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충무로에서 이른바 ‘쎈’ 시나리오 중에서도 ‘갑’으로 통하던 ‘화이’였다. 10년만의 연출작이 ‘화이’였다. 장준환과 ‘화이’의 조합, 범상치 않은 만남이었다.
장 감독은 “처음 내게 온 ‘화이’는 정말 강렬했다. 물론 쎄다는 말이 어떤 것을 말하는 건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면서 “감정 라인을 인간 내면의 가장 바닥까지 끌어 내리는 것이 쎄다는 건지 단순하게 폭력적인 면이 쎄다는 건지는 지금도 의문이다”고 말했다.
장 감독의 말처럼 ‘화이’는 폭력 수위가 상당하다. 그렇다고 ‘묻지마’식 표현은 단 한 컷도 없다. 모든 장면에 감정이 밑바탕이 된 ‘컷’만이 존재했다. 보는 시각에 따라선 ‘반사회적’ 감성, 쉽게 말해 ‘변태적’이란 말까지 나올 법했다. 장 감독은 이 말에 크게 웃은 뒤 “충분히 그렇게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고 파안대소했다.
그는 “극중 모든 인물이 괴물 한 마리씩을 키우고 있다”면서 “그 괴물이란 게 영화 속 인물만이 아니라, 우리 누구나 있는 것 아닌가. 그 괴물의 실체는 감정이다. 그 감정이 과하면 변태라고 할 수도 있다”고 말하며 다시 웃었다.
장 감독은 그 ‘괴물’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조금 더 설명했다. 그는 “형식적으로 괴물을 숨기고 ‘난 안 그래’라고 하지 않는 이상, 이 세상 누구라도 ‘석태’처럼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그런 감정을 숨긴다고 능사가 아니다. 난 그런 면에서 우리 안을 더 세심하게 들여다보자는 의미에서 ‘화이’를 찍었다”고 덧붙였다.
그의 말을 조금 곱씹어 봤다. 그냥 우리 안에 ‘괴물을 바라보자는 의미’가 곧 영화 ‘화이’라는 말일까. 장 감독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이내 다시 생각을 정리해 특유의 조근한 말투로 설명했다. 장 감독은 “‘화이’는 하나로 규정할 수 없는 영화다”면서 “굳이 표현하자면 ‘왜 살아요’란 질문과 같은 맥락이다. 사는 이유야 많다. 부모님, 자식, 아내, 친구 등등. 간단한 질문 같지만 어떻게 보면 굉장히 복잡한 질문이다. 그만큼 ‘화이’ 속에 깊고 넓은 의미에서의 감정적 메시지를 넣어보려 노력했다”고 말했다.
영화 ‘화이’처럼 장 감독의 말은 알 듯 모를 듯, 쉬운 듯 어려운 화법의 연속이었다. ‘화이’ 역시 상업적 코드와 예술적 코드의 경계선에서 줄타기를 하듯 모호한 느낌이 강했다. 그만큼 ‘장준환’의 냄새가 강했다. 그러면서도 ‘장준환’ 특유의 화법이 많이 배제된 느낌이었다.
그는 “‘화이’를 연출 하면서 내 스타일을 많이 죽이려 노력했다”며 “내 스타일을 고집했다면 진실성이 많이 흐려졌을 것이다. ‘화이’는 정공법, 클래식 같은 단어가 어울리는 영화였다”고 설명했다. ‘지구를 지켜라’때의 장준환과 ‘화이’의 장준환이 영화를 대하는 방식도 더 틀려졌다고.
장 감독은 “‘지구를 지켜라’때는 긴 교향곡을 연주하면서 한 음도 틀리지 않는 것에 온 신경을 집중했었다”면서 “‘화이’에선 음은 좀 틀리더라도, 전체적인 조화에 초점을 뒀다. 영화를 대하는 시선이 좀 느긋해 진 것 같다”고 웃었다.
장준환 감독은 전작 ‘지구를 지켜라’에서도 그랬고, ‘화이’에서도 그랬다. 사회적 고립과 단절에 익숙한 인물들에게 시선을 돌린다. ‘괴물’ ‘설국열차’를 만든 봉준호 감독과 비교가 됐다.
장 감독은 “봉 감독은 사회 시스템에 대한 통찰력을 보이는 얘기에 집중한다면, 나는 개인에게 초점을 맞추는 얘기를 하고 싶다”면서 “그 개인을 토대로 거울을 삼아 사회를 비추는 것이다. 이 사회가 대체 어떤 짓을 했기에 이런 괴물을 만들어 냈을까 생각을 해본다. 지금도 그런 생각을 하면 재미가 있다”며 이내 눈을 반짝인다.
그는 “아내 문소리에게 이제야 면이 좀 설 것 같다”면서 “하도 ‘7만 감독’이란 꼬리표 때문에 아내도 속앓이를 해왔을 텐데, 이젠 좀 흥행 감독이라고 말을 해도 될 것 같다”고 웃었다.
장 감독과의 대화는 인터뷰가 끝난 뒤에도 한 참을 이어갔다. 그의 영화에 대한 끝 모를 열정이 느껴졌다. 충무로 천재 감독의 귀환이 반가웠다. 장준환의 다음 작품은 좀 더 빨리 나오길 기대해 본다.
김재범 기자 cine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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