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HMM 부산 이전, '반쪽짜리 갈등 봉합용' 의구심 증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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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MM 부산 이전, '반쪽짜리 갈등 봉합용' 의구심 증폭

등록 2026.05.08 06:02

김제영

  기자

부산 이전 노사 합의, '물리적' 이전에 방점조직 및 인력 규모·이전 시점, '협의'로 유보상징 이전 vs 실질 이전···기업 경쟁력 '딜레마'

그래픽=이찬희 기자 그래픽=이찬희 기자그래픽=이찬희 기자 그래픽=이찬희 기자

국내 최대 컨테이너 선사 HMM이 부산 이전 노사 합의로 파업 위기는 면했으나, 외형만 옮기는 '반쪽 이전'에 그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본점 소재지 및 본사 이전의 큰 틀은 정해졌지만, 조직과 인력 이동 등 핵심 사안은 향후 협의 사안으로 넘겨진 상태다. 업계에서는 파업을 막기 위한 '임시방편' 수준의 갈등 봉합에 그친다는 평가다.

8일 업계에 따르면 HMM 노사는 중앙노동위원회 2차 조정 당일인 지난달 30일 오후 2시 본사 부산 이전에 전격 합의하며 총 파업 위기를 넘겼다. 당시 조정이 결렬될 경우 노조 측에 쟁의권이 생겨 총 파업이 가능한 상황이었으나, 파업 시 국가 물류망 전반에 연쇄적인 차질을 유발할 수 있다는 점에서 노사 양측에 부담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주소만 옮긴다?···핵심은 '협의'로 임시 봉합


노사는 이번 합의를 통해 ▲본점 소재지 이전 ▲대표이사 집무실 연내 이전 ▲부산 북항 내 랜드마크급 사옥 건립 등을 추진하기로 했다. 이날 열릴 예정인 임시주주총회에서 본점 소재지 변경 안건을 처리한 뒤 이전 등기 등 법적 절차를 밟을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구체적인 이전 방식과 범위, 계획은 대부분 공백 상태다. 이전 대상 부서와 인력 규모, 이전 시기, 지원 방안 등 핵심 사안은 합의문에 담기지 않았고, 직원 이동 역시 향후 노사 교섭을 통해 정하기로 했다. 이전 논의의 출발점에 가까운 수준이다.

실제 노사 합의는 조정 시한 직전에 긴박하게 이뤄지면서 구체적인 세부안까지 담기에는 물리적 시간이 부족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전 대상 조직과 인력 규모 등이 핵심 내용이 빠진 것도 이 같은 배경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업계에서는 파업을 일단락하기 위한 임시방편 수준의 단편적인 합의에 그친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동안 노조 측이 서울 인력의 상당수 잔류와 상징적 이전을 재차 주장해왔던 점을 고려하면, 실질적 이전이 이뤄질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의구심이 짙어지는 대목이다.

실질적 이전의 전제에는 영업·금융 등 핵심부서와 의사결정 기능의 이동이 포함된다. 핵심은 지역 내 '돈이 도는 구조'를 만들 수 있느냐다. 단순 장소 이전이 아닌 핵심 인력의 이동이 이뤄져야 지역 사회의 인적 자본 향상 효과와 그에 따른 경제적 파급력, 지역 경제 및 고용 활성화로 이어지는 낙수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합의안의 공통점은 '장소'에만 초점을 맞췄다는 점이다. 본점 주소지와 대표이사 집무실, 본사 이전만으로는 물리적 이동에 그친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상징적 이전에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상당 규모의 인력과 조직 이동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HMM 관계자는 "국가 균형 발전이라는 대의와 국적선사로서의 사회적 책임에 공감하고, 회사의 경쟁력 제고 등을 위해 노사 합의가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본업 경쟁력vs지역 낙수효과···부산 이전 '딜레마'


다만 HMM의 부산 이전은 기업 경쟁력의 본질과 정면으로 충돌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해운업은 자본집약적이면서 영업·금융 비중이 높은 산업으로 꼽힌다. 실질 수익은 영업 네트워크와 금융 기능에 좌우되는 구조다. 이 같은 산업 특성상 선박 금융의 역할이 핵심으로 꼽힌다. 특히 선박 금융의 중추인 수출입은행과 산업은행은 서울에 있으며, 화주와 글로벌 선사, 금융·보험사 등 대면 업무가 기반인 관계 네트워크 역시 서울·수도권에 집약돼 있다.

입지 이전 자체가 해운업의 수익 구조와 직결되지 않는다는 산업적 특성도 한계다. HMM의 부산 이전은 개별 회사 측면에서 실익이 제한적일 수 있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실제 HMM은 매출 85% 이상이 해외에서 발생하며, 매출 내 부산항의 점유율은 10% 미만이다.

글로벌 주요 선사들의 사례에도 이 같은 흐름을 읽을 수 있다. 세계 1위 선사 MSC의 본사는 내륙국인 스위스 제네바에 있다. HMM의 전략적 파트너인 일본 ONE의 경우 지주사는 도쿄에 위치해 있지만, 사업 운영본부는 글로벌 물류·금융 허브인 싱가포르에 두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해운사가 항만 인접성으로 시너지가 있을 것이라는 인식은 일차원적인 사고다. 해운업은 국제 무역과 외화 거래가 핵심인 영업과 금융의 업무"라고 말했다.

현실적 제약도 발목을 잡는다. 부산 이전 인원 규모가 결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랜드마크급 사옥 건립 안건을 먼저 내놨으나, 재원 조달은 물론 지원 방안도 확정되지 않은 상태다. 일각에서는 현재 본사인 서울 여의도 파크원 빌딩 임차계약에 따라 실제 이전에 상당 시간이 소요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파크원 빌딩의 계약 기간은 내년 5월말까지다.

여기에 중동 전쟁 장기화와 해상 물류 불확실성 확대, 최근 발생한 HMM 선박 사고 대응 및 사후 처리 등 대외 변수와 경영 현안이 산적해 있는 상황이다. 이 같은 시기에 본사 이전 논의가 기업 경쟁력 측면에서 우선순위로 꼽힐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정치적 변수도 긴장감을 더한다. 오는 6월 지방선거를 앞둔 가운데 HMM의 부산 이전이 현 정부의 국정과제로 추진되고 있는 만큼, 선거 전후로 논의 진척 여부도 주목된다.

이번 합의는 이전에 대한 방향성만 협의한 수준에 머물렀다는 해석이 나온다. 본사 이전은 확정됐으나, 핵심 기능과 인력 이동이 뒤따르지 않으면 '반쪽 이전'에 그칠 수 있다.

다른 업계 관계자는 "그동안은 사실상 일방적인 추진에 가까웠지만, 이번 합의는 처음으로 노사 협의 테이블에 올라 합의안을 도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부산 이전의 대전제는 회사 자체 경쟁력을 훼손하지 않는 것이다. 이제부터가 실질적인 협상 단계"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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