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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상회’ 박근형, 데뷔 53년 老배우 초심 찾은 이유

[인터뷰] ‘장수상회’ 박근형, 데뷔 53년 老배우 초심 찾은 이유

등록 2015.04.06 00:00

김재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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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김동민 기자사진 = 김동민 기자

올해로 76세인 이 노배우는 환하게 웃으며 유치원을 다니는 손자 친구들이 “꽃할배다”라며 자신을 알아본다는 것이 너무도 신기하단다. 그저 50대 이상 장년층 여성 팬들에게 과거 ‘장동건’을 능가하는 미남 배우로 기억됐던 모습은 사실 지나간 추억일 뿐이다. 지금 그를 기억하게 만드는 단어는 ‘회장님’ 전문 배우 정도. 그래서 tvN 예능프로그램 ‘꽃보다 할배’가 너무도 고맙고 즐겁고 힐링으로 다가온단다. 올해로 데뷔 53년차에 접어든 배우 박근형이다. 몇 년 전 대한민국을 들썩인 드라마 ‘추적자 THE CHASER’에서 악랄한 ‘서회장’으로 출연하며 젊은 세대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깊게 패인 주름과 선굵은 이미지는 그에게 선한 이미지보단 주로 카리스마와 악역에 대한 느낌을 원했다. 그런 이 노배우가 작정하고 로맨스의 바다에 몸을 던졌다. ‘흥행 마스터’ 강제규 감독의 신작 ‘장수상회’를 통해 ‘원조 로맨스 가이’의 면모를 선보인다. 사실 박근형은 정말 부드러운 옆집 할아버지다.

영화 ‘장수상회’에서 박근형은 융통성 제로의 제대로 까칠남인 ‘김성칠’을 연기한다. 53년차 연기 경력을 자랑하며 이 기간 동안 무려 200여편이 넘는 크고 작은 작품에 참여했다. 이 노배우에게 멜로 연기의 특별함을 물어보는 것 자체가 실례가 될 수도 있을 듯 싶었다. 우선 기억 속에서 그의 발자취가 남겨진 작품 대부분은 강렬하고 선 굵고 악한 이미지가 대부분이었다. 반면 ‘장수상회’는 시각에 따라선 손발이 오그라드는 로맨스다.

사진 = 김동민 기자사진 = 김동민 기자

“하하하. 그렇죠. 나도 오랜만에 로맨스를 하려니 많이 오그라들었어요. 하지만 시나리오를 읽고 누구에게도 뺏기지 말고 내가 해야겠단 생각이 먼저 들었죠. 아마 내 인생에서 처음 연극학도로 나선 학창 시절의 기운을 차리게 한 작품은 ‘장수상회’가 유일할 거 같아요. 노년을 장치가 아닌 콘텐츠 자체로 관객들에게 전달하려는 의도가 너무 좋았죠. 이런 작품이 국내에선 사실 등장하기도 쉽지 않잖아요.”

사실 로맨스가 박근형에게 낯선 것은 아니다. 머리가 서리가 내리고 환갑을 지난 뒤부터 주로 회장님을 연기하며 안방극장을 주름잡았지만 과거 그의 전매특허는 달달한 멜로가 진짜 배기였다. 물론 지금의 멜로와 ‘장수상회’ 속 멜로 그리고 그 시절 멜로의 느낌은 분명 다를 것이다. 하지만 연기의 달인급에 올라선 이 노배우는 ‘멜로’란 감정이 사실 시간이 지난다고 해도 다를 수 없는 감정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사랑하는 감정이 나이에 따라 다르고, 시절에 따라 다를까요? 그건 아니지요. 본질은 같은 거 아닐까요. 표현의 느낌이 다른 것뿐이겠죠. 하하하. 아마도 사람들이 ‘장수상회’를 좀 낯설게 본다면 70대의 나이에서 사랑을 얘기하는 것에 대한 점일 것이에요. 내가 참 행운아죠. 이 나이에도 사랑 얘기를, 로맨스를 펼칠 수 있는 배우라고 봐준 것 자체가 너무 감사하죠. 그나마 좀 다른 것은 TV와 영화의 미묘한 표현 매커니즘이랄까. 그런 의미에서 영화가 좀 더 편하긴 했어요.”

사진 = 김동민 기자사진 = 김동민 기자

‘장수상회’에서 박근형은 기본적으로 로맨스의 주인공으로서 제대로 된 사랑을 누린다. 하지만 성격은 괴팍하고 꼬장꼬장한 할아버지 그대로다. 시작부터 자신의 집 대문을 막아선 앞집 이삿집 트럭을 발로 걷어차며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는 ‘김성칠’은 최근 ‘꽃보다 할배’ 속 ‘로맨스 가이’ 박근형과는 좀 거리가 있다. 아주 상당히.

“하하하. 내가 정말 맡은 배역들 때문에 오해를 많이 받았어요. 아이고(웃음). 내 별명이 뭔지 아세요? ‘박씨 아저씨’에요. 그냥 동네 아저씨에요. 아저씨는 좀 그렇고, 박씨 할아버지? 하하하. 이상하게 맡는 역할마다 까칠하고 괴팍한 성격의 인물을 연기해서 주변에서도 날 좀 무서워하는 눈치도 느끼고 그랬죠. 하지만 ‘꽃할배’ 하고 나선 완전히 바뀌었어요. 손자뻘 되는 얘들이 ‘와 꽃할배다’라고 하니깐. 하하하. 얼마나 기분이 좋아요.”

워낙 고령이며 최근 ‘꽃할배’ 촬영까지 겹치는 등 체력적으로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을까. 당연히 걱정되는 부분이다. 박근형도 이런 부분에 대해선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내 ‘TV 드라마 강행군도 견디는 체력이다’며 큰 문제가 없었음을 전했다. 다만 깜짝 놀랄 얘기를 밝혀 걱정을 하게 만들기도 했다. 물론 지금은 건강에 전혀 문제가 없단다.

사진 = 김동민 기자사진 = 김동민 기자

“아마 영화를 2/3 정도 촬영했을 때였나 그래요. 감기에 걸렸는데 약 먹으면서 좀 버텼죠. 그런데 그게 나중에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해보니 폐렴으로 번진 거에요. 아이고 이거 어쩌나 걱정이 됐죠. 우선 이 늙은이 때문에 촬영에 지장이 오면 안되잖아요. 스태프들에게 말도 않고 그냥 쭉 촬영을 했어요. 그때는 좀 힘들더라구요. 나중에는 스태프들이 알고 깜짝 놀랐지만 뭐 건강에는 문제없습니다. 지금도 아침에 일어나면 30분씩 꼭 스트레칭하고 자전거 타고 골프 연습도 꾸준히 하고. 하하하.”

53년의 연기 경력을 자랑하는 이 노배우는 ‘장수상회’ 제작발표회에서나 언론시사회 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도 이 말을 여러번 언급했다. 바로 ‘연극학도 시절로 돌아갔다’는 말이다. 연기에 대해선 이미 득도의 경지에 오른 경력을 자랑하지만 초심으로 돌아가 제대로 집중을 했다는 이 말에서 ‘장수상회’에 큰 힘을 보태는 말일 것이다.

“내가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가 1기에요. 그때가 1959년도에요. 그 당시 학생극의 붐이 있었죠. 당시 구 소련이나 그리스의 연극 이론을 정말 많이 배웠죠. 이번 영화를 하면서 당시 느낌이 돌아왔다고 할까. 이론에 따라 캐릭터를 분석했었죠. 드라마 할때 ‘추적자’에서 이런 기분을 느꼈는데 영화로는 처음이죠. 나이를 먹어가면서 내가 초심을 너무 잃어버린 것은 아닌가란 생각도 들었죠. 내 근본은 연극인데. 그래서 ‘장수상회’가 너무 좋았어요. 그 시절의 느낌을 살려주고. 완전히 박근형의 기본으로 돌아간 작품이에요.”

사진 = 김동민 기자사진 = 김동민 기자

아무래도 가장 이슈가 될 만한 점은 비슷한 또래의 윤여정과 함께 한 가슴 절절한 러브스토리다. 극중 윤여정과의 데이트 장면은 20대 젊은이의 데이트 모습과 별반 다를 바 없어 보일 정도로 알콩달콩 했다. 실제 아내와의 데이트는 어느 정도이며 아내에 대한 러브 지수는 어떨까. 연기 경력 달인급의 이 노배우도 아내 얘기에는 쑥스러운 듯 영화 속 성칠의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하하하. 그냥 극장가는 정도에요. 같이 손잡고 영화 보는 정도. 우선 내가 애교를 떠느라고 선물도 좀 사주기는 합니다. 아내가 천주교 신자라서 묵주나 성화 같은 걸 선물하고 또 아내도 좋아하죠. 나 이래뵈도 부드러운 남자입니다. 하하하.”

영화 속 김성칠의 입장으로 자신을 바라보면 어떤 느낌이 들까. 올해 76세인 이 노배우에게 어쩌면 하루하루가 새로움이고, 새로 임하는 작품이 (송구스럽지만) 마지막 작품이 될 수도 있단 생각도 들 법했다. 박근형도 이런 질문에 “당연하다”며 짐짓 진중한 표정을 지었다.

사진 = 김동민 기자사진 = 김동민 기자

“그럼요. 당연히 말씀이에요. 우리 나이에 오늘 어떻게 될지 내일 어떻게 될지 그건 아무도 모르는 겁니다. 사실 영화를 찍으면서도 김성칠에 대한 입장에서 감정을 나누면 참 가슴이 아파요. ‘내가 만약 이 사람이라면 어떨까’란 생각으로 다가가죠. 그런 동화의 과정을 겪고 나면 그 인물이 다르게 다가와요. 영화 속에서 윤여정씨도 그런 얘기를 하잖아요. ‘우리 나이엔 이런 게 다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고. 하루하루를 감사하며 지내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김재범 기자 cine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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