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 아닌 수어로 만나는 뱅킹···텍스트 너머 '제1언어'를 찾아서'세계 최초' 실사형 AI 아바타 구현···"미세한 표정까지 담았다"
특히 한국어 문장 구조와는 다른 체계를 가진 '수어'를 제1 언어로 사용하는 청각장애인들에게 복잡한 금융 언어는 늘 난해한 숙제였다. 카카오뱅크는 이 지점에 주목해, '실사형 AI 아바타'가 직접 표정과 수어로 금융 정보를 전달하는 'AI 수어 상담 서비스'를 선보였다.
서울 카카오뱅크 여의도 사무실에서 이번 프로젝트를 진두지휘한 신진상 CS플랫폼기획팀장을 만나 AI 기술과 소통의 온기가 결합된 서비스 개발 과정의 뒷이야기를 들어봤다.
세상에 없던 단어를 만든 1년···"모국어를 찾아서"
많은 사람들이 자막 서비스가 있으면 청각장애인의 불편이 해소될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신진상 팀장의 설명은 달랐다. 그는 "국어 단어가 50만개라면, 수어 단어는 1.4만개에 불과하다"며 "문법 체계도 완전히 다르다. 농인들에게 텍스트는 익숙한 모국어가 아닌 외국어와 같다"고 언급했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적금'이라는 단어로 예를 들어보면, 1대 1로 대응하는 수어가 없기 때문에 '하나/달/돈/저축하다'처럼 풀어서 설명하는 방식이다.
신 팀장은 "모바일 중심으로 금융이 빠르게 전환되는 환경에서 이런 정보 접근성 격차를 해소하지 못하면 오히려 디지털 전환이 새로운 금융 사각지대를 확대할 수 있다는 문제의식이 있었다"며 "장애 유무와 관계없이 누구나 금융 정보를 쉽게 이해하고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지향점을 바탕으로 청각장애인 고객들이 본인의 언어인 수어로 금융정보를 접할 수 있는 채널을 제공하고자 했다"고 서비스 취지를 설명했다.
AI 수어 상담 서비스는 '금융 언어 해석→수어 변환→영상제작→아바타 실사화'까지 네 단계를 거치는 1년간의 대대적인 도전 끝에 완성됐다. 특히 세상에 없던 '금융 수어 표준'을 정립하는 과정은 사실상 농인용 금융 용어집을 만든 과정이었다.
그는 "수어에는 존재하지 않는 금융 단어를 단순히 직역하는 게 아니라, 농인들이 가장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의미로 재해석하고, 새로운 수어 표현을 정립하는 과정에 가장 많은 공을 들였다"고 말했다.
단어를 만들어 낸 다음에는 '실사형 아바타' 구현이라는 새로운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수어에는 표정과 입 모양 같은 '비수지 신호'가 정보 전달의 30% 이상을 차지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애니메이션 캐릭터로는 한계가 명확했기 때문이다.
카카오뱅크는 기존 아바타의 이질감을 없애기 위해 노력했다. 수어를 실사화된 아바타 형식으로 서비스하는 것은 국내 금융권을 넘어 카카오뱅크가 세계 최초다.
신 팀장은 "기존 시장에 없던 기술이었기에 내부적으로도 '정말 구현 가능한가'에 대한 의문이 많았다"며 "하지만 끊임없이 연구하며 미세한 근육 움직임까지 구현해냈을 때 비로소 '이거다'라는 확신이 생겼다"고 강조했다.
"기반은 마련됐다"···다음 목표는?
쉽지 않은 과정이었지만 기획 단계에서 만난 농인 고객들의 반응은 큰 원동력이 됐다. 특히 그는 '우리만을 위한 전용 서비스가 나온다는 사실 자체에 감동했다'는 피드백을 가장 인상적인 후기로 꼽았다.
기존의 수어 서비스들이 일반 서비스 구석에 조그맣게 배치된 '부가 서비스'였다면, 카카오뱅크는 설계 단계부터 농인 고객을 주인공으로 설정했다. 농인으로 추정되는 고객에게 문의가 많았던 질문들을 위주로 별도 FAQ로 뽑아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그는 "실사형 아바타를 본 한 농인 디자이너는 '나도 구현하고 싶었지만 못 했던 기술'이라며 놀라워하셨고, 많은 분이 '사람이 직접 말해주는 것 같아 훨씬 친숙하고 신뢰가 간다'는 응원을 보내주셨다"며 "이런 피드백들 덕분에 기운이 났다"고 회상했다.
이번 AI 수어 서비스는 결승점 아닌 '새로운 시작점'이 될 전망이다. 신 팀장은 FAQ 중심인 수어 상담을 실제 뱅킹 거래 전반으로 확장하고 싶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기반은 만들어졌다. 다만 아직까지 기술적 한계로 당장 실현가능한 건 아니다. 수어는 손가락을 굽히는 각도와 손의 위치 등 작은 디테일에도 의미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실시간 수어 구현까지는 정교한 기술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신 팀장은 "실시간 서비스는 욕심나고, 언젠가는 꼭 해보고 싶은 과제 중 하나"라면서도 "협력 업체와 끊임없이 소통을 하고 있지만 정확한 시점을 말하기엔 시기상조인 것 같다"고 말을 아꼈다.
신 팀장의 시선은 비단 청각장애인 고객에게만 머물지 않는다. 카카오뱅크 CS플랫폼기획팀이 그리는 미래는 AI를 활용해 고령자와 디지털 취약계층 등 모든 고객이 금융 서비스의 주체로 우뚝 서는 것이다.
그는 마지막으로 "일상적으로 은행 이용을 돕는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확장하고 있다"며 "AI 수어 상담 서비스도 이런 고객 경험 혁신의 연장선이다. 기술 기반 접근성 혁신을 통해 금융 사각지대를 줄이는 데 힘쓰겠다"는 포부를 남겼다.
뉴스웨이 김다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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