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가 만든 300mm 원형 웨이퍼 안에는 1조 개가 넘는 빌딩이 촘촘하게 들어가 있다. 실제 건물은 아니지만 반도체 내부에 층층이 쌓이는 미세 구조물이 그만큼 높고 정교하다는 의미다. 한 구성원은 "부르즈 할리파보다 저희가 만드는 건물들이 훨씬 더 높은 건물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고 설명했다.
KBS 2TV <다큐멘터리 3일>은 11일 '처음 만난 세계 – 이천 SK하이닉스 72시간' 편을 방송했다. 이번 방송은 글로벌 반도체 경쟁의 중심에 선 SK하이닉스 공장을 주가와 실적표 밖 현장의 시선으로 조명했다. 방진복을 입고 장비 앞에 선 구성원들의 72시간을 통해 초미세 공정을 지탱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반도체는 웨이퍼 위에 미세 회로와 구조물을 층층이 쌓아 올리는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한정된 공간 안에 더 높고 정교한 구조를 구현하는 것이 곧 기술 경쟁력으로 이어지는 셈이다.
이천캠퍼스 팹 내부에서는 천장 레일을 따라 움직이는 OHT가 FOUP에 담긴 웨이퍼를 실어 나른다. FOUP 하나에는 웨이퍼 25장이 들어가며, 현장에서는 웨이퍼 한 장을 고가 자동차 한 대에 비유할 정도로 민감하게 다룬다.
손톱보다 작은 반도체 칩 하나가 완성되기까지는 최소 4개월 이상이 걸린다. 수백 개 공정과 반복적인 계측·검증을 거쳐야 하며, 겉으로는 매끈한 웨이퍼 한 장처럼 보이지만 내부에는 1조 개가 넘는 미세 구조물과 긴 제조 시간이 숨어 있다는 설명이다.
반도체 안의 빌딩은 단순히 높기만 해서는 안 된다. 구성원들은 구조물이 쓰러지지 않게 하고, 서로 붙지 않게 하며, 설계된 위치와 형태 그대로 구현되도록 공정을 관리한다. 미세한 오차 하나만 발생해도 성능과 수율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은 단순 자동화 작업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로봇이 웨이퍼를 운반하고 장비가 공정을 수행하지만, 문제 부품을 교체하고 이상 여부를 확인하며 조건을 조정하는 역할은 결국 사람의 몫이라는 설명이다. 장비 한 대의 이상도 생산 차질과 품질 리스크로 이어질 수 있어 구성원들은 24시간 교대근무로 라인을 지키고 있다.
팹 내부는 축구장 8개 규모 면적에 아파트 37층 높이에 달하는 거대한 공간으로 구성돼 있다. 미세한 먼지 한 톨도 품질에 영향을 줄 수 있어 구성원들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방진복을 착용한 채 근무한다. 1조 개의 미세 구조물을 만들기 위한 첫 조건은 극도로 깨끗한 환경을 유지하는 일이라는 설명이다.
이번 방송에서 특히 눈길을 끈 공간은 분석실이었다. 품질과 수율 개선을 위해 반도체를 잘라내고 연마한 뒤 현미경으로 내부를 분석하는 공간이다. HBM(고대역폭메모리)은 층이 촘촘히 쌓인 구조인 만큼 한 층씩 갈아내며 내부를 확인하는 작업이 특히 까다로운 것으로 전해졌다.
한 구성원은 이를 아파트 구조에 비유했다. 30층 건물이 있다면 30층을 갈아내 확인하고, 다시 29층을 갈아내는 방식으로 층별 구조를 하나씩 분석한다는 설명이다. 조금만 과하게 연마돼도 다시 작업해야 할 정도로 정밀도가 중요하다.
현장에서는 사람 키보다 큰 현미경 장비를 통해 천만 배에서 최대 일억 배 수준까지 확대해 소자 구조를 분석한다. 특정 층 단면을 찾아 설계대로 구현됐는지 확인하는 방식이다. 한 구성원은 "어떤 건물의 37층 단면을 보고 싶을 때 이 장비를 사용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분석 장비 화면 속 선명한 단면 구조를 본 구성원들이 "예쁘다"는 표현을 쓰는 장면도 등장했다. 현장에서는 번짐 없이 선명하게 구현된 구조가 공정이 안정적으로 이뤄졌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는 설명이다.
한 구성원은 "직업병 같은 말일 수 있지만 미적으로 아름답게 느껴지는 감동이 있다"며 "그래서 순간적으로 예쁘다고 말하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나노 단위 세계를 다루는 일을 두고 '신의 영역'이라고 표현하면서도 그 안에서 보람과 아름다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는 의미다.
300mm 웨이퍼 위에 1조 개 구조물을 세우는 일은 한 사람만의 힘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장비 개발, 공정 관리, 불량 분석, 테스트, 클린룸 관리 등 수많은 역할이 유기적으로 맞물려야 한다.
후공정 팹에서는 패키징을 마친 제품에 강한 열과 전기를 가해 잠재 불량 여부까지 검증한다. 한 테스트 엔지니어는 자신의 역할을 두고 '반도체 의사'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SK하이닉스의 HBM 경쟁력 역시 이런 축적의 결과라는 설명이다. 업계가 HBM 시장을 본격 주목하기 전부터 관련 기술을 개발해왔고, 침체기에도 납기 소요시간(TAT)을 단축하며 고객 요구에 대응해온 경험이 현재 경쟁력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한 구성원은 "남들이 안 하는 걸 저희 회사는 먼저 해보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며 "실패할 수도 있지만, 안 하는 것보다는 우선 시도해보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번 방송 내레이션은 <다큐멘터리 3일>의 대표 목소리로 알려진 가수 유열이 맡았다. 방송은 차가운 숫자처럼 보이는 반도체 산업 역시 결국 보이지 않는 세계를 매일 들여다보는 사람들의 손끝과 시간 위에서 완성된다는 점을 조명하며 마무리됐다.
뉴스웨이 고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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