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중심 유럽 시장 구조 흔들려미국·유럽서 높아진 K-뷰티 점유율SNS·ODM 역량으로 경쟁력 확보
'화장품 왕국'으로 불리던 프랑스의 아성이 흔들리고 있다. 수십 년간 글로벌 뷰티 시장을 주도해온 프랑스 화장품 산업이 지난해 사실상 성장 정체에 들어선 반면 한국 화장품(K-뷰티)은 사상 처음으로 연간 수출 100억 달러를 돌파하며 글로벌 시장 판도를 빠르게 뒤흔들고 있다. 업계에서는 글로벌 소비 기준과 유통 권력이 '럭셔리 중심의 유럽식 뷰티'에서 '속도와 기능성 중심의 K-뷰티'로 이동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프랑스 화장품·향수 산업은 지난해 글로벌 시장에서 뚜렷한 둔화 흐름을 보였다. 프랑스화장품기업협회(FEBEA)는 지난해 프랑스 화장품·향수 수출액이 224억 유로로 전년 대비 0.1% 감소했다고 밝혔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를 제외하면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이후 사실상 첫 역성장이다. 그동안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 로레알, 에스티로더 계열 브랜드 등을 중심으로 프리미엄 시장을 주도해온 프랑스 산업이지만 최근 미국과 유럽 시장에서 성장 동력이 약화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반면 한국 화장품 산업은 정반대 흐름을 보이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화장품 수출액은 전년 대비 20.6% 증가한 102억 달러를 기록했다. 사상 처음으로 100억 달러를 넘어선 것이다. 단순한 수출 증가를 넘어 글로벌 시장 내 점유율 구조 자체가 재편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는 평가가 나온다.
변화는 미국 시장에서 두드러진다. 미국은 그동안 프랑스 럭셔리 화장품의 핵심 시장으로 꼽혀왔지만, 최근 K-뷰티의 확산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블룸버그는 최근 미국 화장품 수입 시장에서 한국이 프랑스를 제치고 최대 수입국으로 올라섰다고 보도했다. 실제 현지에서는 선케어, 기능성 스킨케어, 더마 화장품을 중심으로 한국 브랜드의 유통망이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반면 프랑스는 미국 내 소비 둔화와 관세 부담, 고물가 영향 등이 겹치며 성장세가 꺾이는 모습이다. 고가 럭셔리 중심 포트폴리오가 경기 민감도를 높였다는 분석도 나온다. 과거에는 프리미엄 전략이 경쟁력이었지만, 최근 글로벌 소비가 '합리적 가격의 고효능 제품'으로 이동하면서 대응 속도가 늦어졌다는 평가다.
현지에서도 위기감이 감지된다. 프랑스 일간 르몽드는 최근 프랑스 화장품 산업이 미국 시장에서 한국 브랜드와의 경쟁 심화로 압박을 받고 있다고 분석했다. 유럽 뷰티 전문지 역시 아시아 브랜드, 특히 K-뷰티의 급부상을 프랑스 산업 둔화의 주요 변수로 지목했다. 일시적 경기 요인이 아니라 구조 변화라는 해석이 힘을 얻고 있다.
업계는 K-뷰티 경쟁력의 핵심으로 한국 특유의 ODM(제조자개발생산) 생태계를 꼽는다. 프랑스 브랜드가 장기 개발과 브랜드 헤리티지를 기반으로 움직이는 동안, 한국은 ODM 기반의 초고속 기획·생산 체계를 구축했다. 여기에 SNS 중심의 트렌드 확산 속도까지 더해지며 시장 대응력이 크게 앞서고 있다는 평가다.
특히 K-뷰티는 프랑스가 강세를 보이던 향수·색조 시장의 빈틈을 기능성 스킨케어와 선케어의 생활화 전략으로 파고들었다. 계절성 제품에 머물던 선케어를 상시 스킨케어 영역으로 확장하며 시장 자체를 키운 점도 주목된다.
프랑스 내부에서도 긴장감은 커지고 있다. 에마뉘엘 기샤르 FEBEA 사무총장은 최근 인터뷰에서 "프랑스 기업들이 한국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혁신 역량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K-뷰티를 단순한 신흥 트렌드가 아닌 구조적 경쟁 상대로 보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업계에서는 이번 변화가 단기 흐름에 그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한 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브랜드 헤리티지와 광고가 경쟁력이었지만, 지금은 제품 회전 속도와 ODM 생산 역량, SNS 반응 속도가 시장을 좌우한다"며 "K-뷰티는 가격 경쟁을 넘어 구조 자체에서 글로벌 소비 흐름과 맞물리고 있다"고 말했다.
뉴스웨이 양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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