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는 ‘탈(脫)스펙’을 외치며 다양한 방법으로 인재를 채용하겠다고 나섰지만 구직자들은 시름이 더 깊어졌다. ‘탈스펙’ 바람이 오히려 기존의 ‘스펙’경쟁에 플러스 알파(+a)로 작용해 부담만 가중됐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 기업들이 실시하고 있는 공개 채용 방식을 사용하는 나라는 세계에서 한국과 일본 정도다. 대기업에서 단기간에 많은 직원을 뽑기 위해 가장 효율적인 방식이라는 게 기업들의 입장이다.
삼성은 인재채용을 전격 개편하고 ‘열린 채용’을 하겠다고 밝혔지만 대학서열화를 부추긴다며 여론의 뭇매를 맞고 백지화됐다. 이 일을 계기로 최근 몇 년간 불던 기업들의 ‘탈스펙’목소리는 쏙 들어갔다.
기존의 획일적인 인재채용 방식에서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는 시도는 바람직하다. 다만 지금처럼 침소봉대식의 방식은 지양해야 한다. 기업들이 ‘탈스펙’을 외치며 그간 시도해 온 제도로 뽑힌 인재는 극히 일부다. 언론을 통해 밝힌 ‘탈스펙’전형으로 뽑힌 인재는 통상적으로 한 해 오십 명, 백 명 정도가 대부분이다.
창의성과 전문성을 중요시 여기는 현 사회에서 공채제도는 그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공채는 고도성장기에 적합한 방식이다. 성실하고 충성도 높은 ‘범용’ 인력을 뽑는데 유리하다. 공채에 붙기 위해 또 다른 ‘입시’를 준비하는 구직자들이 소비하는 시간과 비용과 인재를 뽑고도 바로 직무에 적용할 수 없는 현 공채제도는 이중으로 사회적비용을 발생시키고 있다.
단편적인 예로 ‘삼성고시’라 불리는 삼성의 SSAT는 작년 응시자가 20만명에 이렀다. 이는 지난해 대졸자 48만명의 40%에 해당하는 수치다. 이런 현상을 정상이라고 볼 수 있을까.
구글·IBM 등 해외의 다국적 기업에는 공채라는 제도가 없다. 구글의 경우 수요가 생기면 기한 제한 없이 추천을 거쳐 10여 차례의 심층 면접을 통해 뽑는다. 인사팀이 아닌 충원이 필요한 현업 부서가 채용을 주도하는 것도 한국과 대조되는 부분이다. 실제로 현장에서 함께 일할 사람이 정말 필요한 조건의 능력을 갖춘 인재를 채용하는 것이다.
대학입시에 이어 취업까지 ‘입시’를 치뤄야 하는 이 비정상을 바로 잡으려면 결국 기업이 먼저 비정상의 악순환을 끊어줘야 한다.
한국 기업들의 시장이 국내를 넘어 세계로 확대된 지 오래다. 한국식의 공개채용 방식을 넘어 그 이상의 새로운 방식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박정은 기자 peregrino@
뉴스웨이 박정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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