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세계 질서의 대격변과 주주자본주의의 역사적 특수성에 대해 짚어 봐야 한다. 주지하듯, 2차 대전 이후 WTO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흐름 속에서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통한 효율성 극대화가 최우선 가치였다. 주주자본주의는 이러한 환경에 최적화된 기업 거버넌스 모델 중 하나다. 하지만 세계 질서와 국면은 경천동지하고 있다. 그 전환점은 코로나 팬데믹, 미·중 패권경쟁 격화, 러·우 전쟁, 트럼프 재등장 등이었다. 이러한 세기사적 사건으로 인해 앞서의 질서는 와해되기 시작했고, 그 자리에 각자도생의 신중상주의(Neo-mercantilism)적 질서가 들어서고 있다. 미국 바이든 행정부의 IRA, 트럼프의 관세정책, EU의 CBAM 등 각국은 자국 산업 보호와 공급망 안보를 위한 노골적 산업정책을 펼치고 있다. 이러한 지정학적 지경학적 변곡점에서, 특정 역사적 조건의 산물인 미국식 주주자본주의를 보편 타당한 모델로 인식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둘째, 앞의 연장선에서 다시 짚어 볼 부분이 있다. WTO 체제하에서는 자국 산업 보호 정책이 억제되고,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자원배분을 가장 효율적인 것으로 간주했다. 주주자본주의는 이러한 기조 속에서 기업의 목적을 주주 이익 극대화로 규정한다. 하지만 오늘날 반도체, 배터리, 인공지능, 양자 컴퓨터, 우주항공, 바이오 등 첨단 분야에서 국가는 '보이는 손'이 되어 직접 개입한다. 보조금 및 세제 등 국가 정책 및 재정을 통한 지원 확대가 뉴노멀이 되었다. 이는 더 이상 시장 기제가 기업과 국가의 생존을 담보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단기적 재무 실적에 매몰되기 쉬운 주주자본주의적 경영방식은 국가 차원의 장기 전략과 충돌하고, 글로벌 각자도생이라는 신시대에서 요구되는 과감한 선제 투자 및 장기투자를 저해하는 족쇄가 될 수 있다.
셋째, 약 80% 이상의 한국 상장사에는 지배주주로 불리는, 이른바 오너들이 존재한다. 이들은 현재 비판의 중심에 서 있다. 과거 이들 상당수가 범한 부당한 편법·불법적 사익편취 행위들 때문이다. 이제는 순환출자, 편법·불법적 승계, 불공정한 손익거래 및 자본거래 등과 같은 행위들은 근절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 지점에서 창업자와 일반 투자자 지분의 등가성에 대해서는 고민해 봐야 한다. 즉 회사를 창업하고 오랜 세월에 걸쳐 회사와 명운을 함께하며, 장기적 관점에서 엄중한 위험을 감수하며 회사를 키워온 창업자의 '위험 감수 지분(at-risk stake)'과 언제든 매도하거나 헤징 등을 통해 위험을 회피할 수 있는 상대적 단기의 일반 투자자 지분(tradable stake)이 동일하게 '1주 1표(one share one vote)'로 간주되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해서는 자본시장의 투자자 측면만이 아니라 한국경제 전반의 포괄적 관점에서 숙고가 필요하다. 미국의 경우에도 구글, 메타, 워런 버핏의 버크셔 헤더웨이, 포드 자동차 등 주요 기업들에서는 차등의결권(Dual-class shares) 도입을 통해 창업자(가문)들이 안정적 경영권을 행사하고 있다. 이러한 제도적 장치들로 인해 창업자 특유의 기업가정신과 혁신력이 고취되는 긍정적 측면이 발휘될 수 있다.
넷째, 현재 상법 개정을 적극 주도하고 있는 여당은 미국식 주주자본주의가 자신들의 강령에 부합하는지도 살펴봐야 한다. 즉 민주당 강령에서 웅변하는 '지속 가능한 혁신 생태계 구축'과 '성장의 과실이 국민 모두에게 돌아가는 시장경제'는 본질적으로 근로자, 협력업체, 지역사회, 소비자, 지구환경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를 배려하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Stakeholder capitalism)' 모델에 더 가깝다. 반면, 주주자본주의는 주주의 단기 이익을 위해 고용 축소, 협력사 단가 인하, R&D 투자 감소, 외부화 등 시장실패 유인을 가질 수 있다. 이는 지속 가능한 혁신 생태계를 위협하고 소득 불평등을 심화시켜 '국민 모두에게 돌아가는 성장'이라는 목표와 정면으로 배치될 수 있다. 따라서 민주당의 기본적 경제 정책 방향은 단순한 재무 이익 극대화를 통한 주주 이익 극대화를 뛰어넘어, 기업은 사회적 책임을 다하며 모든 이해관계자와 함께 성장하는 새로운 기업 거버넌스 모델을 지향해야 한다는 입장임을 알 수 있다.
글을 맺겠다. 지배주주의 전횡을 함의하는 '회장님 자본주의'는 분명 개혁되어야 할 낡은 유산이다. 그러나 그 대안이 미국식 주주자본주의의 무비판적 수용이 되어서는 안 된다. 급변하는 세계 질서와 국가 산업정책의 귀환, 그리고 창업가 정신의 가치 등을 입체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단기 주가에 얽매이는 경영방식은 새로운 시대와 세계 질서 속에서 오히려 국가와 기업의 장기 생존을 위협할 수도 있다.
이제 우리는 회장님 자본주의와 미국식 자본주의의 양극단을 모두 지양하고, 한국의 특수성을 반영한 제3의 길을 모색해야 하지 않을까. 이는 단기 이익 극대화의 함정을 넘어, 기업의 장기적 성장과 사회 전체의 이익이 조화를 이루는 '한국형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모델을 정립하는 것이다. 이 모델은 지배주주의 불투명한 경영과 사익편취는 엄격히 차단하되, 기업가정신과 장기적 비전은 보호하고 고취하는 이중의 과제를 안고 있다. 덧붙여, 성장의 과실이 주주에게만 집중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의 혁신을 함께 이끄는 근로자, 파트너인 협력업체, 그리고 기업이 뿌리내린 지역사회 모두에게 공정하게 분배되는 시스템을 지향해야 한다. 그리고 한국의 글로벌 위상에 걸맞게 이 모델을 세계에 알려야 한다. 한국의 고유한 모델을 구축하고 전 세계에 알린다면, 그것이 미국과 유럽 사이에서 새롭고도 강력한 캐스팅 보트 격의 거버넌스가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뉴스웨이 임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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