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신세경의 ‘타짜-신의 손’ 캐스팅 보도가 나간 뒤 고개를 갸우뚱한 영화 관계자 그리고 언론 관계자들은 부지기수였다. ‘타짜’ 시리즈 자체가 팜므파탈 혹은 섹시함을 무기로 한 여성 캐릭터들이 ‘놀기’에 최적화된 스토리라인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연기력은 기본으로 갖춰져야 했다. 이런 기준으로 보자면 ‘타짜’ 캐스팅 전까지의 신세경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었다.
“사실 저보단 감독님이 더 놀랐다고 하시던데요. 제가 하겠다고 할 줄은 꿈에도 생각 안하셨다고 하시더라구요. 처음에 회사로 온 시나리오를 봤어요. 전 원작도 구해서 봤는데, 허미나에게 너무 끌렸어요. 뭐랄까, 현실에선 불가능한 것들이 있잖아요. 허미나가 저에겐 딱 그런 ‘불가능’이었죠. 허미나의 인생이 단 번에 이해가 되고 공감이 되는 거에요. 배우 신세경으로 꿈꾸던 딱 그 배역이었어요. 이런 시나리오와 배역, 배우로서 두 번 다시 쥐기 힘들다는 걸 알아서 단 번에 하겠다고 덤벼들었죠.”
그의 말처럼 강형철 감독의 의중보다 배우의 의중이 더 적극적이 되고 나니 촬영 자체가 즐겁고 흥이 날 수 밖에 없었다. 신세경은 현장이 너무도 즐겁고 행복했다. 유독 고생길이 훤한 현장이었지만 그렇게 흥이 날 수가 없었다고. 흡사 현장에서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니 신세경이 생각하고 원한 ‘타짜-신의 손’이 어떤지는 짐작하고도 남음이다. 특히 유령 하우스에서 대길의 손에 꼽힌 칼을 뽑는 장면에서의 신세경 눈빛은 그 감정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명장면이다.
“와!!! 그게 정말 보이셨어요. 소름이 돋는데요. 저 그 장면을 제일 좋아하고, 제일 재미있게 찍고, 제일 기억에 남는 장면이에요. 되게 잔인하고 감정적으로 아주 힘든 장면인데, 순식간에 몰입이 됐고, 너무 즐거웠어요. 사실 그 장면에선 체력적이나 정신적으로 최악의 상황이었어요. 워낙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했던 장면이라 힘든 건 사실이었는데 그게 너무 재미있는 거에요. 그럴 때 있잖아요. 온몸이 짜릿해 지는 순간. 감독님의 도움이 참 많았던 부분이기도 해요.”
물론 작품 자체에 온전히 빠져 신세경이 아닌 허미나로 살아온 그다. 하지만 노력 없이 자신에게 꼭 맞는 옷을 찾았던 것은 아니다. 사실 신세경은 화투의 ‘화’자도 모르던 ‘생초짜’였다. 촬영 두 달 전부터 화투를 손에 쥐고 다니며 감각을 익혔다. 극중에 등장하는 여러 손기술을 전문 마술사에게 전수 받았다. 무엇보다 신세경에게 중요한 것은 ‘허미나’의 매력이었다.
“완벽한 타짜, 혹은 전문 타짜에 준하는 화투 실력도 필요했는데 진짜는 따로 있었죠. 극중 남자들 특히 대길을 사로잡는 매력을 어떻게 표현할지가 관건이었어요. 무작정 섹시함만을 내세울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팜므파탈적인 면만을 강조할 수도 없었죠. 더군다나 하늬 언니가 있으니 미모를 내세울 수도 없고(웃음). 도움이 될까란 생각에 갬블러 영화 몇 편도 봤는데 허미나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건 별로 없더라구요. 결국에는 감독님과의 끈임 없는 대화가 해결책이었죠.”
강 감독과의 대화를 통해 얻은 신세경의 허미나는 이랬다. 연약하지도 그렇다고 섹시하지도 않은 인물, 구렁텅이에 빠져도 자존심만은 절대 잃지 않은 인물. 더럽혀진 몸뚱이고 자신의 어두운 과거를 대길에게 고백하면서도 스스럼 없이 ‘키스할까’라고 도발적인 발언을 서슴없이 던지는 인물이었다. 스스로가 더럽고 비참한 것을 알지만 상대 앞에서 비굴한 모습은 절대 보이지 않는 ‘허미나’가 바로 신세경이 생각한 인물이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나랑 허미나는 좀 비슷한 면이 많아요. 글쎄요. 나 자신과의 비교라 객관적이지는 못해요. 그래도 굳이 따지자면 당당하다. 그리고 생색을 내지 않는다. 정도. 제가 생색내는 거 진짜 싫어하거든요. 의리도 있다? 저도 의리는 한 의리 해요(웃음). 제가 좀 일반적인 여성분들과는 좀 다른 성격이죠. 하하하. 우직하고 남성적인 면도 좀 있는 것 같고. 아이고. 하하하.”
그의 털털하고 가리지 않는 편안함은 데뷔 첫 노출이란 엄청난 도전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엄청난’이란 타이틀은 영화 속 그의 노출 정도로 확인이 가능하다. 불과 8세 때 가수 서태지의 뮤직비디오 주인공으로 데뷔한 아역배우 출신에게 노출은 어떻게 보면 숙명일 수도 있다. 신세경은 이번 영화에서 어떻게 보면 그 숙명을 예감한 듯하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신세경은 별 일 아니라는 듯 손사래다.
“무슨 도전이에요. 하하하. 연기를 위한 건데 아무렇지 않았어요. 사실 부감감은 있었죠. 뭐 어색한 것도 사실이었구요. 그런데 그 노출 장면 자체가 스토리 흐름에 아주 중요한 장면이었어요. 나중에는 그 중요함을 알기 때문에 집중을 하느라고 부담감이나 망설임은 생각할 겨를도 없었죠. 그냥 즐겼어요. 제가 너무 하고 싶은 영화를 하는 거니깐. 그리고 대역 말씀도 하시는 데, 앵글 자체가 대역이 불가능했어요. 보셔서 아시잖아요(웃음).”
무엇보다 ‘타짜-신의 손’이 눈에 띄는 작품으로 급부상한 이유 중 하나는 남녀 주인공의 막강 비주얼 때문이란 분석도 한 부분을 차지한다. 아이돌 그룹 ‘빅뱅’의 최승현(T.O.P)과 신세경 조합은 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한을 웃음을 짓게 만든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신세경은 본의 아니게 곤욕스러웠을 터. 연예계 과묵함으로 첫 손가락에 꼽히는 최승현이다. 반대로 털털함의 최고봉 신세경이다.
“사실 진짜 힘들었어요. 하하하. 농담인거 아시죠. 근데 작품 자체가 워낙 쎈 기운이 넘쳐서 금새 친해졌어요. 승현 오빠가 낯가림이 좀 심해요. 그런데 시간 날 때마다 얘기를 정말 많이 했어요. 그래서 소통이 잘 됐고, 어려운 장면도 무리 없이 잘 넘어갔죠. 나중에는 저한테 먼저 대사 맞추자 장면과 캐릭터에 대한 분석 등을 얘기도 하고 그랬어요. 촬영이 끝나고 나니 오빠의 배려가 절 무리 없이 끝까지 끌어 왔단 걸 알게 됐죠. 참 고마워요.”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할 것 같은 영화이기에 덥석 물었다. 그리고 데뷔 첫 노출이란 도전도 이뤄냈다. 영화 흥행은 이미 ‘추석 시즌’을 석권했고, 9월 극장가를 휩쓰는 중이다. 배우로선 단계의 어떤 부분을 넘어선 느낌이 들 정도로 빠져 들었다. 이제 신세경은 자신이 느꼈던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할 것 같은 영화’로서 재평가를 받을 일만 남았다. 개봉 전 인터뷰에서 밝힌 그의 소망은 이랬다.
“흥행은 신의 영역이기에 제가 어떻게 대답을 할 부분은 아닌 것 같아요. 다만 배우들의 열연과 감독님의 감각적인 센스가 곳곳에 묻어 있는 영화에요. 정말 편하게 즐겨 주신다면 흥행은 따라오지 않을까요. 조금씩 관객 분들이 늘어나기를 바랍니다(웃음)”
신세경과는 2012년 영화 ‘알투비:리턴 투 베이스’ 당시 인터뷰를 했던 기억이 있다. 당시 그는 무척 힘들어 하고 지쳐 있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번 ‘타짜-신의 손’ 인터뷰에선 전혀 다른 사람 같았다. 신세경은 “그때와는 다르게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법을 알게 된 것 같다”며 웃는다.
즐기는 법을 알게 된 신세경이다. ‘타짜-신의 손’을 보면 신세경의 그 모습이 오롯이 묻어나온다. 이제 신세경이 알을 깨고 나온 것 같다. 그에게 배우란 타이틀이 충분해 보인다.
김재범 기자 cine517@
뉴스웨이 김재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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