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타이거 우즈도 첫 티샷 헛방 날렸다

전문가 칼럼 정현권 정현권의 싱글벙글

타이거 우즈도 첫 티샷 헛방 날렸다

등록 2026.02.05 13:57

수정 2026.02.05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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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 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 섰다."

일본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작품 '설국'의 첫 문장이다. 일본 문학 도입부의 정수로 불린다.

주인공 시마무라 눈에 비친 풍경을 공감각적으로 간결하게 묘사했지만, 여유롭고 푸근하다. 일본에선 현과 현 사이 경계도 국경으로 부른다.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김훈의 소설 '칼의 노래' 첫 문장이다. 글쓰기를 배우는 사람은 물론 작가 지망생들에게 첫 문장의 백미로 꼽힌다. 이 문장을 뽑느라 그는 일주일 동안 담배만 피워댔다는 후문이다.

타이거 우즈도 첫 티샷 헛방 날렸다 기사의 사진

첫 문장은 서사를 풀어내는 첫 단추로 강한 흡인력을 가져야 한다. 좋은 첫 문장을 뽑아내면 다음 글이 가래떡처럼 술술 나온다.
새해 첫 라운드를 앞두고 골퍼들은 작년 감각을 제대로 살릴 수 있을지 긴장된다. 첫 티샷이 가장 난제다.

티잉 구역(Teeing area)에 오르면 설렘과 불안이 교차한다. 첫사랑마냥 들뜨면서도 깨질까 두렵다.

이들을 두고 생전에 JP(고 김종필 총리)는 백구백상(白球百想)이라고 말했다. 흰 공에 백 가지 상념이 깃든다.

심리적 압박에 누구나 먼저 치기를 주저한다. 티를 던지거나 카트에 실린 백 순서대로 공정하게 차례를 정한다. 프로대회에서는 같은 조에서 추첨하거나 주최측에서 미리 알려준다.

타이거 우즈는 2009년 프레지던츠컵 개막전 1번 홀 시작과 함께 전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힘차게 헛스윙을 하고 말았다. 순간 관중석이 술렁이고 중계진 말문도 막혔다. 우즈는 머쓱하게 웃고 다시 어드레스를 취하고는 정상적으로 두 번째 샷을 날렸다.

짐 퓨릭은 2015년 BMW챔피언십에서 첫 티샷으로 날린 공이 45도 각도로 튀어나가는 황당한 경험을 했다. 안정감의 상징이자 스윙 교과서로 불리는 그가 수많은 관중 앞에서 극단적인 생크(Sank)를 냈다. 관중석에서 "오~"하며 웃음이 터졌고 퓨릭은 고개를 들고 씩 웃었다.

언젠가 세 번이나 헛방을 날리고 미안해서인지 부리나케 공을 집어 들고 티잉 구역을 내려온 옛 직장동료도 생각난다. 전날 과음에 따른 숙취로 도저히 공을 맞출 수 없었던 것이다.

타이거 우즈도 첫 티샷 헛방 날렸다 기사의 사진

첫 티샷이 너나 할 것 없이 왜 두려운가. 전문가들은 우선 심리학적으로 관찰 스트레스 효과 때문이라고 한다.

프로 대회에선 숱한 관중에 둘러싸인 데다 카메라까지 켜져 뇌가 평가받는 상황으로 인식한다는 점이다. 전문용어로 '결과 선점 공포'라고 한다.

"첫 홀을 망치면 오늘 끝나는 거 아냐?"라며 일어나지 않은 미래를 앞당겨 불안해 하는 현상이다. 동반자와 캐디가 숨을 죽이고 간혹 뒤팀마저 지켜보면 긴장은 극에 달한다.

근육은 경직되고 아드레날린이 분비되면서 손이 미세하게 떨린다. 이런 긴장과 불안에서 벗어나려고 스윙이 평소보다 빨라져 슬라이스(Slice)나 토핑(Topping)으로 이어지고 헛스윙도 나온다.

박영민 한국체대 골프부 지도교수는 "프로선수는 덜 긴장하는 게 아니라 긴장을 다루는 법을 안다"고 말한다. "오늘 드라이버 잘 맞을까?"보다 "이 샷은 그냥 연습 스윙의 하나"로 받아들이라고 조언한다.

일종의 뇌를 속이는 방식인데 첫 홀은 '파 홀'이 아니라 '워밍업 홀'로 생각한다. 파를 잡기보단 페어웨이에 공을 안착시키는 데에 만족한다.

타이거 우즈도 첫 티샷 헛방 날렸다 기사의 사진

루틴은 평소보다 좀 늦게 하고 어드레스 들어가기 전에 숨을 한 번 크게 들이쉰다. 클럽을 10% 정도 느리게 뒤로 가져가고 평소보다 70~80% 정도 스윙한다.

티잉 구역을 활용하는 방법도 있다. 페어웨이 오른쪽이 무서우면 오른쪽, 왼쪽이 무서우면 왼쪽에 티를 꽂는다. 오른쪽이 무섭다면 페어웨이의 반을 잘라 오른쪽은 없다고 생각하고 샷을 하면 도움된다.

티를 꽂는 것도 중요하다. 경사진 왼쪽에 티를 꽂아야 하는 상황임에도 오른쪽이 더 평평하면 그쪽을 택해야 한다.

신지애의 경우 첫 티샷 전에 과도한 연습스윙을 경계한다. 홀을 바라보며 하는 빈 스윙은 어깨를 긴장시키고 클럽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가게 한다.

타이거 우즈도 첫 티샷 헛방 날렸다 기사의 사진

첫 티샷에 훅이나 슬라이스 구질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라고 한다. 첫 티샷은 장타(長打)보다 정타(正打)가 정답이라고 주문한다.

절대 빠르게 스윙하지 말라고 재차 강조한다. 천천히 백스윙하고 임팩트 전후 머리를 들지 말고 반드시 공에 시선을 둔 채 샷을 날린다.

좀 더 고수들을 위한 전문가 레슨도 있다. 세계 100대 교습가인 톰 스틱니는 다운스윙 때 몸의 회전속도는 낮출지라도 임팩트 지점을 통과할 때까지 회전은 계속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그래야 클럽이 손을 앞질러 나가지 않고 체중이 왼쪽에 실리면서 공은 바로 나가고 완벽한 피니시 자세가 나온다고 한다.

단순하고 깔끔하게 첫 티샷을 하는 사람을 보면 참 부럽다. '칼을 빼자 햇빛이 튕겨져 나갔다'는 김훈의 글이 생각난다.

단순함에서 나오는 강인함의 원천은 뭘까. 가장 깊은 생각은 가장 짧은 문장에 숨어 있고 가장 뛰어난 기술자는 그 기술을 느끼지 못한다.

논어의 그 단순하고 평범한 문장에 2500년 지혜가 살아 있다. 단순함은 오랜 수련과 인내를 거쳐 도달한, 더 이상 바랄 것 없는 완벽한 상태이다.

정현권 대한변리사회 미디어 전문위원 겸 지식재산뉴스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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