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와 경제는 긴밀하게 얽혀 있지만, 정치의 시간이 멈춘다고 경제가 멈출 수 있는 건 아니다. 다만 풀어줘야 할 문제가 멈춰 있어 건강한 진행에 과부하가 걸릴 따름이다. 내수 경기는 내란의 여파로 성수기를 잃었고, 기업들은 미국에서 다가올 다양한 부담을 정치가 헷지해 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여러가지 복안을 고민하며 전전긍긍해야 한다.
그나마 시급한 것들은 언제라도 시급하게 불을 끌 수가 있으나, 지금 결정해야 할 중장기 개혁 과업들은 때를 놓치면 큰 타격이 될 수 있다. 의료개혁이 그렇다. '2000명 증원'으로 인해 전공의들은 집단으로 사직했고, 의대생들은 휴학했는데도 결과적으로 증원은 그대로 추진됐다. 정시 진행 전까지 논의할 한 번의 골든타임이 있었으나, 12.3 비상계엄으로 드러난 내란 사태와 탄핵 정국 속에서 멈춰버렸다.
최근 코로나19를 비롯한 독감이 다시 기승이고 병의원의 환자가 폭증하고 있다. 얼마 전에는 출산을 앞둔 산모가 응급실을 찾지 못해 비극을 겪기도 했다. 뉴스에 등장하는 사건들의 급박함이 사람들에게 의료대란의 문제점에 대해 경각심을 주지만, 사실 그 기저에는 와해를 걱정해야 하는 의료 체제가 있다. 전공의 체제가 빠르고 효과적으로 재건되지 않는다면 'K-의료'는 역사 속 유물이 되고 말 것이다. 문제는 테이블에 누가 어떻게 앉을지조차 지금은 교섭주체가 분명하지 않다는 것이다.
대통령의 권한 승계 순위는 총리, 경제부총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과학기술정통부 장관 순으로 내각의 서열을 따른다. 대통령이 탄핵 되었고 내각이 힘을 쓸 수 없는 상황에서 내각의 일원들이 정부를 통할한다.
그런데 대행의 입지 자체가 정치적으로는 탄핵 이전이나 정부 교체 이전의 '관리'에 달렸기 때문에, 정치적 의사결정 자체를 내리기 어렵다. 물론 한덕수, 최상목 두 권한 대행의 재의요구권 행사와 헌법재판소장 임명의 건이 정치적 권한을 얼마나 발휘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쟁을 빚어냈지만, 모든 것을 말해주는 것은 아니다. 의정협의 같은 '사회적 교섭' 등 정부가 적극적인 의사결정을 하는 문제에 있어서는, 대통령이나 여당의 '적극적' 정치적 의지가 작용하지 않아 논의를 일반적인 행정 절차에 따라 방기할 소지가 크다. '당정 협의'가 1월 27일 임시 공휴일 지정 등으로 작동하는 것 같지만, 사회적 갈등 조정에서는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여기서 곧바로 '여야의정 협의체' 형태를 제안할 수도 있겠지만, 여와 야가 한 테이블에 모이기 힘든 탄핵 정국에서 특별한 정치적 결단 없이 과연 얼마나 효과적인 논의가 가능할지도 의문이다. 여야의정 협의체는 계엄 이전 정국에서도 결과를 내지 못하고 파행으로 마쳤다. 현재도 전공의들의 복귀만 마냥 기다리며 입영연기나 수련특례 등의 미봉책만 내놓거나, 의대생들의 휴학을 유예시킬 거냐 말거냐만 논의하는데, 의대 정원 문제가 해소되지 않는 이상 백약이 무효다.
헌법재판소와 법원의 시간은 관저에서 체포 영장이 집행되는 지의 여부나, 다양한 정치적 논란과 별개로 꿋꿋하게 진행될 것이다. 탄핵에 대한 정치적 갈등이 양극화된 형태로 심화되더라도 결국 현재와 법원은 결론을 내릴 것이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다른 방식의 정치, 즉 경제와 사회가 작동하기 위해 필요하고 일상적인 행정절차로만 해결되지 않는 사회경제적 영역의 정치가 멈춰서 중장기적 전망을 망가뜨릴 수 있다는 것이다.
정권탈환을 노리는 다수 야당이든, 소수이지만 여전히 당정협의를 하는 여당이든 누군가 책임을 지겠다는 각오로 효과적으로 교섭해야 하지 않을까? 지금까지 대학 병원 응급실이 문제였다면, 좀 지나면 수술실이, 그 뒤에는 일반 병동과 외래로 누적된 스트레스가 의료의 총체적 위기를 만들고 구조를 위협할 것이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전하는 문제로 싸우고 있는 게 아닌가? 누군가는 나와 줬으면 한다.
뉴스웨이 차재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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