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위안화보다 가벼워진 '원화 가치'···글로벌 ATM으로 전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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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화보다 가벼워진 '원화 가치'···글로벌 ATM으로 전락

등록 2026.06.09 06:21

문성주

  기자

실질실효환율 64개국 중 '최하위권'···外人 이탈에 악순환 우려고유가·수입물가 폭등 우려···당국 강력 경고 속 "상단 열어둬야"

사진=강민석 기자사진=강민석 기자

중동발 지정학적 위기와 글로벌 강달러 기조가 맞물리면서 원·달러 환율이 '발작'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심리적 마지노선이었던 1500원을 가뿐히 넘어 정규장에서는 1550원을 돌파한데 이어 야간 거래에서는 1560원 선마저 뚫었다. 문제는 원화 가치 하락세가 가파른 낙폭을 보이고 있어 시장 안팎에서는 과거 글로벌 금융위기 버금가는 '경제위기'까지 우려하는 목소리도 흘러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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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ick Point!

중동발 지정학적 위기와 글로벌 강달러 기조 영향으로 원·달러 환율이 급등

원화 가치 하락세 가파르며 경제위기 우려 목소리 확대

정부와 외환당국, 시장 안정화 위해 긴급 대응

숫자 읽기

8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 1555.2원에 개장, 1535.0원에 마감

17년3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치 기록

BIS 기준 4월 말 원화 실질실효환율 85.06, 2009년 3월 이후 최저

아시아 주요국 중 원화 가치 최저

맥락 읽기

외국인 투자자 대규모 이탈, 환차손 우려로 국내 자본 유출

글로벌 금융사·헤지펀드, 원화 숏 전략 집중

원화는 유동성·투명성 높아 헤지 수단으로 선호

배경은

미국 고용지표 호조, 연준 금리 인상 가능성 부각

한·미 기준금리 격차 확대, 원화 자산 매력도 하락

중동 정세 불확실성, 위험자산 회피 심리 강화

향후 전망

정치권 '환율 대책 TF' 신설 요구 등 대응책 촉구

당국 구두개입에도 단기적으로 환율 상단 열려 있다는 경고

일각에서는 원·달러 환율 1600원 돌파 가능성 언급

8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 종가(오후 3시 30분 기준)보다 16.1원 급등한 1555.2원에 개장하며 거래를 시작했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7년 3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치다. 다만 이날 환율은 당국의 구두개입 속에 1535.0원에 마감했다.

원화의 실질가치 역시 바닥을 뚫고 떨어지고 있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지난 4월 말 기준 원화의 실질실효환율(2020년=100) 지수는 85.06으로 집계됐다. 이는 세계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3월(79.31)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뿐만 아니라 64개국 가운데 일본(65.7)을 제외하면 가장 낮은 수준이다.

실질실효환율은 물가와 교역상대국 통화가치를 반영해 한 나라 통화의 대외 구매력(실질가치)을 보여주는 지표다. 수치가 낮을수록 해당 통화의 실질 가치가 약하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원화 가치가 사실상 글로벌 평균적인 흐름과 비교해도 유독 비정상적이고 가파르게 하락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특히 현재 원화 가치는 아시아 주요국과 비교해도 우려스렵다. BIS EER(Effective exchange rates)을 살펴보면 중국(91.06), 홍콩(94.39), 인도(89.71), 필리핀(99.92), 태국(98.24), 인도네시아(91.44), 말레이시아(108.06) 등 아시아 국가들 가운데서도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즉 원화 가치가 중국 위안화와 인도 루피화 가치보다 낮다는 의미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 4월 1500원대를 넘어선 때도 있었지만 대체로 1400원대 중후반에서 등락을 이어갔다. 다만 5월 중순 이후(종가 기준)로는 1500원대를 넘어, 전날인 5일에는 1539.1원으로 마감했다. 사실상 실질실효환율 지수는 더욱 악화했을 것으로 분석된다.

이러한 원화 가치 급락은 국내 자본 시장에서 외국인 투자자들의 대규모 이탈을 부추기고 있다. 환차손을 우려한 외국인들이 국내 주식과 채권 시장에서 서둘러 차익 실현에 나서며 자금을 빼내고 있으며, 이는 곧 달러 수요를 높여 원화 가치를 또다시 끌어내리는 '악순환의 고리'를 형성하고 있다. 수급 불균형이 또 다른 수급 불균형을 낳는 구조적 함정에 빠진 셈이다.

서정훈 하나은행 연구원은 "코스피가 많이 오르며 외국인들이 리밸런싱을 한 것으로 판단된다"며 "이 외에도 FOMC의 매파적인 영향 가능성, 미국 고용지표가 좋게 나오며 케빈워시 취임 이후 금리 인상 기조, 중동 전쟁 등 위험 회피 심리도 덧붙여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글로벌 금융사들도 원화 가치 하락을 부추기고 있다. 글로벌 투자은행(IB)의 트레이딩 부서와 매크로 헤지펀드들은 헤지(위험 분산) 수단으로 원화를 숏(매도)하는 전략을 구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글로벌 위험자산 회피 심리가 강해지면서 원화를 팔고 미국 달러를 롱(매수)하는 방식이 행해지는 것이다. 이들은 자체 모델을 통해 특정 지수를 지정하고 임계치를 넘어서면 기계적으로 매도와 매수를 단행하도록 시스템을 설계해 뒀다.

실제 지난 7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외환시장에서 역외차액결제선물환(NDF)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17.70원 급등한 1,534.10원에 마감했다. 같은 날 달러인덱스가 전날보다 0.02% 오른 100.07을 기록한 것과 대조적이다. NDF 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이 10원 이상 급등한 것은 밤사이 글로벌 자금들이 원화를 타깃 삼아 숏 물량을 쏟아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시중은행 한 트레이드는 "글로벌 금융사들이 원화를 대상으로 매도 물량을 쏟아내고 있으며 최근에는 매도 물량이 빈번해지고 있는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현재 원화는 아시아 시장에서 가장 투명성이 높은 통화로 분류된다. 유동성도 풍부해 글로벌 금융사들에는 최적의 헤지 수단이다. 규제가 까다로운 중국 위안화나 홍콩 달러에 비해 비용이 적게 들고 리스크를 빠르게 분산할 수 있어, 이들 사이에서는 원화가 "치고 빠지기 가장 좋은 통화"라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반면 일본 엔화는 초저금리 특성상 글로벌 자금 조달을 위한 '캐리 트레이드'(저금리 통화로 빌려 고수익 자산에 투자) 성격이 강해 한국과는 다르게 분류된다. 이번 중동 전쟁 같은 지정학적 리스크가 발생하면 글로벌 금융사들은 위험자산인 원화를 팔아치우고, 대표적인 안전자산으로 꼽히는 엔화를 매수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사진=강민석 기자사진=강민석 기자

대외적인 거시 경제 환경 역시 원화 강세를 기대하기 힘든 구조다. 미국의 견조한 경제 및 고용 지표를 바탕으로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의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이 급부상하면서 글로벌 자금은 일제히 달러로 쏠리고 있다.

한국은행이 하반기 금리 인상을 단행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지만 고공행진하는 환율을 잡기는 어려운 모습이다. 특히 벌어져 있는 한·미 간 기준금리 격차는 원화 자산의 매력도를 떨어뜨려 환율 상승을 부추기는 근본적인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최국현 중앙대 경영경제대학 교수는 "미국이 최소 한번 이상 금리를 올릴 것이라고 예상하면 한국이 금리를 올리더라도 기본적으로 금리 차이가 나면서 시장 유동성이 줄게 된다"며 "금리가 높은 곳으로 돈이 몰리게 되면 시장은 유동성이 부족하고 금리는 또 압력을 받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한국도 금리를 올려 평형 상태를 좀 낮추려고 하는데 미국도 인상 계획이 있어 그렇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정치권에서도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정부 차원의 '환율 대책 TF(태스크포스) 신설'을 강력히 요구하는 등 전방위적인 대응책 마련을 촉구하고 나섰다.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은 "이재명 대통령은 지금 즉시 청와대에 '환율 대책 TF'를 신설, 적극적으로 대응하라"고 강조했다.

금융시장과 실물경제 전반에 걸쳐 위기감이 고조되자 정부와 외환당국도 긴급 진화에 나섰다.

이재명 대통령은 8일 최근의 환율 급등세와 관련해 "지금 환율은 정상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하면서도 "일시적인 현상으로 본다"며 시장의 과도한 불안 심리를 차단하는 데 주력했다.

당국 역시 강력한 구두 개입을 단행하며 투기 세력에 대한 경고 메시지를 냈다. 재정경제부와 한국은행은 "최근 외환시장에서 환율은 수급요인 이외에도 역외차액결제선물환(NDF) 등 일부 투기적 외환거래가 변동성을 증대시킨 것으로 판단된다"며 "펀더멘털 대비 과도한 변동성과 일방향의 쏠림을 결코 용인하지 않고 강력히 대응해 나갈 것"이라며 필요 시 시장 안정화 조치에 즉각 나설 것임을 시사했다. 이날 당국의 구두개입 속에 원·달러 환율은 장중 1530원대 후반까지 떨어졌다.

당국의 전방위적인 개입에도 불구하고 넘어야 할 파고는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시장에서는 중동 정세의 불확실성과 미국의 통화 정책 향방이 명확해지기 전까지는 원·달러 환율의 단기적인 상단을 열어둬야 한다는 경고가 나온다.

최배근 건국대 교수는 "중동 리스크에 AI 버블이 결합되면서 지금 굉장히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며 "이른바 '삼전닉스'가 이끌어온 코스피가 하락하면서 환율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일각에서는 원·달러 환율이 1600원을 넘어갈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고 밝혔다.

박형중 우리은행 이코노미스트는 "단기적으로 금융위기 당시 원·달러 환율이 장중 1590원~1600원 사이였으며, 종가 기준으로는 1570원 정도가 가장 높은 환율이었다"며 "단기적으로 봤을 때 그 정도는 터치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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