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주주의 신임, 최윤범의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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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주의 신임, 최윤범의 과제

등록 2026.09.11 09:41

이승용

  기자

reporter

경영권 분쟁에서 주식 수는 힘이다. 그러나 회사를 맡길 명분까지 지분율만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지난 9일 고려아연 임시주주총회 결과가 이를 보여줬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측이 추천한 백인규 감사위원 후보는 출석 의결권의 81.8%를 얻었다. MBK파트너스·영풍 측 박유경 후보의 찬성률은 27.9%에 그쳤다. 승부처였던 감사위원 표결에서 결과가 크게 갈렸다.

단순한 지분 대결로만 보기 어려운 결과다. 감사위원 선임에는 대주주 의결권을 제한하는 '합산 3%룰'이 적용됐다. 기관투자자와 소액주주의 판단이 중요했다.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 9곳 가운데 8곳도 백 후보의 손을 들었다. 81.8%라는 숫자는 적어도 이번 표결에서 주주들이 현 경영진에 더 무게를 실었다는 의미다.

현 경영진이 내세울 수 있었던 가장 강력한 근거는 실적이었다. 고려아연은 경영권 분쟁 속에서도 106분기 연속 흑자를 이어갔다. 올해 상반기 매출은 12조4446억원, 영업이익은 1조3332억원으로 모두 반기 기준 최대였다. 영업이익은 1년 전보다 151.5% 늘었다. 경영권을 놓고 싸우는 동안에도 본업의 경쟁력은 흔들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까지가 최 회장 측이 과거 실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부분이다. 주주들이 이번에 표를 던졌다고 해서 앞으로의 경영까지 맡기겠다는 뜻은 아니다. 이제부터는 과거가 아니라 미래로 평가받아야 한다.

가장 먼저 검증대에 오를 것은 74억달러 규모의 미국 통합제련소다. 고려아연은 미국의 핵심광물 공급망 재편과 자사의 제련 기술을 결합한 사업이라고 설명한다. 전략적 의미는 분명하다. 문제는 그 의미가 곧 투자 성과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74억달러를 어디서 조달하고, 언제 투자금을 회수하며 예상 수익률은 얼마인지가 주주에게 더 중요한 질문이다. 신주 발행에 따른 지분 희석과 자금 조달 부담도 마찬가지다. 미국 제련소가 경영권 방어를 위한 명분이 아니라 회사의 기업가치를 높이는 투자라는 점을 최 회장이 숫자로 보여줘야 한다.

여기서 최 회장의 진짜 시험이 시작된다. 사상 최대 실적을 냈다는 설명만으로는 부족하다. 대규모 투자를 단행한 뒤 기업가치가 얼마나 커졌는지, 투자 성과가 주주에게 어떻게 돌아갔는지까지 보여줘야 한다. 이번에 받은 81.8%의 표를 '신임'으로 부르고 싶다면 그 신임에 걸맞은 성과가 필요하다.

MBK·영풍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이번 표결은 현 경영진에 대한 주주들의 불만보다 당장 경영권을 넘길 만큼 충분한 대안이 제시됐는지가 더 중요했음을 보여준다.

MBK·영풍은 이사회 진입을 확대했다. 그러나 고려아연을 어떻게 성장시킬지에 대한 청사진은 여전히 선명하지 않다. 콜옵션과 경영권 행사 방식 등이 담긴 경영협력계약 역시 시장이 확인해야 할 부분이 적지 않다.

현 경영진의 문제를 지적하는 것과 회사를 더 잘 경영할 수 있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최 회장에게 '성과를 증명하라'고 요구한다면 MBK·영풍에는 '대안을 증명하라'고 물어야 한다.

그래서 이번 주총의 진짜 의미는 최 회장의 승리가 아니다. 주주들이 어느 쪽에 회사를 맡길 것인지 아직 최종 판단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최 회장에게는 시간이 생겼다. 하지만 길지는 않다. 내년 3월 정기주총에서는 이사 8명과 분리선출 감사위원 1명의 임기가 끝난다. 표 대결 결과에 따라 현재 12대7인 이사회 구도가 11대8까지 좁혀질 수 있다. 이번 표결에서 확보한 우위가 다음 주총까지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다.

결국 다음 승부에서 필요한 것은 지분이 아니다. 최 회장에게는 미국 제련소의 경제성과 투자 성과가, MBK·영풍에는 그보다 나은 경영 대안이 필요하다.

주주들이 이번에 준 것은 경영권의 보증서가 아니다. 한 번 더 지켜볼 이유를 찾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 시간을 성과로 채우지 못하면 81.8%라는 숫자도 과거의 기록에 그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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