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줄이는 한국 석화, 룰 바꾸는 아람코

오피니언 기자수첩

줄이는 한국 석화, 룰 바꾸는 아람코

등록 2026.08.12 17:41

김제영

  기자

reporter

국내 석유화학 산업이 몸집을 줄이는 수술대에 올랐다. 중국발 공급 과잉으로 수익성이 악화하자 정부가 생존을 위한 구조조정의 칼을 빼들었다. 생산량을 그대로 유지해 다 같이 적자를 내느니 경쟁력이 낮은 설비부터 줄이는 것이 현실적인 선택이 됐다.

구조조정도 속도를 내고 있다. 대산과 여수 사업재편이 구체화하면서 나프타분해시설(NCC) 감축 윤곽이 잡혔다. 아직 여수 2호 프로젝트와 울산 산단이 남아 있지만 당초 목표치의 67~92%가량은 이미 달성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개별 기업들도 수익성이 떨어지는 석화제품 생산라인을 폐쇄하거나 매각·통합하며 사업 재편에 나서고 있다.

그런데 감산 이후를 생각하면 질문 하나가 남는다.

'설비를 줄이면 석화업계의 경쟁력이 살아나는 것일까.'

감산은 공급 과잉을 완화하는 현실적인 해법이다. 하지만 국내 석화업계가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까지 해결해 주지는 못한다. 중국의 증설 공세가 계속되고 원가 경쟁력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생산량만 줄여서는 장기 생존을 장담하기 어렵다.

이 지점에서 눈길을 끄는 것이 에쓰오일의 샤힌 프로젝트다.

에쓰오일은 내년 초 상업 가동을 목표로 연간 180만톤 규모의 에틸렌 생산설비를 구축하고 있다. 국내 석화업계가 생존을 위해 NCC를 줄이는 와중에 대규모 석화 설비가 들어서는 모습은 얼핏 역설적이다.

하지만 샤힌의 핵심은 생산능력이 아닌 '생산 방식'이다.

샤힌에는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석유기업 아람코가 개발한 TC2C(Crude to Chemicals) 기술이 세계 최초로 상업 적용된다. 기존 석화산업이 원유를 정제해 나프타를 만들고 이를 NCC에 투입하는 방식이라면, TC2C는 정유와 석화 공정을 통합해 원유에서 석화제품으로 이어지는 공정을 줄이는 기술이다.

결국 같은 석화제품을 만들더라도 얼마나 싸게 만들 수 있느냐의 원가 경쟁력 싸움이다.

아직 TC2C가 실제 상업 현장에서 어느 정도의 원가 경쟁력을 보여줄지는 지켜봐야 한다. 기술이 있다고 해서 곧바로 경제성이 확보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성공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석화산업의 경쟁력이 단순히 생산량이나 설비 규모가 아니라 원가 구조와 생산 기술에서 갈릴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 석화업계와 아람코의 선택은 달랐다. 국내 업체들은 경쟁력이 낮은 설비를 줄이고 있고, 아람코는 생산 원가 구조 자체를 바꾸려 한다.

어느 쪽이 옳다고 단정하기는 이르다. 다만 국내 석화업계가 주목해야 할 지점은 분명하다. 지금까지 구조조정의 핵심이 '얼마나 줄일 것인가'였다면, 앞으로는 '남은 설비로 어떻게 돈을 벌 것인가'가 더 중요한 질문이 될 수 있다.

석화업계의 구조조정은 설비를 줄이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감산으로 공급 과잉을 덜어냈다면 그다음은 원가를 낮추고 고부가 제품을 늘려 경쟁력을 증명해야 한다.

설비를 줄이는 것은 생존의 조건이다. 경쟁력을 만드는 것은 그다음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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