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 출신 첫 금감원장···3년간 '최강 존재감' 과시민감 현안마다 직접 개입하며 월권 논란도 자초결국 사과하며 퇴장···리더십·혼선 사이 엇갈린 평가
이 원장은 5일 오전 9시 50분경 금감원 기자실을 방문해 기자들과 악수하며 작별인사를 나눴다. 이 원장은 "여러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최적의 시기에 가장 좋은 모습으로 그만둘 수 있게 돼 감사한 마음이 크다"며 "새로운 정부의 경제정책이 나오게 되면 시장 원리에 맞게 금감원이 잘 지원할 수 있도록 날카롭게 지적해 달라"고 퇴임 소감을 밝혔다.
이 원장은 "당분간 재충전하며 휴식할 것"이라면서도 차기 행선지에 대한 힌트를 남겼다. 이 원장은 "앞으로도 다양한 방식으로 경제·금융 문제에 대해 다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며 "기회가 된다면 해외 대학이나 연구기관에서 연구할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다"고 언급했다.
이어 "변호사 사무실은 이미 수년 전에 개업 신고를 해둔 상태라 절차상 재개업 신고만 하면 실무는 가능하다"며 "그렇다고 당장 본격적인 활동을 하겠다는 건 아니고 최소 1년 정도는 제 자신을 정비하는 시간을 가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끝으로 "부동산 PF 정리 등이 좀 더 속도감 있게 진행됐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없지는 않지만 이제 다른 분들의 몫"이라며 "저는 밖에서 응원하면서 필요하다면 글이나 다른 방식으로 제 의견을 드릴 수 있도록 하겠다"고 부연했다.
재충전 후 새 역할 준비···금융산업 연구에 관심
이날 오전 10시경 금감원 2층 강당에서 열린 퇴임식에서는 약 10분간 이 원장의 퇴임사 낭독이 이어졌다. 이 원장은 강원중도개발 회생신청부터 전세사기, PF 부실화, 위메프·티몬 사태, 홈플러스 회생까지 임기 중 주요 이슈들을 조목조목 나열하며 위기 대응 역량을 강조했다. 특히 금융감독기관 수장으로서의 '컨트롤 타워' 역할에 대해 상당한 자신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 원장은 퇴임사에서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도 금융시장 안정과 소비자 보호라는 사명을 흔들림 없이 수행해 왔다"며 "기민한 유동성 관리와 명료한 메시지 전달로 시장 혼란을 최소화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 경제의 뇌관으로 지목돼 온 부동산 PF에 대한 선제적 구조조정을 추진했다"며 "AI 기반 디지털화가 금융산업에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망분리 규제를 완화했다"고 되짚었다.
한자리에 모인 주요 임직원에게는 향후 추진과제 5가지를 당부했다. ▲금융개혁 통한 생산성 확보 ▲디지털 전환 완수 ▲정보 공유와 협업 강화 ▲업무방식·범위의 유연화 ▲시장 및 언론과의 소통 등이다. 이 원장은 "금융이 심리라면, 금융감독은 메시지"라며 "명료한 전달과 상호작용이야말로 감독기관의 핵심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이 원장은 임기 중 쏟아진 비판을 의식한 듯 "모두가 다 제 부족 탓"이라며 사과의 말을 전했다. 이 원장은 "저의 경직된 태도, 원칙에 대한 집착으로 인해 부담과 불편을 느끼셨을 여러 유관기관, 금융회사나 기업의 관계자 여러분께도 이 자리를 빌려 송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며 고개를 숙였다.
이 원장은 권한을 넘어서는 발언과 행동으로 임기 내내 월권 논란에 시달려왔다. 지난 3월 상법 개정안에 대한 정부의 거부권 행사에 대해 "직을 걸고 반대하겠다"고 언급한 게 대표적이다. 이 원장은 한덕수 전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의 거부권 행사 이후 김병환 금융위원장에게 사의를 전달했으나 경제부총리와 한국은행 총재 등의 만류로 결국 임기를 채웠다. 이는 법무부와 금융위의 영역에 해당하는 사안에 대해 금감원장이 의견을 낸 것으로, 정부 내에서 정책 혼선을 초래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지난 2월 금감원은 상장기업의 공모 유상증자에 대해 중점 심사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기업의 경영 활동에 해당하는 내용을 감독당국이 직접 들여다보겠다는 것으로, 기업 자금조달까지 좌지우지하려 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지난 2023년 3월에는 이 원장이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공매도 완전 재개를 언급한 것이 도마 위에 오르기도 했다.
검사 출신 다운 강공 드라이브···논란 딛고 임기 3년 마무리
사상 첫 검사 출신 금감원장 타이틀을 쥔 이 원장은 임기 내내 금융감독 권한을 강하게 휘둘렀다. 손태승 전 우리금융 회장의 연임 시도에 제동을 걸고 임종룡 우리금융 회장과 조병규 전 은행장을 상대로 부정대출 책임론을 제기한 것이 대표적이다. 당시 이 원장은 "CEO들이 직을 걸고 책임져야 한다"며 직접 압박했고, 결국 조 전 행장의 자진 사퇴로 이어졌다.
두산밥캣과 두산로보틱스의 합병안에 대해선 공정한 합병비율 미흡과 주주가치 훼손 우려를 이유로 두 차례 정정 요구를 냈고, 두산 측은 합병을 철회했다. SM엔터테인먼트 주가조작 의혹과 관련해서도 수사 중간결과를 이례적으로 공개하는 등 검사 경력을 바탕으로 수사기관 수준의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임기 내내 공격적인 발언과 행보로 논란을 자초해온 만큼 스스로 사과한 것은 후폭풍을 의식한 것으로 해석된다"며 "경직된 태도나 원칙에 대한 집착을 직접 언급한 건 본인의 강한 스타일을 인정하면서 후임자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의도로 읽힌다"고 평가했다.
이어 "각종 논란이 있었지만 강도 높은 개입과 메시지로 시장 질서 회복에 일부 기여했다고 본다"며 "지난 3년은 금감원의 존재감이 가장 도드라졌던 시기로 기억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뉴스웨이 박경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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