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김희선을 얼굴로 연기하는 배우라 했던가.
김희선은 예쁘니까 시청률 잘나오고, 그러니 됐다는 말은 이제 옛말이다. 예쁘고 연기 못하는 여배우는 언젠가 한계에 부딪히기 마련. 김희선은 어땠을까. 사실 한계라는 말은 김희선 앞에선 제 힘을 발하지 못했다. 김희선은 결혼이라는 엄청난 난관과 마주하면서도 인기를 이어갔다. 심지어 한류스타 이민호와 멜로 호흡을 맞추며 명불허전 멜로퀸의 위용을 과시했다.
그러던 김희선이 어느날 갑자기 화난 엄마로 돌아왔다. 지난 7일 종영한 MBC 수목드라마 ‘앵그리맘’(극본 김반디, 연출 최병길)에서 김희선은 딸 오아란(김유정 분)을 지키기 위해 학교폭력과 재단비리 등 권력에 맞서 발벗고 싸우는 엄마 조강자로 분했다. ‘앵그리맘’은 한때 날라리 였던 젊은 엄마가 다시 고등학생이 돼 교육의 문제점을 정면으로 마주하면서 헤쳐나가는 통쾌활극이다.
‘2014년 MBC 극본공모’ 미니시리즈 부문 우수상 작품으로 ‘남자가 사랑할 때’ ‘사랑해서 남주나’를 연출한 최병길 PD가 메가폰을 잡았다.
◆ ‘앵그리 맘’, 여배우 김희선의 필모그라피 다시 썼다
‘앵그리 맘’은 단순한 드라마 그 이상의 가능성을 보여주며 인기리에 막을 내렸다. 시청률 면에선 다소 아쉬웠지만 김희선은 빛났다. 예뻐서 빛났다는 말이 아니다.
김희선은 ‘앵그리 맘’에서 조강자의 옷을 완벽히 입었다. 여배우 김희선은 없었다. 비로소 김희선이 배우라는 발에맞는 신발을 신은 느낌이었다. 앞서 방송된 KBS2 ‘참 좋은 시절’에서 김희선은 연기력으로 평가받겠다 야심차게 선언했었다. 사투리 연기에 후줄근한 옷차림, 질끈 묶은 머리 스타일을 선보이며 변신을 꾀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그런 김희선이 6개월 만에 심기일전, 엄마와 액션 연기를 완벽하게 소화했다.
김희선은 22일 오후 서울 강남구 신사동 모처에서 진행된 뉴스웨이와의 인터뷰에서 ‘앵그리 맘’을 기점으로 변화된 자신의 연기에 대한 솔직한 속내를 털어놓았다.
“기분 좋고 재밌었죠. 처음 시도해 본 연기였는데 제가 재밌어서 한 셈이에요. 촬영장 가는게 즐거웠고 그 감정이 연기에 녹았어요. 액션 연기를 처음해봤고, 교복도 오랜만에 입어봤어요. 그 모든게 저에게 꼭 맞는 느낌이 들었죠. 감독님들께서도 다른 드라마 촬영과는 다르게 저에게 많이 맡겨주셨어요”
◆ 액션·모성 연기 첫 도전, 김희선의 도전은 이제 시작
김희선은 ‘앵그리 맘’ 촬영을 되짚어보며 도전이라는 뜻밖의 단어를 뱉었다. 김희선과 도전이라니 어쩐지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었지만 솔직하고 쾌활한 그녀의 얼굴에서 자신감이 엿보였다.
“배우는 얼굴이 생명이잖아요. 그런데 액션 장면 촬영 도중 김희원의 구둣발에 맞아 얼굴이 찢어지는 부상을 입었어요. 많이 아파서 눈물이 나더라고요. 화가 나려는 찰나 ‘내가 김희선을 때렸더’라며 김희원 오빠가 자신을 자악하더라고요. 그 모습에 화를 못냈어요(웃음) 감독님께서 촬영을 중단하고 쉬었다 가자고 하시는데 피를 흘리다 죽는 한이 있어도 내가 촬영을 끝내겠다 마음먹고 촬영을 끝까지 진행했죠. 다행히 상처 분장을 한 상태라서 부상이 티나지 않았어요. 그래서 다행이었죠”
◆ 액션배우 김희선을 기대해
여배우에게 얼굴 부상은 치명적이다. 그런데 김희선은 부상당한 일화를 무용담처럼 늘어놨다. 죽는 한이 있더라도 촬영을 하고 싶었다는 그녀의 말이 묵직하게 와닿았다. 깨놓고 말해 몇 년 전 김희선만 하더라도 이런 일 상상할 수 있었을까. 심지어 김희선은 액션 연기의 참맛을 봤다고 말을 이어갔다.
“데뷔 후 처음으로 액션 연기에 도전했어요. 어설프면 어쩌나 고민했는데 방송을 모니터해보니 카메라 앵글도 생동감 있고 효과음에 조명까지 멋지더라고요. 상대 배우들이 리액션을 잘해주니까 더 긴장감 넘쳤어요. 주먹 한 대 휘두르면 사람들이 쓰러지고 테이블이 부셔지잖아요. 제가 연기한 것에 비해 효과가 200% 나오더라고요. 왜 남자배우들이 액션에 욕심을 내는지 알겠더라고요. 다음 작품에서는 액션에 도전해보고 싶어요”
◆ 김희선이 말하는 시장과 한계, 이유 있는 고민
김희선이 액션이라니 참 의외였다. 재밌는 것은 그가 인터뷰 내내 도전에 대해 성토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그가 도전에 대한 필요성을 깨달은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어느덧 중년에 접어들고 있는 김희선이 여배우로서의 딜레마에 대한 적잖은 고민을 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앵그리 맘’에서 엄마 역할을 했다고 해서 앞으로 더 억척스럽고 생활력 강한 엄마 역할을 할 것이라는 고정관념은 말그대로 고정관념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대중의 인식이 안타깝죠. 얼마든지 잘할 수 있는 분야가 많은데 설 자리는 좁아니까 할 수 있는 캐릭터는 점점 없어지는 게 현실이에요. 또 시청자들 역시 뻔한 멜로를 원하는 세태도 안타까워요”
그는 시장에 대한 고민과 여배우로서 연기하는 것에 대해 상당히 멀찍이 내다보고 있었다. 액션, 모성, 멜로 어느 것도 한계를 규정짓고 싶지 않다는 김희선.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선입견에 대해 말했다.
“예전에 이미숙 선배가 연기한 영화 ‘정사’가 재밌었어요. 이미숙 선배가 중년 멜로도 멋있다는 것을 스스로 보여주셨죠. 선입견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드라마와 영화의 시장이 넓어졌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저도 도전을 이어갈 생각입니다”
김희선은 도전을 통해 스스로의 한계를 지웠다. 전작의 실패를 딛고 과감히 도전한 승부수가 주요했으며 몸 사리지 않는 액션, 따뜻한 엄마 역할을 통해 정면 승부했다. 도전을 말하는 김희선에게서 변화가 보였다. ‘앵그리 맘’을 통해 배우로 거듭한 김희선이 끊임없는 도전과 승부수로 한국의 메릴 스트립이 될 수 있을까.
이이슬 기자 ssmoly6@
뉴스웨이 이이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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