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에서 ‘파울볼’은 타자가 친 공이 파울라인을 벗어나는 것을 일컫는다. 두 번까지는 스트라이크로 카운트가 되지만 이후에는 타자에게 계속해서 타격의 기회가 주어진다. 그리고 여러 번의 기회 끝에 파울볼은 아웃이 되기도 하지만 승부를 가르는 홈런, 혹은 경기 흐름을 바꾸는 안타로 이어지기도 한다. 즉, ‘파울볼’은 실패를 말하기도 하지만 기회를 뜻하기도 한다.
다큐 영화 ‘파울볼’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실수와 실패가 있더라도 그것을 ‘파울볼’로 받아들이면 좋겠다는, 그 의미에 초점을 맞췄다. 2011년 9월 창단해 2014년 9월, 결성 3년 만에 해체된 대한민국 최초의 독립야구단 고양 원더스의 1093일 동안의 이야기를 가감 없이 담아냈다. 영화는 야구광으로 잘 알려진 배우 조진웅의 담담한 음성으로 나래이션을 맡아 읊조려진다.
야구계에서 ‘야구의 신’이라고 칭하는 김성근 감독과 그를 믿고 따르는 소위 ‘괴짜’ 선수들에게 도전의 기회를 부여했던 고양 원더스는 프로야구 신인 선발에서 지명 받지 못하거나 구단에서 방출되는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좌절’을 맛본 선수들에게 기회를 선사하는 독립 구단이다. ‘파울볼’은 그런 선수들에게 김성근 감독의 트레이드 마크인 ‘지옥의 펑고’(‘펑고’. 수비 훈련을 위해 배팅볼을 직접 쳐주는 것)로 부터 시작된다.
김 감독은 훈련장에 직접 나와 하루에 500개~1000개 펑고를 치는 것으로 유명해 김성근 감독의 쉼 없는 타격으로 선수들은 공을 줍는 시간에만 쉴 수 있었다는 일화는 그의 엄청난 훈련량을 가늠케 한다. 또 일본 고치로 전지훈련을 떠난 선수들은 가파른 계단을 쉼 없이 오르내리며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훈련을 땀과 눈물로 얼굴을 적시며 프로입단이라는 최종 목표를 향해 달리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45세 노장 투혼을 발휘하는 최향남, 한번 뛰쳐나갔지만 결코 야구의 꿈을 포기할 수 없었던 설재훈, 현대 유니콘스에서 프로야구 신인왕과 다승왕의 타이틀을 거머쥐며 프로구단 넥센히어로즈에서 최연소 투수코치에 이름을 올렸던 김수경, 청각장애 1호 프로야구 선수가 되고 싶다는 박병우, 아내가 둘째를 낳기 바로 전날 프로구단에서 방출 통보를 받았던 이승재 등 영화 ‘파울볼’의 주인공들은 실패는 했지만 좌절은 하지 않는다.
모든 것을 걸고 질주하는 선수들의 모습을 보며 사람이 벼랑 끝에 서면 어마어마한 힘을 갖게 된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는다. 관객은 그 간절함이 만들어내는 위대한 힘을 이들을 통해 새삼 느끼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 중심에 선 ‘야신’ 김성근 감독은 이 시대의 진정한 리더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김성근 감독은 한국 야구계의 독보적 감독이자 야구를 넘어 존경받는 스승이다. 프로야구 6개 팀 감독을 역임하고, 한국시리즈 3회 우승 기록을 보유한 동시에 13번이나 쫓겨난 이력이 있는 감독이기도 하다. 그는 TV프로그램과 다수의 저서를 통해 단순한 야구감독이 아닌 많은 이들의 ‘멘토’로 존경 받아왔다. 그리고 늘 무뚝뚝해보이는 그의 모습 뒤에 따뜻한 ‘아버지’의 모습도 보였다.
영화에서 김성근 감독은 “13번이나 쫓겨나셨다고 들었다”는 말에 “할 일 없는 사람들은 그런 걸 세고 있더라. 남 잘린 횟수를 세고 있어”라며 무섭기만 한 감독이 아닌 유머를 겸비한 의외의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고양 원더스는 구단의 성격상 야구에서 한 번의 실패를 맛본 사람들이 모였다. 그래서 ‘오합지졸’의 모임이라는 이야기를 한다. 또 어떤 이들은 ‘실패한 사람들이 모여서 도전하는 건, 어리석은 짓이다. 오히려 도전 후 실패한다면 그들의 인생은 누가 책임지겠냐’며 부정적인 말들을 던지기도 했다. 하지만 미련이 남은채로 그만두면 후회를 하지만 미련이 없을 때 그만두면 후회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한다. ‘파울볼’에서는 야구에 미련을 가진 선수들에게 ‘절실함’ 그 이상을 엿볼 수 있었으며 그들이 고양 원더스를 선택했던 이유이자, 김성근 감독이 그들을 포기 할 수 없었던 이유를 여실히 보여준다.
영화 속에서 김보경 감독은 노장 투수 최향남에게 “언제쯤이면 야구에 미련이 남지 않을까요”라고 질문했다. 그의 대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내가 가진 기술을 모두 보여줄 때까지 미련은 남아 있을 것 같아요”라고. 45년 인생에서 30년이 훌쩍 넘는 시간을 야구에만 매달렸던 그에게도 야구는 언제나 ‘미련’이었고 또 이루고 싶은 ‘꿈’이었으며, 포기할 수 없는 ‘도전’이었다. 최향남은 원더스의 해체 후 최근까지도 오스트리아 리그에 도전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많은 젊은 야구선수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파울볼’은 겉으로 보기에는 실패를 맛본 선수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하지만 그런 선수들이 고생담과 실패가 아닌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기회를 끝까지 놓지 않는 그들의 투지와 열정에 포커스를 맞췄다. 단지 야구선수의 이야기만이 아닌 ‘야구’를 하나의 ‘꿈’으로 대신해 그 꿈을 이루기 위해 포기하지 않는 모습에서 힘든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큰 힘이 된다.
김성근 감독은 “인생과 야구는 똑같다. 시행착오의 연속이다. 이 영화를 통해 많은 분들이 보고 느꼈으면 좋겠다”며 “야구도 매년 800여명의 실업자들이 나온다. 고양 원더스가 그 몇 명의 선수들에게 기회를 줘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며 고양 원더스에 감사함을, 또 아직도 열악한 한국 야구의 현실을 꼬집기도 했다.
야구 선수에게 프로 입단만이 성공은 아니다. 그들이 가진 한계를 뛰어넘어서고 또 다른 길을 찾아가는 것을 성공이라 말할 수 있다. 김성근 감독은 낙오된 선수들에게서 절대 지지 않는 근성을 찾고 싶었다. 그리고 그 근성이 보여주는 엄청난 기적을 이야기 하고 싶었다.
2014년 9월, 이들의 1093일의 열정이 멈추는 날까지도 끝까지 야구공과 배트, 글러브를 놓지 않았던 선수들과 김성근 감독의 숨은 노력이 영상을 통해 고스란히 전해진다. 연출되지 않은 실제 이야기이기에 그 메시지가 주는 감동을 훨씬 크다.
자신이 맡았던 선수들의 미래를 위해서 해체가 확정된 이후에도 끝까지 그들의 앞날을 위해 고민했던 김성근 감독. 그의 밑에서 구슬땀을 흘린 후 프로에 입단한 총 32명의 선수들. 그리고 여전히 프로 입단의 꿈을 꾸고 있는, 지금 이 시간에도 배트와 글러브, 공을 놓지 않고 있는 모든 선수들에게 영화 ‘파울볼’은 희망을 준다. 그리고 그 모습을 통해 야구팬은 물론, 수많은 관객들에게 코끝 찡한 울림을 선사할 예정이다. 다음 달 2일 개봉.
김아름 기자 beautyk@
뉴스웨이 김아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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