형 중후장대 제조업에는 더더욱 그렇다. 따라서 탄소중립 2050년을 향해 가는 시대에 있어서, 이에 대응하지 못하는 기업들은 문을 닫을 수도 있다. 그러면 해당 기업의 주주들이 가장 큰 피해를 입는다. 지극히 주주자본주의 차원의 문제인 것이다.
ESG를 워크 주식회사의 수단, 즉 경영자들이 자신의 진보적 가치관이나 세계관을 확산시키고자 이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경계해야 한다. 하지만 '워크(깨어있는 듯한)'를 상정해 놓고 ESG를 비판하는 것은 번지수가 틀려도 한참 틀렸다.
향후 ESG는 SNS시대에 중요한 기업 내·외부 이해관계자 관계 관리, 탄소 및 각종 오염 물질 배출 관리, 기업 내 인권 및 안전 문제, 기업 문화 및 투명성 측면을 평가 관리할 수 있는 지표 혹은 프레임워크로서 더욱 주목받을 것이다. 다만 특정 정치세력이나 집단들이 정파적 목적이나 이익을 위해 ESG를 오남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감시 견제해야 한다.
뉴스웨이 정백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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