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어볼게 너무 많았다. ‘간신’은 이미 기획 단계부터 충무로 역대 최강 19금 사극으로 손꼽혔던 작품이다. 주지훈이란 배우가 갖는 이미지와 ‘간신’이란 보편적 선입견의 충돌이 강하게 다가왔다. 절친을 넘어 한 가족처럼 지내온 민규동 감독과의 작업은 주지훈에게 배우로서 분명 한 단계 도약의 발판을 마련해 준 듯하다. 우선 주지훈과 ‘간신’의 관계가 궁금했다.
“이번 영화 끝내고 제일 많이 듣는게 발성이 좀 특이했다는 말이에요. 뭐 특별히 신경을 쓴 것은 아니에요. 감독님이 에너지가 넘치는 모습과 함께 대사를 짧게 끊어달라고 주문을 해주셨어요. 대사를 주고받으면서 그 부분에 좀 신경을 썼더니 영화 속에선 그리 장군처럼 나오더라구요. 하하하. ‘간신’에도 여러 종류가 있어요. 자료 조사를 좀 해보니깐. 우리가 아는 ‘간신’은 영화 속에선 임사홍(천호진)의 몫이었죠, 전 일종의 권신(權臣)이라고 해야 할까.”
제목 자체가 ‘간신’이기에 주지훈이 극 전체의 흐름을 끌고 가야하는 것은 당연지사. 무엇보다 주지훈은 이번 영화가 다른 작품에 비해 2배 이상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이 들었다고 혀를 내둘렀다. 우선 주지훈이 연기한 임숭재는 등장 인물 각각과 밀접한 관계 설정이 눈에 띈다. 단 한 명과도 허투루 보내지 않는다.
“인물간의 관계 설정에 대한 부가적인 설명은 거의 드러나지 않죠. 하지만 그게 더 힘들었어요. 아버지 사홍과의 갈등, 연산군과의 미묘한 신경전, 단희(임지연)에게 느끼는 연정, 기생 설중매(이유영)와의 거리감, 장녹수(차지연)와의 암투 등 각각의 감정선을 유지해야 하니 정말 힘들었죠. 여기에 제가 맡은 숭재는 전체 이야기의 흐름을 끌고 가는 일종의 화자 역할까지 해야됐어요. 내 감정만 따라가는 게 아니었기에 다른 방식으로 접근이 필요했죠. 감독님과 대화를 통해 각 인물들과의 간격을 메우는 작업에 중점을 뒀죠.”
그는 곰곰이 무언가를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질문은 ‘반라의 여배우 수십명이 등장하는 영화에 출연한 남자 배우의 묘한 쾌감’을 물어봤다. 순수한 궁금증이었다. 주지훈은 파안대소를 하면서도 다시 물었다. ‘기분이 좋을 것 같냐’고. 그는 충분히 궁금한 부분일 것이고, 대중들에게도 묘한 궁금증을 불러일으킬 만한 지점이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배우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부분이 하나 있어요. 사극하고 메디컬 드라마의 어려움이죠. 대사가 많고 힘들어서? 에이 아니에요. 우선 등장인물이 많으면 신(Scene)과 신을 전부 연결해야 하잖아요. 한 장면 찍는데, 거의 반나절이 걸릴 때도 있어요. 원샷, 투샷, 쓰리샷, 걸어오는 장면, 나가는 장면, 대화할 때 연결 부분 등. 거의 죽음이죠. 우린 현장에서 ‘운평’ 수십 명이 걸어 들어오는 걸 보고 ‘오늘 죽었구나’라고 다들 합창을 했다니까요. 즐겁고 좋았다구요? 에이, 그냥 죽음이었어요. 하하하.”
가장 궁금한 점은 19금 노출신이다. 역사상 가장 19금스러운 ‘야사’가 넘치던 ‘연산군’시절 최악의 ‘간신’ 임숭재가 존재했던 시간을 연기했기에 노출에 대한 언급은 필수적이었다. 의외로 주지훈은 영화 속에서 그다지 노출에 대한 역할이 크지는 않았다.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야망과 그리고 분명한 목적이 있었기에 ‘노출’은 그의 몫은 엄밀히 따져서 아니었다.
“원래 저의 정사신은 대본에 없던 장면이었어요. 감독님과의 상의로 들어간 장면인데, 일종의 상상이라고 보시면 되요. 제목이 ‘간신’ 이잖아요. 정사신도 되게 간신스럽게 나와요. 그렇잖아요. 하하하. ‘간신’은 배우 각각의 역할이 확실하게 분담이 돼 있어요. 숭재는 비틀린 욕망에 대한 어떤 감정을 표현해야 했죠. 야한 정사? 에이 글쎄요. 간사한 정사신이라니까요. 하하하.”
쉬운 듯 편한 모습으로 툭툭 던져 나오는 주지훈의 말이지만 분명 결과물을 보면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듯한 짐작이 간다. 전적으로 주지훈은 민규동 감독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로 ‘간신’을 선택하고 참여했다. 이미 데뷔 9년차의 배우로서 ‘간신’은 소위 ‘따먹고 들어갈 수 있는’ 여지가 너무도 많은 작품이었다.
“이건 누가 봐도 주목을 끌만한 작품이에요. 그렇잖아요. 하지만 그 부분이 더 힘들었죠. 자칫 잘못하면 ‘그걸 겨우 그렇게 밖에 못해? 그러니 주지훈은 안돼’ 이런 소리 듣기 십상이죠. 정말 우스갯소리로 민규동 감독님 이름 석 자 믿고 했어요. 어느 날 감독님이 문자로 ‘너 나랑 영화 하나 할래’ 이렇게 보내오셨죠. 그래서 ‘네’ 하고 보냈죠. 근데 뭘 하잖거지? 이래서 한 시간 뒤에 ‘근데 뭔지는 알아야죠’ 이렇게 보냈더니. ‘알았어 보내줄게’ 라며 시나리오를 보내주셨죠. 하하하.”
서로 퉁명스럽게 툭툭 치고 빠지는 스타일 같았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주지훈은 민규동의 페르소나라 불릴 정도로 두 사람의 신뢰는 깊다. ‘서양골동양과자점 엔티크’ ‘키친’에 이어 ‘간신’까지 연달아 세 작품을 함께 했다. 민규동 감독은 주지훈을 가리켜 ‘마음으로 낳은 자식’이라고 표현할 정도였다.
“뭐 감독님 집에는 거의 우리집처럼 드나드니까요. 글쎄요. 민규동 감독님? 제가 아는 한 가장 혼신을 다하는 분 중에 한 분이세요. 되게 여리하시잖아요. 현장에선 정말 철인이 되세요. ‘앤티크’ 촬영할 때는 허리 디스크가 터지셨는데 누워서 연출을 하셨어요. 진짜 말도 안나왔죠. 이 분은 멘탈 자체가 좀 틀리신 분이에요. 가끔 감독님들은 배우에게 무리한 요구를 할 때 되게 미안해하세요. 그런데 민 감독님은 그냥 당연하게 시키세요. 그리고 웃긴게 거기에 홀려요. 연출가로선 정말 엄청난 강점을 가지신 분이에요.”
19금 영화 출연 뒤 공개 연애 중인 연인 가인에 대한 질문이 수도 없이 쏟아졌다. 누구나 그렇지만, 아니 배우이기에 그럴 수밖에 없는 ‘거북스러움’이 있단다. 자칫 주객이 전도되는 상황 속에 수많은 스태프와 동료 배우들의 노력이 외면 받는 상황이 너무도 싫다고.
“아마 그 친구(가인)도 그렇게 생각할거에요. 정말 혼신을 다해 만들어 낸 작품이 다른 부분으로 외면 받으면 참 아쉽잖아요. 그런 걸 다 알고 있기 때문에 노출 연기나 작품에 대한 상의 등은 전혀 안해요. 그냥 서로의 일을 존중하는 거니까요. 그리고 잘 만나고 있어요. 결혼은?. 아직 생각 없어요. 이제 그 질문 그만. 하하하.”
김재범 기자 cine517@
뉴스웨이 김재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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