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면가왕’, ‘가면’, ‘팬텀’, ‘복면검사’, ‘미녀와 야수’, ‘소라별 이야기’, 이들의 공통점은 가면을 쓴 주인공이 자신의 모습을 유무형의 가면 뒤로 감춘 채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예능-공연이라는 점이다.
또 다른 공통점은 가면이 중요한 메시지를 지니고 있다는 점. 현실에 대한 풍자의 성격을 띈 가면은 외모지상주의나 편견에 일침을 가하며 드라마 혹은 예능에서 때론 유쾌하게 혹은 살벌하게 묘사된다.
재밌는 현상이다. 하나의 장르에서 단순한 소재에 대중의 관심이 집중되는 일은 더러 있지만 대중문화계 분야 전반에 걸쳐 하나의 소재가 장악하는 것을 극히 이례적이라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대중은 왜 가면에 열광할까.
◆ 가면 쓴 지상파 예능, 유쾌한 하이킥
가면을 쓴 스타가 무대에 오른다. 가발에 장갑, 심지어 큰 드레스로 성별까지 구별할 수 없도록 가린다. 목소리를 변조해 누군지 알 수 없게 하는 것은 물론이요, 창법까지 변조하는 탓에 연예인 판정단의 한숨은 깊어진다. MBC 예능프로그램 ‘일밤-복면가왕’(이하 ‘복면가왕’) 이야기다.
외모를 가린 복면을 쓴 스타들이 무대에 올라 오직 노래만으로 승부를 겨루는 서바이벌 형식 음악프로그램인 ‘복면가왕’은 그동안 외모나 편견에 갇혀 실력으로 평가받지 못했던 스타들이 우르르 쏟아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걸그룹 에프엑스 멤버 루나, 비투비 육성재를 비롯해 개그맨 정철규, 방송인 홍석천, 배우 안재모, 가수 백청강 등은 ‘복면가왕’에 출연해 큰 화제를 모았다.
연예인 판정단과 일반인 판정단은 가면을 쓴 도전자의 노래실력 만으로 그를 평가한다. 가창력을 뽐내던 스타들이 가면을 벗으니 개그맨이거나 아이돌가수, 혹은 여성인 줄 알았는데 남성인 것. 가면 뒤 스타의 모습에 모두 입이 벌어진다. 이는 얼마나 우리사회에 편견이 얼마나 뿌리 깊은지 보여주는 방증이기도 하다.
이처럼 ‘복면가왕’은 편견에 가려 노래실력으로 재평가 받고자 하는 스타들이 앞다퉈 출연을 희망하고 있는 후문. 작은 가면 하나에 가려진 편견과 선입견은 관객과 시청자들에게 부끄럼마저 안긴다.
이러한 선입견은 남녀사이에도 팽배하다. KBS도 예능프로그램에 가면을 대입해 유쾌하게 풀었다. 지난해 겨울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방송돼 호평을 얻어 이후 정규 편성 방송되었던 ‘미녀와 야수’는 외모와 스펙으로 상대를 판단했던 기존의 데이트 프로그램과는 달리 출연자들의 외모와 스펙을 철저히 배제한 채 서로의 내면을 알아가는 과정을 그렸다.
실제 얼굴을 볼 수 없도록 특수 분장을 한 여성 1명과 6명의 남성이 등장하거나 남성 1명과 6명의 여성이 등장한다. 매 데이트마다 여성(혹은 남성)이 한 명의 남성(혹은 여성)을 탈락시키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탈락된 남성은 그동안 숨겨왔던 자신의 얼굴과 정체를 공개하고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러한 형식을 통해 그 사람의 학벌, 직업, 연봉, 외모 등의 정보를 노출하지 않은 채 데이트를 통해 상대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을 그렸다. 많은 대화 속에서 서로를 알아가므로 상대의 편견 없이 상대의 내면에 집중한다. 이는 이사회 결혼에 대한 청춘의 편견에 하이킥을 날리며 현실을 꼬집었지만 아쉽게도 봄 개편에 종영했다.
◆ 드라마 속 가면, 욕망과 카타르시스에 집중
예능에서 가면을 보다 유쾌하고 입체적으로 그렸다면 드라마에서는 은유적이고도 신랄하게 그린다. KBS2 수목드라마 ‘복면검사’(극본 최진원, 연출 전산)는 검사라는 신분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일을 주먹으로 해결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다. 법 보다 주먹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하대철 역에는 배우 주상욱이 분한다.
대철은 법으로 세상을 바꿀 수 없다고 판단해 밤마다 복면을 쓰고 범죄자 응징에 나선다. 법으로 이길 수 없는 세상이 있다는 설정부터 공감 장치가 튼튼하다. 여기서 시청자들은 대철에 이입할 수 밖에 없다. 이후 그가 휘두르는 정의의 응징은 시청자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안긴다. 마치 ‘각시탈’의 그것과 닮았다.
동시간대 방송되는 SBS 수목드라마 ‘가면’(극본 최호철, 연출 부성철) 역시 가면에 대한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하지만 ‘가면’에서는 정작 유형의 가면은 나오지 않는다. 주인공 변지숙(수애 분)은 서은하라는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
도플갱어(독일어로 '이중으로 돌아다니는 자'라는 뜻이지만 간단하게 그냥 더블( Double : 분신, 복제)이라 부르기도 한다) 또는 ‘왕자와 거지’의 형태를 차용하고 있지만 저변에는 신데렐라 콤플렉스가 깔려있다.
서은하는 겉보기에는 국회의원의 딸로 화려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대기업 총수의 아들 최민우(주지훈 분)와 정략결혼을 해야하는 상황에 놓이고 절망의 끝자락에 놓은 변지숙(수애 분)은 서은하의 삶을 대신 살기로 결심한다.
변지숙은 서은하라는 가면을 쓰고 진짜 행복을 찾는다. 그는 거짓 삶을 살지만 행복에 대한 갈증을 느끼는 모습을 통해 공감을 얻는다. 이는 인간의 욕망과 일맥상통한다. 가면을 쓴 채 또 다른 누군가로 변신하고 싶고 다른 미래를 희망하며 살아가는 현대인의 욕구가 공감 포인트를 자극한다.
◆ 무대에 펼쳐진 인간의 본성, 가면에 담았다
가면은 안방극장을 벗어나 무대에 올랐다. 뮤지컬 ‘팬텀’은 가스통 르루의 추리 소설 ‘오페라의 유령’을 원작으로, 팬텀의 삶에 숨겨진 비밀과 그의 비극적인 운명을 그린 작품이다. 개막 첫 주 만에 약 1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인기를 얻고 있다.
자신의 흉측한 얼굴을 가면 뒤에 감추고 숨어사는 천재 가수는 그 존재를 꽁꽁 숨기려한다. 제 얼굴이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걸 원치 않는 인물은 뛰어난 실력을 갖췄다. 하지만 얼굴이 드러나자 유령이 된다. 이 가면은 비극적인 성격을 띠는데 그렇기에 대중의 공감을 얻는다.
국내에서 처음 선보이는 이번 공연에서는 그동안 한 종류의 가면만 쓰고 나오던 것과는 다르게 이번 한국 공연에서는 팬텀의 감정 상태에 따라 가면을 착용한다.
연극계도 가면 열풍이 한창이다. 국내에서는 보기 드문 마스크 연극 형태를 차용, 형형색색으로 덧칠한 가면들이 다양한 캐릭터로 변신하는 연극 ‘소라별 이야기’가 지난 14일까지 관객과 만났다.
이야기는 할아버지 동수가 공원에서 시간을 보내던 중 어린 시절 추억을 떠올리며 시작한다. 동네를 함께 몰려다니던 친구 네 명이 어떤 소녀를 만나게 되면서 일어난 이야기를 그린다. 갈등과 오해가 빚어지고 다시 화해하는 과정 속에 아이들의 순수한 사랑, 우정, 질투의 감정을 녹여낸다.
잊혀진 동심을 찾는 과정을 무대에 펼친 ‘소라별 이야기’도 가면을 통해 감춰진 인간의 본성을 찾는 과정을 그렸다.
◆ 가면, 현대인의 불편한 현실 꼬집어
대중문화는 가면에 빠졌다. 그렇다면 분야를 막론하고 가면을 찾는 가장 큰 이유는 공감이다. 자신을 숨기고 싶은 심리가 가면이라는 장치와 만나면 힘을 얻는다. 그 공간이 판타지 세계라면 효과는 극대화 된다.
가면을 쓴 주인공은 다 똑같다. 동일선상에 놓이게 되는 것. 이는 그동안 자리잡은 편견과 선입견을 가리는 장치가 되는데, 이 포인트에 공감이 크다는 것은 현대인의 편견과 선입견이 얼마나 뿌리깊은지를 보여주는 방증이다.
이러한 불편한 현실을 꼬집으면서도 재미를 준다는 점이 시청자, 관객에게 주요한 것으로 보인다.
중요한 건 본질이다. 가면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에 대한 본질이 무엇인지 우리 사회가 생각해볼 때다. 대중문화가 가면에 빠져있는 지금, 이는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왜 가면이라는 장치가 필요한 것이며, 인기를 끌고 있는지 한 번쯤 생각해볼 때다.
이이슬 기자 ssmoly6@
뉴스웨이 이이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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