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하면서 본다는 말이 있다. 막장드라마의 대모(大母) 임성한 작가의 작품이 그러하다.
임성한은 ‘보고 또 보고’ ‘인어아가씨’ ‘하늘이시여’ ‘오로라공주’ 등 다수의 작품을 집필했다. 가족을 소재로 한 드라마를 주로 집필했으며 매 작품마다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파격적인 극의 구조를 차용, 거세진 논란과 더불어 시청률도 쑥쑥 올랐다. 임성한은 스타작가의 대열에 합류했고 지상파 3사에서는 모시기 경쟁까지 벌였다.
임 작가는 1990년 KBS 드라마게임 ‘미로에 서서’라는 단막극을 통해 드라마 작가로 데뷔했다. 이후 1997년 ‘웬수’ ‘가시버시’ 등을 단막극을 주로 집필했으며, 1998년 MBC ‘보고 또 보고’를 통해 이름을 알렸다. ‘보고 또 보고’는 그해 약 1년간 방영된 드라마로 당시 57.3%라는 일일드라마 역사상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며 가족드라마로 불렸다.
배우 정보석, 윤혜영, 김지수, 허준호 네 사람이 연인으로 얽히며 자매가 한 집안의 며느리가 되는 이야기를 그리며 겹사돈이라는 파격적인 소재를 펼쳤다. 당시 법적으로 겹사돈이 인정되지 않던 시기였기에 이들의 사랑을 응원하는 목소리는 높았다. 파격적이지만 신선한 시도가 통한 셈이다.
이후 ‘인어아가씨’ ‘왕꽃 선녀님’ ‘하늘이시어’ '아현동 마님‘ ’보석비빔밥‘ ’신기생뎐‘을 연이어 집필했고, 매 작품마다 흥행 궤도에 올랐다. 큰 차이로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달리며 대박 행진을 이어간 것.
◆ 임성한 월드 속 모든 이야기는 가족에 기인(起因)
임성한은 집필한 드라마에서 늘 가족의 이야기를 그렸다. 가족 간의 갈등과 화합, 불행에 대처하는 가족의 모습 등 스토리의 중심은 가족이라는 굵직한 가지에서 뻗어나왔다.
‘인어아가씨’는 이기적인 욕심 때문에 조강지처를 버리고 새로운 가정을 꾸린 아버지. 그런 아버지를 향한 복수를 인생의 목표로 삼고 자라난 전처 딸의 복수를 그린 드라마로 당시 가정을 버린 아버지로 분한 박근형과 주인공 장서희의 갈등이 폭발하는 장면은 충격적이었다.
아무리 부정을 저질러도 딸이 아버지를 향해 복수의 칼을 겨눈다는 설정이 당시 정서상 다소 충격적으로 다가온 것. 하지만 딸의 행동보다 아버지의 행동이 더욱 막장이었기에 시청자들은 딸에게 감정을 이입했고 급기야 응원에 나섰다.
‘오로라공주’ 역시 가족을 중심으로 갈등이 빚어진다. 남자주인공 황마마(오창석 분)의 세 누나 김보연, 김혜은, 박혜미와 여자주인공 오로라(전소민 분)의 갈등을 그렸다.
현재 방영 중인 ‘압구정 백야’ 역시 어머니에게 버려진 딸이 복수를 위해 그 집 며느리로 들어가는 상황이 펼쳐진 것. 가족으로부터 기인한 분노가 복수로 변하고 이를 향해 어떤 것도 불사하는 주인공이 주로 펼쳐지는 임성한의 드라마는 설득력은 떨어지지만 그 배경을 가족으로 설정해 시청자들에게 상당한 흡인력을 발휘하고 있다.
◆ 무속신앙에 대한 집착
임성한의 드라마에는 무속신앙이 꼭 등장한다. 등장인물들이 점을 보는 장면이 복선으로 활용된다. ‘오로라공주’에서는 여주인공이 반려견 떡대의 점을 보는 엽기적인 장면도 등장했다. 심지어 ‘왕꽃선녀님’에서는 여주인공이 무속인의 딸에게 입양되는 설정이 등장하기도 했다.
‘압구정백야’에서도 결혼을 앞두고 찾아간 점집에서 둘의 운명과 한 명의 죽음을 예언하는 장면이 그려진 후 남자출연자가 돌연 죽음을 맞이했다.
무속신앙은 대사에서도 찾을 수 있다. 신(神)이라는 존재는 주인공에게 대단히 중요하다. 힘들 일이 닥쳤을 때 마음속으로 항상 신을 찾는다. 어려운 일과 마주하면 ‘신은 이 세상에 없다’고 부정하지만 경사를 맞았을 때는 신에게 감사한다. 이처럼 무속신앙에 대한 주관적인 견해를 작품에 녹인다.
◆ 호환마마보다 무서운 임성한 표 데스노트와 귀신
임성한의 데스노트 라는 말이 있다. ‘오로라 공주’ 당시 주인공의 오빠들, 부모, 떡대까지 줄줄이 죽음을 맞이했고 주변인물까지 포함해 10여명이 넘는 출연진들이 줄초상을 맞았다. 임성한의 작품에서 배우들이 죽는 것은 이미 익숙하다. 교통사고를 통해 갑자기 죽음을 맞거나 잠을 자다가 유체이탈 후 저승으로 향하기도. 심지어 TV를 시청하며 웃다가 돌연사 하기도 했다.
최근 방송된 ‘압구정 백야’에서 김민수는 결혼식을 마치고 우연히 마주친 깡패들과 실랑이를 벌이다 벽에 머리를 부딪혀 사망하는 황당 전개가 펼쳐지기도 했다. 이후 드라마에서 죽음을 암시하는 대사들이 난무해 시청자들은 다음 데스노트의 희생자 추리에 나섰다.
또한 가끔은 납량특집 드라마 보다 더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미 죽은 배우가 영혼으로 종종 등장하는 것. ‘인어아가씨’에서 먼저 죽음을 맞은 전(前) 부인이 영혼이 되어 남편 앞에 나타나 함께 저승으로 가는 장면이나, 제사상 앞에 조부모가 등장하는 장면 등 웃지못할 장면이 연이어 펼쳐진다.
◆ 논란을 넘어 개성으로
이 모든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그려지는 임성한 드라마에는 항상 논란이 따라다녔다. 일상에서 쉽게 보기 어려운 장면들이 한데 얽히며 거부감을 자아내기 때문. 또 임성한 작가 특유의 시청자를 훈계하는 듯한 어감의 대사나 잘못된 정보의 제공 등은 도덕성 논란에 휘말리며 주의 조치를 받았다.
이처럼 논란 속에서도 임성한의 드라마가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인기를 얻는 결정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한 드라마 제작사 고위 관계자는 뉴스웨이에 “임성한 작가의 개성이 시청자들에게 어필한다고 볼 수 있다. 임성한은 긴 호흡의 대사로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데 이렇게 쓰기란 쉽지 않다. 다소 무리수를 두는 것이 어필한다고 볼 수 있다. 또 하나의 인기 비결로 자신감을 꼽고 싶다. 대사를 보면 임 작가의 자신감이 엿보인다. 주저 없이 뻗어나가는 대사를 통해 시청자들은 통쾌함과 공감을 느끼기도 하는 것이다. 이 모든 요인은 안방극장에 몰입도를 높이고 이는 시청률로 직결되는 것”라고 전했다.
사회적, 도덕적 피로감을 안길 수 있는 다소 파격적인 소재만 지양한다면 임성한의 드라마는 또 하나의 장르로 볼 수 있다. 약 20년간 비슷한 색채의 드라마를 통해 높은 시청률을 경신하고 있는 임성한의 드라마를 단순히 막장이라고 욕하며 치부하기에는 오류가 있지 않을까.
임성한에 대한 선입견을 떼어놓고 본다면 다양한 연령층에서 그의 드라마가 사랑받는 이유가 보인다. 앞으로도 임성한이 개성 있는 작품으로 드라마 시장의 다양성을 이끄는 역할을 해주길 바란다.
이이슬 기자 ssmoly6@
뉴스웨이 이이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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