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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피터 어센딩’, 현실과 이상 무너트린 진짜 ‘가상 세계’

[무비게이션] ‘주피터 어센딩’, 현실과 이상 무너트린 진짜 ‘가상 세계’

등록 2015.02.05 16:15

김재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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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피터 어센딩’, 현실과 이상 무너트린 진짜 ‘가상 세계’ 기사의 사진

1996년 영화 ‘바운드’로 데뷔한 두 형제는 시간이 지나면서 남매가 됐다. 두 사람은 할리우드를 깜짝 놀라게 하는 여러 화제작을 연이어 발표했다. 그리고 1999년 전 세계 영화사를 뒤흔들 초특급 대작 ‘매트릭스’를 내놨다. 2003년 ‘매트릭스 리로디드’ ‘매트릭스 레볼루션’을 연이어 발표하며 ‘워쇼스키’란 이름을 분명하게 영화 역사에 새겨 넣었다. 1895년 뤼미에르 형제가 만든 ‘기차의 도착’ 이후 워쇼스키의 ‘가상현실’로 이어져 오기까지 무려 120년의 시간이 걸린 셈이다.

영화는 120년의 시간차를 두고 한 가지 변치 않는 지점을 유지하고 있다. ‘가상’ 혹은 ‘허구’란 관점이다. 워쇼스키 남매가 만든 ‘매트릭스’는 그 결정판이었다. 지금의 우리 세상이 컴퓨터가 만든 가상현실이며, 사실 인간은 기계들이 사용하는 일종의 건전지에 불과하단 설정은 충격을 넘어 ‘문화적 쇼크’를 가져왔다. 이제 워쇼스키 남매는 그 ‘쇼크’ 우주로 확장시켰다. ‘주피터 어센딩’은 워쇼스키 남매가 그리고픈 반 할리우드적 기치의 정점에 올라선 영화로 남게 됐다.

 ‘주피터 어센딩’, 현실과 이상 무너트린 진짜 ‘가상 세계’ 기사의 사진

‘주피터 어센딩’은 할리우드가 그동안 구축해온 견고한 문법을 탈피한다. ‘영웅주의’가 배제됐고, ‘가족주의’를 무시했다. 신분 상승에 따른 인생 역전을 그린 ‘신데렐라 신드롬’과는 시작부터 다른 지점을 보고 있다. 화려한 우주적 대서사 판타지란 거창함 속에 서사적 밀도가 떨어진단 단점이 노출되지만 조금만 눈을 크게 뜨면 ‘주피터 어센딩’은 단순한 SF블록버스터임을 스스로 거부한다. 기묘한 이 영화의 장점은 그래서 반골 기질이 넘친다.

주인공의 이름은 주피터(밀라 쿠니스)다. 주피터는 고대 로마의 신 가운데서도 제왕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그리스의 제우스와 같은 개념이다. 주피터는 태양계 최대 행성 ‘목성’을 말한다. 주피터의 아버지는 천문학자로서 자신의 딸이 주피터처럼 유일무이한 절대력을 가진 인물이 되라고 기도했다. 하지만 현실 속 주피터의 삶은 정 반대다. 미국에 살고 있는 러시아계 이민자다. 아버지는 태어나기도 전에 사고로 사망한다. 온갖 친척들과 함께 좁디 좁은 임대 아파트에서 생활한다. 직업은 화장실을 청소하는 청소부다. 주피터는 입버릇처럼 “내 삶이 싫다”며 세상으로부터의 탈피를 갈망한다.

 ‘주피터 어센딩’, 현실과 이상 무너트린 진짜 ‘가상 세계’ 기사의 사진

그러던 어느 날 케인(체이닝 테이텀)이란 의문의 남자가 등장한다. 그리고 주피터는 미스터리한 외계인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다. 알고 보니 주피터는 인간이 아닌 외계인이며 전 우주를 다스리는 아브락사스 가문의 여왕이란다. 케인은 아브락사스 가문 3인자 ‘타이터스’에 고용된 헌터다. 타이터스는 형 ‘발렘’보다 주피터를 먼저 빼앗고 정통성을 인정받아 지구를 집어 삼키려 한다. 여기서 지구는 우리가 알고 있는 그것이 아니다. 바로 10만년 전 아브락사스 가문이 만든 행성으로 인간들은 모두 아브락사스 가문의 영생을 위해 재배되는 농작물이었다.

전반적인 스토리 구조는 ‘매트릭스’의 작법과 크게 다르지는 않다. 인간의 존엄성이 상실된 디지털 문명화 시대에서 워쇼스키 남매의 시선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한 낯 건전지에 비유됐던 소모품(매트릭스)이나 외계 종족의 영생을 위해 세포 교환 숙주로 재배되는 작물(주피터 어센딩) 등은 자본의 힘으로 인격체조차 교환 또는 교체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현시대의 시선을 꼬집는 거대한 풍자이자 비판이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전형적인 캐릭터인 주인공의 신격화도 ‘주피터 어센딩’에선 철저하게 배제된다.

 ‘주피터 어센딩’, 현실과 이상 무너트린 진짜 ‘가상 세계’ 기사의 사진

아브락사스 가문의 농작물(인간)에서 전 우주의 주인으로 단 번에 신계에 들어선 주피터지만 스스로가 ‘신데렐라’의 중심이 되기를 거부한다. 인간으로 하루를 살더라도 자신의 의지로 모든 것을 결정하고 판단하는 행동을 위해 주피터는 존재하지 않던 것으로 믿던 외계인이 아닌 인간이기를 선택한 것이다.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믿음은 사실 눈이 아닌 의지에 달린 것이다. 주피터는 스스로가 시대를 살아가는 가치의 관점을 자신이 중요한 것이라 믿는 것에서 찾으려고 한다. 이는 ‘매트릭스’ 속 네오의 판단과도 맞물린 워쇼스키 남매의 중요한 포인트 가운데 하나다.

무엇보다 ‘주피터 어센딩’이 할리우드 주류 영화의 그것과 다른 방향을 가고 있는 것은 워쇼스키 남매의 불교적 철학 개념 도입을 재해석한 또 다른 스토리란 점도 있다. ‘매트릭스’가 ‘윤회’의 굴레 속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삶의 방식을 그린 개념의 영화로 볼 수도 있었다면, ‘주피터 어센딩’은 환생이란 목적의식이 과학과 결합해 어떤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을 구축할 수 있는지도 보여준다. 현실 속 ‘배아 복제’ 기술에 대한 인간 존엄성 문제의식이 ‘주피터 어센딩’에서도 흐릿하지만 투영돼 있는 것을 느끼게 된다.

 ‘주피터 어센딩’, 현실과 이상 무너트린 진짜 ‘가상 세계’ 기사의 사진

물론 영화적 서사 구성 자체는 ‘매트릭스’의 세계관보다 확장돼 있기에 더욱 거대하고 포괄적이다. ‘매트릭스’가 이른바 ‘트릴로지’(3부작)의 개념을 개척한 스타트였기에 가능한 스토리였다면, ‘주피터 어센딩’은 단 편으로 끝을 맺기에는 아쉬움이 따른다. 아브락사스 가문의 스토리, 주인공 케인의 종족인 ‘라이칸탄트’에 대한 매력, 완벽한 DNA구조 반복에 따른 이른바 ‘환생’에 대한 스토리, 스팅어와 케인이 소속된 ‘스카이재커’에 대한 궁금증 등 너무도 많은 부분이 영화적 ‘딜리트’로 넘어가 아쉬움을 자아낸다.

그럼에도 ‘주피터 어센딩’의 매력은 그 아쉬움마저 스케일의 압도로 지워내기에 충분할 정도다. 목성의 대적점 내부에 숨은 발렘의 왕국부터 아브락사스 가문의 행성 지배 본부, 케인과 키퍼 일당의 지구 공중전 결투는 시각적으로 볼 수 있는 정점의 끝을 보여 준다.

 ‘주피터 어센딩’, 현실과 이상 무너트린 진짜 ‘가상 세계’ 기사의 사진

복잡하고 기묘한 스토리의 연결성을 갖고 있지만 ‘주피터 어센딩’은 결국 처음과 끝이 하나의 물건으로 연결돼 있다. 바로 하늘에 떠 있는 별을 관측하는 천체 망원경이다. 망원경은 주피터가 삶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가르키는 도구다. 자신의 시각이 아닌 천문학자였던 아버지의 시각으로 더 넓은 세계를 보고 싶어한 소녀의 꿈같은 영화다. 흡사 신비의 나라 ‘오즈’로 날아간 ‘도로시’가 다시 자신이 살던 캔자스시티의 시골집으로 돌아오는 길고 긴 여정을 그리는 것처럼 말이다.

 ‘주피터 어센딩’, 현실과 이상 무너트린 진짜 ‘가상 세계’ 기사의 사진

127분의 판타지가 너무도 짧게 느껴진다. 꿈이 현실이고 현실이 꿈 같은 ‘주피터 어센딩’이다. 워쇼스키 남매의 뮤즈 배두나가 얼굴에 무궁화를 그린 악당 캐릭터로 등장한다. 개봉은 5일.

김재범 기자 cine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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