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28일 기준금리를 동결했지만, 시장이 받아들인 시그널은 정반대였다. 껍데기만 동결일 뿐, 알맹이는 철저하게 매파적(통화 긴축 선호)이었다.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의 기자간담회 발언과 금통위원들의 향후 금리 경로를 보여주는 점도표(Dot Plot)는 올 하반기 금리 인상을 사실상 기정사실화했다.
이제 시장의 관심은 인하 기대감을 완전히 지워낸 채, 하반기 '언제' 금리를 올릴 것인가라는 타이밍의 문제로 완전히 전환됐다. 물가 불안과 고환율 등 거시경제의 위기 신호등에 빨간불이 켜지면서 한은의 제동장치(브레이크)가 본격적으로 작동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하지만 금융당국의 시계는 정반대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을 비롯한 당국은 여전히 '상생·포용 금융'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고물가·고금리 장기화로 자영업자와 서민 경제가 한계 상황에 다다랐다는 명분은 타당하다. 취약 차주의 부실을 막아야 한다는 정부의 고충도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이를 풀어가는 방식이 시중은행에 대한 직접적인 압박이라는 점은 문제다. 당국은 은행권을 향해 대출 문턱을 낮추고, 가산금리를 깎아 서민들의 이자 부담을 경감하라고 연일 강도 높게 요구하고 있다.
한쪽에서는 물가를 잡고 금융 안정을 도모하기 위해 시중 유동성을 흡수해야 한다고 외치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서민 지원을 이유로 수도꼭지를 풀라고 다그치는 형국이다. 거시 정책과 미시 규제가 정면으로 충돌하는 전형적인 불협화음이다.
이 거대한 두 축 사이에 낀 시중은행들은 혼란 그 자체다. 한은이 하반기 금리 인상 시그널을 명확히 한 만큼, 은행 경영의 정석은 선제적인 리스크 관리다. 대출 심사를 강화하고 다가올 고금리 충격에 대비해 대손충당금을 차곡차곡 쌓으며 자산 건전성을 보수적으로 가져가는 것이 맞다. 시장 금리 상승에 맞춰 대출 금리를 자연스럽게 인상하는 것이 자금의 효율적 배분을 위한 시장 순리이기도 하다.
그러나 '관치 금융'의 보이지 않는 손은 은행의 팔을 반대 방향으로 꺾고 있다. 당국의 눈치를 보느라 시장 금리를 인위적으로 억누르면서, 은행의 가장 핵심적인 리스크 관리 도구인 '금리 산정 기능'이 마비되고 있다.
금융은 고도의 정밀함과 예측 가능성이 생명인 생태계다. 한쪽에서는 차를 멈추기 위해 브레이크를 밟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앞으로 가라며 액셀러레이터를 동시에 밟아대면 차량의 엔진과 변속기가 망가지는 것은 시간 문제다. 현재 우리 금융시장이 처한 꼴이 이와 다르지 않다.
정치적 명분과 포퓰리즘적 정책에 밀려 시장의 자율적인 가격 발견 기능인 금리가 왜곡되면, 그 대가는 혹독하다. 인위적으로 낮아진 금리는 시장에 착시 현상을 일으켜 취약 차주의 부실 이연을 부추기고, 결과적으로 잠재적 리스크 폭탄의 크기만 키우는 꼴이 된다. 결국 정교하게 작동해야 할 금융 시스템의 기초체력을 안에서부터 갉아먹는 구조적 모순이다.
상생과 포용이라는 따뜻한 수식어가 금융의 본질인 '리스크 관리'라는 냉정한 원칙을 압도해서는 안 된다. 지금처럼 엑셀러레이터와 브레이크를 동시에 밟는 것은 은행을 코너로 몰아넣을 뿐만 아니라, 향후 거시경제 충격이 닥쳤을 때 금융권 전체의 시스템 균열을 야기하는 도화선이 될 수 있다.
뉴스웨이 문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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