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공기(工期) 줄이고 안전(安全) 외친다···예고된 건설 참사

오피니언 데스크 칼럼 권한일의 건썰

공기(工期) 줄이고 안전(安全) 외친다···예고된 건설 참사

등록 2026.05.28 16:51

권한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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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사들이 안전에 돈을 쓰지 않아서 사고가 나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요즘 대형 건설사 현장에 가보면 안전 관련 조직과 장비, 시스템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났다. 최고안전책임자(CSO) 조직은 대표이사 직속으로 격상됐고 현장마다 안전관리 인력과 스마트 장비가 대거 투입됐다. 인공지능(AI) 기반 위험 감지 시스템과 CCTV 모니터링, 작업자 위치 추적 장비까지 등장했다.

그럼에도 붕괴 사고는 반복되고 추락과 매몰 사고는 끊이지 않는다. 사고가 날 때마다 건설사는 고개를 숙이고 정부는 특별점검과 재발방지 대책을 내놓는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면 또 다른 현장에서 비슷한 사고가 터진다. 이제는 업계 안에서도 "도대체 뭘 더 해야 하느냐"는 체념이 나온다.

문제는 사고의 원인이 더 이상 개별 기업 차원의 안전 투자 부족에 있지 않다는 점이다. 건설업 자체가 사고를 피하기 어려운 구조로 굳어지고 있다는 데 더 큰 위기가 있다.

현장의 가장 큰 압박은 여전히 공기(工期)다. 건설사들은 수주 단계부터 치열한 경쟁 속에서 짧은 공사 기간과 낮은 공사비를 제시한다. 공사가 시작되면 발주처는 일정 단축을 요구하고 현장은 지연될 때마다 막대한 지체상금 부담을 떠안는다. 결국 사고 위험이 커져도 작업을 멈추기 어려운 구조가 된다.

실제 최근 사고 상당수는 사고 전 이상 징후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구조물 변형과 균열, 토사 불안정 등 위험 신호가 감지됐는데도 작업은 멈추지 않았다. 멈출 수 없었던 것이다. 공정을 세우는 순간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때문이다.

다단계 하도급 구조도 문제다. 본사는 안전 매뉴얼과 규정을 강화했다고 말하지만 실제 작업은 인력난에 시달리는 하청과 재하청 현장에서 이뤄진다. 현장 말단으로 갈수록 숙련 인력은 부족하고 책임은 흐려진다. 본사의 안전 기준이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이유다.

중대재해처벌법 역시 현장 분위기를 더 왜곡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고 예방 시스템을 만드는 데 집중하기보다 "누가 처벌받느냐"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현장에서는 보고와 문서 작업만 늘어났다는 불만이 적지 않다. 실제로 일부 현장에서는 안전관리자들이 사고 예방보다 점검 서류와 보고 체계 대응에 더 많은 시간을 쓰고 있다는 말까지 나온다.

물론 기업 책임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지금처럼 사고가 날 때마다 기업 한 곳을 압박하고 경영진 처벌만 강화하는 방식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다. 현장을 움직이는 발주 구조와 공사비 체계, 하도급 시스템, 인력 시장까지 바뀌지 않는 한 사고는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

더 심각한 문제는 업계 전반에 퍼지는 무력감이다. 건설사들은 이미 막대한 비용을 안전에 투입하고 있다. 그런데도 사고는 계속 나고, 사고 한 번이면 기업 전체가 중대재해 리스크에 휘말린다. 결국 현장에서는 "투자는 투자대로 하고 책임은 끝없이 커진다"는 냉소가 번지고 있다.

건설 현장의 안전은 기업 몇 곳을 압박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공기를 줄이고 비용을 깎으면서 완벽한 안전만 요구하는 산업 구조 자체가 이미 한계에 다다랐다. 발주 구조와 하도급 체계, 공사 기간 관행을 바꾸지 않는 한 중대재해는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 지금 필요한 것은 또 다른 처벌이 아니라 현장에서 실제 작동하는 안전 시스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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