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약·바이오 산업에서 신약 개발은 '모래밭에서 바늘 찾기'에 비유된다. 10년이 넘는 세월과 수천억 원의 자금을 쏟아붓고도 임상 실패라는 결과를 받아들여야 한다.
월별, 분기별 실적으로 기업의 가치가 달라지는 상황에서 장기간에 걸친 프로젝트를 지속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성공과 실패 사이, 장기 프로젝트에 대한 책임은 늘 부담이다. 때문에 한미약품의 기술수출(L/O) 뒤편에는 장기적 결단과 책임경영이 거론된다.
"R&D가 없는 제약사는 죽은 제약사다."
창업주 고(故) 임성기 선대회장의 이 한마디는 한미약품의 정체성이자 한국 제약업계가 가야 할 길을 바꾼 선언이었다. 과거 국내 제약사들이 복제약(제네릭) 중심의 영업과 내수 방어로 사업을 영위할 때, 한미약품은 매출의 15~20%를 신약 개발에 쏟아부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우려, 단기 수익성 악화라는 리스크에 더해 기술 반환을 경험하기도 했지만, 한미약품은 신약 연구개발 투자를 멈추지 않았다. 실패 위험을 감수하고 10년 앞을 내다본 '업(業)의 본질에 충실한 경영 철학'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20년 선대회장 타계 이후 한미약품은 유례없는 풍파에 휩싸였다. 모녀와 형제 간의 경영권 분쟁, 상속세 재원 마련을 둘러싼 갈등과 이사회 내 주도권 다툼이 끝없이 이어지며 회사의 근간이 흔들렸다. 그룹의 미래 방향성이 지분 싸움에 가려졌다. 일각에선 장기 R&D 프로젝트의 동력이 상실되는 것 아니냐는 위기감이 팽배했다.
이러한 위기 속에서도 한미약품은 결실을 맺었다. 끝없는 경영권 분쟁 속에서도 임주현 부회장을 필두로 비만·대사 질환 파이프라인(H.O.P 프로젝트)을 지켜내고, '근육 보존'이라는 차세대 패러다임의 길목을 빠르게 포착해 자칫 경영권 분쟁으로 표류할 뻔한 신약 명가의 자존심을 지켜냈다.
신약 개발 기업에 있어 경영의 본질은 결코 지분율을 방어하거나 자리를 지키는 셈법에 있지 않다. 연구진이 분쟁의 풍파에 흔들리지 않고 다시 연구실 불을 켜게 만드는 신뢰, 눈앞의 이익을 털어내고 10년 뒤의 미래 먹거리에 자본과 시간을 쏟는 용기야말로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가야 할 길이다.
여전히 분쟁의 불씨는 꺼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3조 규모의 기술 수출이 증명한 명제는 분명하다. 시장과 주주가 한미약품에 기대하는 것은 이전투구식 지분 싸움의 승자가 누구냐가 아닌, '신약 개발의 불씨를 꺼뜨리지 않는 리더십'이다. 10년의 인내로 쌓아 올린 'R&D DNA'를 보존할 것인가, 사익과 자리싸움의 땔감으로 소진할 것인가의 문제다. 이젠 지분 셈법을 내려놓고 '경영의 본질'에 충실해야 한다. 그래야 기업의 영속성도 지킬 수 있을 것이다.
뉴스웨이 임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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