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 연체채권 매입·소각 본격화···113만명 구제 대상 포함정부·금융권 총 8400억 출연···은행권 "민간부담 과중" 불만도덕적 해이·형평성 우려···사후 관리 및 투명성 확보 관건
1일 오전 서울 한국프레스센터 신용회복위원회 본사에서 열린 새도약기금 출범식에는 강준현 더불어민주당 의원, 이억원 금융위원장, 이세훈 금융감독원 수석부원장, 정정훈 캠코 사장, 양혁승 새도약기금 대표이사, 조용병 은행연합회장 등이 참석했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축사에서 "코로나19 이후 취약계층과 소상공인의 부채 부담이 급격히 확대된 만큼 특단의 채무조정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새도약기금은 단순한 채무 경감을 넘어 장기간 빚의 굴레에 갇힌 분들이 경제활동의 주체로 복귀할 수 있도록 돕는 장치"라고 말했다.
새도약기금은 7년 이상 연체된 5000만원 이하 개인채권을 일괄 매입해 소각하거나 채무를 조정한다. 매입 규모는 16조4000억원, 수혜 대상은 약 113만4000명으로 추산된다. 이달부터 금융권 채권 매입을 시작해 1년간 순차적으로 인수하고, 내년부터 본격적인 소각·채무조정 절차가 진행된다. 기초생활수급자 등 최저소득층은 올해 안에 별도 심사 없이 우선 소각 대상에 포함된다.
구체적인 기준은 ▲중위소득 60% 이하이면서 회수 가능한 재산이 없는 경우 채무 전액 소각 ▲그 외에는 원금 30~80% 감면, 이자 전액 감면, 최장 10년 분할상환, 최장 3년 상환유예 방식이다. 채무자는 별도 신청이 필요 없으며, 새도약기금이 협약 금융회사로부터 채권을 매입하면 상환능력 심사 후 개별 통지된다.
16조4000억 장기 연체채권 정리···8400억 재원으로 가동
재원은 정부 재정 4000억원과 금융권 출연 4400억원이 함께 마련된다. 업권별로 은행이 3600억원, 생명보험과 손해보험이 각각 200억원, 여신전문사가 300억원, 저축은행이 100억원을 분담하기로 했다.
금융당국은 '배드뱅크'가 장기 연체자의 재기를 돕고 사회적 비용을 줄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장기 연체자는 급여·통장 압류와 신용 제약으로 정상적 생활이 어려운 경우가 많고 불법 사금융에 내몰리기 쉽다. 기금을 통해 이들을 제도권으로 복귀시키면 소비와 고용 증가, 사회적 안정 효과까지 기대된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금융권 안팎에선 지나친 출연 부담에 대한 우려가 적지 않다. 이미 서민·소상공인 지원에 수조원을 투입한 상황에서 추가 출연까지 요구받자 "민간부담이 과도하다"는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경기 둔화로 은행 수익성이 악화된 가운데 추가 부담이 건전성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경고음도 들린다.
도덕적 해이 가능성도 제기된다. 상환능력이 있어도 재산을 숨기거나 허위 신청으로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정부와 금융당국은 은닉재산 신고센터를 운영하고 부정 수급자는 금융질서문란자로 등록해 최장 12년간 금융거래에서 불이익을 주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현장 관리가 느슨해질 경우 제도 취지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는 여전하다.
성실 상환자와의 형평성 논란도 남아 있다. 꾸준히 빚을 갚아온 이들이 상대적으로 불리한 처지에 놓일 수 있다는 비판이다. 금융위는 성실상환자에게 이자 감면과 저리 대출을 지원하겠다는 계획이지만 실효성에는 물음표가 달린다.
해외 배드뱅크 매입가 산정 등 논란···사후관리 뒷받침돼야
스웨덴은 1990년대 초 금융위기 당시 부실 대출을 떼어내기 위해 국책 자산관리회사(AMC)인 세쿠룸(Securum)과 레트리바(Retriva)를 설립했다. 이들은 은행이 떠안은 부실자산을 보수적인 가격으로 인수한 뒤 장기간에 걸쳐 청산하며 시장 충격을 완화했다. 다만 초기에는 부실자산 평가를 둘러싸고 금융권과 갈등을 빚는 등 한계가 적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아일랜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부동산 버블 붕괴로 대규모 부실이 발생하자 국가자산관리청(NAMA)을 설립해 은행권 부실채권을 대거 인수했다. 하지만 매입가 산정 과정에서 은행과 정부가 충돌했고, 부동산 경기 침체로 자산 매각이 지연되면서 회수에 난항을 겪었다. 운영 과정에서 감독과 거버넌스 부족에 따른 비효율, 내부 이해충돌 가능성도 지적됐다.
스웨덴과 아일랜드의 배드뱅크 사례는 공정한 매입가격 책정과 자산 회수 속도, 운영 투명성 등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채권 매입과정에서 금융권의 협조를 끌어낼 수 있는 합리적 기준과 도덕적 해이·형평성 논란을 최소화할 수 있는 엄격한 사후 관리 장치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금융권 관계자는 "취약차주 지원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출연 부담이 계속 늘어나는 상황에서 관리가 허술하면 결국 금융회사만 손실을 떠안게 될 수 있다"며 "매입가 논란이 길어지거나 회수 과정이 지연되면 사회적 비용을 키우고 제도 자체가 신뢰를 잃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뉴스웨이 박경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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