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열풍이 반도체 칩과 소프트웨어 개발 경쟁을 넘어 천문학적인 자금 조달을 위한 '금융 전쟁'으로 진화하고 있다.
엔비디아가 블랙록, 골드만삭스 등 월가의 대형 금융사들과 손잡고 최대 5000억달러(약 710조원) 규모의 AI 인프라 자금조달 플랫폼 구축에 나섰다. 이는 엔비디아가 GPU 컴퓨팅 성능을 부동산이나 전력처럼 장기 담보대출이 가능한 자산으로 포장하려는 첫 시도다.
칩 제조기업을 넘어 글로벌 AI 생태계의 자금줄까지 장악하겠다는 엔비디아의 행보를 두고 일각에서는 시장의 우려를 완화해 줄 것이라는 긍정적인 전망과, 서브프라임 모기지가 금융 상품으로 재포장되어 2008년 금융 위기를 촉발했던 사례가 재현될 수 있다는 부정적인 전망으로 보고 있다.
AI 인프라 자금, 자금조달 플랫폼은 어떤 구조?
이번에 추진되는 AI 인프라 자금은 한마디로 AI 데이터센터 전용 글로벌 거대 대출·투자 풀(Pool)이다. 최근 생성형 AI 고도화에 따라 전 세계 빅테크와 클라우드 서비스 기업들은 수만 장의 GPU(그래픽처리장치)와 이를 가동할 초대형 데이터센터, 막대한 전력망 구축에 사활을 걸고 있다. 문제는 이 과정에 소요되는 비용이 수십조에서 수백조 원에 달해 개별 기업의 현금 흐름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이에 엔비디아는 아폴로글로벌매니지먼트, 블랙스톤, 블랙록, 브룩필드자산운용, 골드만삭스, KKR 등 글로벌 금융사 6곳과 손을 잡았다. 이들 금융사는 연기금, 보험사 등 외부 기관투자자로부터 자금을 모아 엔비디아의 장비를 도입하려는 고객사(클라우드 사업자, AI 랩 등)에게 유리한 조건으로 대출과 투자를 지원하게 된다.
통상적인 대형 인프라 사업처럼 데이터센터 프로젝트별 특수목적법인(SPV)이 채권을 발행하고, 사모대출 기관이 이를 인수·유동화하여 자산유동화증권(ABS) 형태로 일반 기관투자자에게 재매각하는 구조가 유력하다.
모기지론(주택담보대출)과 구조가 같나?
자산을 담보로 돈을 빌려주는 기본적인 뼈대는 유사하지만 대상과 생태계 확장성에서 차이가 있다. 개인이 집을 살 때 주택을 담보로 은행에서 돈을 빌리듯, 이번 구조 역시 AI 인프라 기업들이 고가의 엔비디아 칩과 데이터센터 자산을 담보로 삼아 월가로부터 대규모 자금을 조달한다.
일반 모기지론은 부동산 구매자와 은행 간의 거래로 끝나지만, 이 구조는 대출받은 돈이 곧바로 엔비디아의 매출로 직결된다는 점이 다르다. 즉, 금융 자본이 엔비디아의 제품 판매를 밀어주는 지렛대 역할을 한다. 데이비드 솔로몬 골드만삭스 CEO는 이를 두고 "엔비디아 컴퓨트를 담보로 한 완전히 새로운 신용시장을 만드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AI 인프라 병목 해소와 엔비디아의 수혜
좋은 점은 AI 인프라 병목 현상이 해소될 수 있다. 특히 자금 부족으로 인해 데이터센터 건설을 미루거나 포기하려던 빅테크 및 AI 스타트업들이 원활하게 자금을 수혈받을 수 있게 된다. 고객사들이 돈을 구하기 쉬워질수록 엔비디아의 첨단 GPU와 풀스택 플랫폼 수요는 폭발적으로 증가하며, 이는 곧 엔비디아의 매출 증가로 이어진다.
시장 전문가들도 긍정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조셉 무어 모건스탠리의 애널리스트는 "엔비디아가 주로 제3자로부터 자금을 조달해 AI 팩토리, 즉 대규모 데이터센터에 투자하는 것은 '순환금융'에 대한 우려를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비벡 아리아 뱅크오브아메리카의 애널리스트는 "이번 플랫폼 구축으로 엔비디아의 재무적 부담을 덜어주고 리스크를 분산시킨다는 점에서 매우 긍정적이다"라고 평가했다. 그는 AI 데이터센터 구축 및 장비 구매에 필요한 자금 조달과 관련해, 그 재무적 부담이 엔비디아의 대차대조표가 아니라 외부 민간 컨소시엄에 놓이게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AI 자산 담보 구조화 금융, 서브프라임 사태와 닮은 꼴?
하지만 토니 시카모어 IG 시장 분석가를 비롯한 일부 전문가들은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의 유사성을 지적하고 있다.
2008년 당시 주택담보대출을 복잡한 금융 상품(MBS, CDO 등)으로 재포장하여 시장에 유통시켰듯이, 이번 플랫폼 역시 AI 데이터센터, 전력 시설, 엔비디아의 고성능 GPU 등 AI 인프라 자산을 담보나 장기 채권, 구조화 금융 상품 형태로 엮어 연기금·보험사 등 외부 투자자들에게 판매하는 구조를 취하고 있다.
모기지 부실이 주택 가격 하락에서 시작되었듯, AI 인프라 역시 기술 발전 속도가 매우 빨라 현재 고가의 GPU와 데이터센터 자산이 예상만큼의 현금 흐름을 장기간 창출하지 못하거나 빠르게 구형화될 경우, 이를 담보로 발행된 채권 및 금융 상품의 부실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엔비디아의 이번 710조원 규모 금융 플랫폼은 AI 산업의 성장에 날개를 달아줄지, 거대한 부채의 시한폭탄이 될지 세계 금융 시장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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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웨이 이윤구 기자
hsguy919@newsw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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