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 담아 사과"···'유증 논란'에 고개 숙인 최윤범 "의장·대표 분리해 독립성 강화···외국인 이사 선임""주주의 합리적 선택 믿어···주총 반드시 승리할 것"
"이사회 독립성 높여 주주·투자자 신뢰 회복"
최윤범 회장은 13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일반공모 유상증자 추진 과정에서 발생한 시장 혼란과 주주·투자자 우려에 대해 진심을 담아 사과한다"며 이 같이 밝혔다.
또 "이사회 의장과 대표이사 분리에 이어 독립적인 사외이사가 이사회 의장을 맡도록 함으로써 이사회의 독립성이 한층 강화될 것"이라며 "해외 주주·투자자와 소통 강화 차원에서 외국인 사외이사를 선임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동시에 최 회장은 주주 환원 정책도 내놨다. 분기배당을 도입하고 배당 기준일 이전 배당을 결정해 예측 가능성을 높인다는 방침이다. 소액주주 보호 노력도 지속한다. 기관투자자와 소액주주의 권리를 보장하고 경영 참여를 강화하는 내용을 정관에 담아 시장의 여론에 귀를 기울이기로 했다.
물론 경영에서 완전히 손을 떼겠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사회 의장에서 물러나겠다고 했을 뿐, 사내이사 자리에 대해선 별도로 언급하지 않았다.
냉랭한 여론 의식했나···'2.5조 증자'도 전면 백지화
최 회장의 이 같은 행보는 유상증자 발표와 맞물려 급격히 얼어붙은 여론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자사주 공개매수가 종료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상반된 성격의 증자가 뒤따르자 상당수가 등을 돌렸고, 금융당국의 수사망에까지 올랐기 때문이다.
결국 고려아연은 이날 임시 이사회를 열어 유상증자를 철회하기에 이르렀다. 유상증자 결의 당시 예상하지 못했던 주주와 시장 관계자의 우려를 지속 경청하고 사외이사 중심의 독립적인 숙의 과정을 거쳐 이 같이 결정했다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지난달 30일 고려아연은 전국민 대상 일반공모 유상증자 방침을 확정지은 바 있다. 이는 발행주식(소각대상 자기주식 제외)의 20%에 해당하는 총 373만2650주를 추가해 2조5000억원을 끌어모으는 것을 골자로 한다.
소액주주와 기관투자자 등에게 주주로 참여할 기회를 제공해 '소유 분산'을 실현하고 경영 투명성을 강화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궁극적으로는 더 많은 우호 지분을 확보하기 위함이었다. 현재 양측의 지분율을 보면 약 39.83%와 34.65%로 최 회장 측이 5%p 뒤처져 있는데, 증자를 거치면 격차를 좁히고 우군을 늘리는 효과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고려아연은 모든 청약자에 대해 모집주식수의 3%까지만 참여를 허용하면서도 우리사주조합엔 20%를 배정하는 강수를 뒀다. 영풍·MBK 연합을 견제하고 조합에 힘을 실어줌으로써 우군을 키우겠다는 계산에서 비롯된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 조합이 예정된 물량을 모두 소화하면 최소 3%의 지분이 최 회장 측 우호지분에 편입된다.
하지만 금융감독원은 단호했다. '두산 지배구조 개편' 논란 당시와 마찬가지로 고려아연 측에도 증권신고서 정정을 요구하며 사실상 제동을 걸었다. 투자자에게 중대한 오해를 일으킬 수 있다는 이유다.
금감원은 주당 89만원에 자기주식을 공개매수한 직후 이와 상반된 성격의 유상증자를 발표한 데 의구심을 거두지 않고 있다. 동시에 회사 측이 공개매수가 완전히 끝나기도 전에 유상증자 계획을 수립하고 이를 공시하지 않았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예의주시하고 있다.
함용일 금감원 부원장은 31일 기자간담회에서 "고려아연 이사회가 차입을 통해 자사주를 취득해 소각하겠다는 계획, 그 후 유상증자로 상환할 것이란 계획을 모두 알고 순차적으로 절차를 진행했다면 기존 공개매수 신고서에는 중대한 사항이 빠진 것"이라며 "부정거래 소지가 다분한 것으로 본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고려아연이 공개매수 기간 유상증자를 추진한 경위 등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살펴볼 것"이라며 "부정한 수단 또는 위계를 사용하는 부정거래 등 위법 행위가 확인되면 회사와 관련 증권사에 책임을 묻겠다"고 예고하기도 했다.
경영권 분쟁, 연말 임시 주총서 판가름···최윤범 '플랜B' 주목
대규모 유증을 통한 경영권 방어가 불발에 그치면서 최윤범 회장은 서둘러 '플랜B'를 짜야하는 처지가 됐다. 현재 영풍·MBK 연합은 장내 매수로 지분 1.36%를 추가 취득함으로써 지분율 격차를 5%p 넘게 키웠다. 설상가상 '우군'으로 분류되던 한국투자증권이 고려아연 지분을 전량 매각하는 등 일부 이탈도 포착되고 있다. 따라서 7.5%의 지분으로 캐스팅보트를 쥔 국민연금을 설득하는 게 최 회장의 숙제라는 진단이 나온다.
재계에선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이 이르면 연말 임시 주총에서 판가름 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영풍·MBK 연합은 지난달 28일 윤석헌 전 금융감독원장과 권광석 전 우리은행장 등 총 14명의 이사 후보를 제시하며 회사 측에 이사회 재편과 집행임원제도 전면 도입을 위한 임시 주총을 소집해달라고 제안했다.
이와 관련 고려아연 관계자는 "약탈적 사모펀드 MBK파트너스와 적자 제련 기업 영풍이 강행하는 적대적 M&A를 저지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일 것"이라며 "기관투자자와 소액주주, 협력사, 시장의 이해관계자, 국민들과 더욱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겸허한 자세로 의견을 경청해 지지를 이끌어 내겠다"고 말했다.
이어 "주주 구성이 확정된 뒤 열리는 주주총회에서는 단기적 투자 수익 회수보다 기업의 장기적인 경쟁력과 비전, 향후 사업 협력의 필요성 등을 고려한 주주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최 회장 역시 영풍·MBK 연합으로부터 경영권을 지키겠다는 의지를 재확인했다.
최 회장은 "만약 유상증자 철회를 통해 필패가 예상된다면 무리가 되더라도 추진해 볼 생각이었지만, 우리는 지금까지 고려아연을 지지한 굉장히 많은 주주들이 있다"며 "이분들의 신뢰를 되찾을 수 있다면 다가오는 주총에서 절대 지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고 호소했다.
이어 "고려아연의 경영권에 대해 최종적으로 결정할 분들의 규모와 독립성을 생각해보면 영풍·MBK연합과의 지분 격차가 크게 판을 흔드는 상황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뉴스웨이 김다정 기자
ddang@newsway.co.kr
뉴스웨이 차재서 기자
sia0413@newsw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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