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액제 중심 매출 둔화···임상실험 전년比↓
5일 업계에 따르면 의대 정원 증원에 반발하는 의료계 집단행동이 4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격화된 의정 갈등이 가라앉을 기미를 보이지 않으며 지난 4일 한국환자단체연합회·한국유방암환우총연합회 등 92개 환자단체까지 집회에 나서는 등 사태가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역대 최대 규모 환자단체 집회가 벌어진 이유는 의대 교수의 집단휴진이 이어지고 있는 탓이다.
가장 먼저 '무기한 휴진'에 돌입했던 서울대 의대·병원 교수는 지난달 24일 휴진을 중단했지만, 세브란스병원은 무기한 휴진을 진행 중이다. 서울아산병원은 지난 4일 '진료 재조정'이라는 이름으로 집단행동에 돌입했고, 고려의대 소속 병원, 충북대병원 등도 무기한 휴진을 예고했다.
상급 종합병원 등의 진료 공백이 이어지며 관련 산업에도 타격이 불가피해졌다.
특히 HK이노엔과 JW중외제약처럼 항암·수액제를 판매하는 제약사는 2분기부터 매출이 둔화될 전망이다.
지난달 25일 상상인증권에 따르면 HK이노엔의 올해 2분기 수액제 매출 증가율은 5%로, 기존 분기 평균 10% 내외보다 낮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상상인증권은 의료파업 이슈로 종합병원 영업환경 불확실성이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HK이노엔은 생리식염수와 포도당 등 기초수액제를 비롯해 영양수액, 특수수액 등 다양한 수액제 제품군을 갖췄다. 2분기 수액제 매출 비중은 13.1%로 추정되는데, 의료파업으로 인해 매출 둔화를 보이는 것은 수액제 비중의 50%를 차지하는 저수익 기초수액제다.
하현수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상급 종합 병원의 수술, 입원 감소가 장기화될 경우 일부 수액제 매출 감소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JW중외제약도 올해 2분기 수액제 부문 매출로 538억을 낼 것으로 관측된다. 전년 동기 대비 6% 감소한 수준이다. 지난 1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0.2% 감소한 514억원으로 비교적 영향을 적게 받은 편이다.
국내 수액제 시장 1위를 차지하고 있는 JW중외제약은 영양수액, 일반수액, 특수수액 등을 판매하고 있다.
올해 1분기 기준 '위너프'를 비롯한 영양수액은 전체 매출의 약 18%(325억원)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일반수액은 약 11%(193억원), 특수수액은 약 4%(77억원) 수준이다. 수액제 부문이 전체 매출의 약 33%를 담당하고 있다.
한 제약업계 관계자는 의정 갈등이 수액제 매출에 미칠 영향에 대해 "2분기부터 실적에 반영되며 영향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다만 올 2분기에도 아직 의료파업이 미칠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
국내 의약품 시장은 전년 동기 대비 성장한 것으로 집계됐기 때문이다.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올해 5월 국내 의약품 경상 금액(판매액)은 2조5795억원으로 전년 동기(2조4734억원) 대비 4.2% 증가했다.
지난 1월 국내 의약품 경상 금액은 2조6031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6.3% 성장했는데, 이후 2월 8.4%, 3월 3.7%, 4월 4.7%, 5월 4.2% 등 5개월 연속 성장세를 유지했다.
이는 파업에도 불구하고 대형 병원 의약품 구매가 크게 줄지 않은 데다가 환자 대부분이 의료 공백 우려에 장기 처방을 원하면서 오히려 의약품 구매가 늘어난 경우도 있어서로 분석된다.
5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국내 주요 제약사 매출에도 큰 타격은 없을 것으로 추정된다.
유한양행의 올해 2분기 매출 컨센서스(증권사 추정치 평균)는 전년 동기보다 6.3% 늘어난 5268억원으로 제시됐다. GC녹십자 매출 컨센서스는 5.1% 증가한 4551억원, 한미약품 매출 컨센서스는 12.9% 늘어난 3869억원을 기록했다.
대웅제약은 2분기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1.9% 증가한 3499억원을 기록했을 것으로 추정됐고, 종근당의 2분기 매출 컨센서스는 전년보다 3.2% 감소한 3836억원을 기록했다.
이중 유한양행과 대웅제약은 일부 품목이 의료 파업에 따른 매출 둔화를 보였으나 이를 제외한 나머지 품목이 실적 호조를 보이면서 영향이 상쇄된 것으로 파악된다.
위해주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대웅제약은 1분기에 역성장했던 에볼루스향 수출이 다시 성장하며 의협 파업 여파에 따른 ETC 사업부의 일시적 역성장을 상쇄할 것"이라고 말했다.
종근당의 실적 감소는 올해 들어 위식도역류질환 치료제 '케이캡' 판매계약이 만료된 탓으로 의료 파업과는 큰 관련이 없었다.
의료 파업이 실적에 결정적 영향을 가하고 있진 않지만, 대형 병원을 중심으로 영업·마케팅 활동이 제한되며 사업에는 직간접적으로 악영향이 미칠 것으로 보인다.
실제 동아쏘시오그룹은 지난달 정재훈 동아쏘시오홀딩스 대표를 동아에스티 사장으로 선임하고, 김민영 동아에스티 사장은 지주사 동아쏘시오홀딩스 대표로 선임하는 인사 '맞교체'를 진행했다.
이번 인사는 의료 공백 장기화 등 어려워진 경영 환경에 대처하기 위한 인사로 풀이된다.
동아쏘시오그룹 관계자는 "동아쏘시오그룹은 어려운 경영환경을 극복하고 지속가능한 성장에 필요한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각 사업에 대한 전문성과 경험을 가진 적임자를 배치하는 임원 인사를 단행했다"고 말했다.
이외에 제약사 연구개발 분야에서도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보건복지부 한국임상시험참여포털에 따르면 지난 2월 전공의 집단사직 이후 6월까지 4개월간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를 받은 임상시험은 총 328건으로 조사됐다. 이는 전년 동기(428건) 대비 30.4% 줄어든 수치다. 대학병원 교수까지 파업에 참여하며 임상시험 승인계획서(IND) 작성 등 임상 진행 절차가 늦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증권가에서는 의료 파업이 제약사 실적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이라면서도 사태가 확대되면 불확실성이 커질 것으로 봤다.
하태기 상상인증권 연구원은 "기초수액제는 저수익 제품이어서 수익성에 미치는 영향은 적다"면서도 "다만 파업이 현재보다 크게 확대된다면 실적 불확실성이 커질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뉴스웨이 이병현 기자
bottlee@newsway.co.kr
저작권자 © 온라인 경제미디어 뉴스웨이 ·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