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노벨위원회 웹사이트에 따르면 이중 100명은 개인이고 나머지 25명은 올해 영예를 안은 화학무기금지기구(OPCW)처럼 단체나 기구다.
개인 수상자 100명의 평균연령은 62세로 현재 최연소 기록은 2011년 공동수상자인 예멘의 인권운동가 타와쿨 카르만(32·여)이 갖고 있다.
올해에는 여성 교육권을 강변하다 탈레반이 쏜 총을 맞고 기적적으로 살아난 파키스탄 소녀 말랄라 유사프자이(16)가 수상자로 유력시되기도 했지만 OPCW의 수상으로 최연소 기록 경신은 무산됐다.
최다 수상기록은 단체가 갖고 있다. 1917년, 1944년, 1963년 등 3차례 평화상을 받은 구호단체인 국제적십자위원회(ICRC)가 주인공. ICRC의 설립자인 앙리 뒤낭은 1901년 평화상 초대 수상자이기도 하다.
유엔난민 최고대표사무소(UNHCR)가 2차례 수상으로 그 뒤를 잇고 있으며 개인이 평화상을 2회 이상 받은 사례는 아직 없다.
평화상은 세계 각국의 정치·사회 현안과 첨예하게 맞물리는 분야인 만큼 수상 때마다 논란도 끊이지 않았다.
작년 상을 받은 유럽연합(EU)은 유럽 경제위기 대처에 따른 내부 갈등 때문에 ‘평화가 아닌 분열을 이유로 상을 주는가’라는 빈축을 샀다. 2010년 투옥상태에서 상을 받은 중국의 반체제 운동가 류샤오보(劉曉波)의 경우는 중국이 ‘내정에 간섭하며 범죄자를 감싸돈다’면서 항의해 노르웨이와의 외교 분쟁이 일어났다.
지금껏 수상 거부는 단 한 번 있었다. 1973년 당시 베트남 총리였던 레둑토는 미국의 헨리 키신저 국무장관과 함께 베트남전 평화 협상을 이끈 공로로 공동수상이 결정됐지만 ‘미국과 월남이 무력행위를 계속해 아직 평화가 오지 않았다’며 수상을 거부했다.
100명의 평화상 개인 수상자 중 여성은 15명이다. 맨 처음 평화상의 영예를 안은 여성은 오스트리아의 평화운동가 겸 작가인 베르타 폰 주트너로 1905년 수상이 결정됐다.
한편 제2차 세계대전을 이끈 영국의 윈스턴 처칠 수상은 평화상과 관련해 가장 흔히 오해(?)를 받는 인사다. 처칠은 평화상 후보였지만 많은 사람의 추측과 달리 수상의 영예는 못 안았다. 그는 대신 전쟁 회고록으로 1953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연합뉴스>
뉴스웨이 김지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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