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허위 광고' 의혹 벤츠코리아 제재 착수벤츠코리아 "제기된 혐의, 구체적인 근거 부족"전문가 "명품 브랜드 이미지 의식했을 가능성"
사실 벤츠코리아의 거짓말 논란은 과거에도 한차례 불거진 바 있다. 약 3년 전 회사는 경유 승용차에 배기가스 배출량과 관련 과장 표기를 하면서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과징금을 부과 받았다. 이후 지난해 발생한 전기차 배터리 화재사고와 올해 허위 광고 논란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자동차 분야 최고 럭셔리 브랜드의 이미지에 먹칠을 한 모양새다.
'소비자 기만' 논란 벤츠코리아···공정위 제재 착수
지난해 8월1일 인천시 서구 청라아파트 지하주차장 내 주차돼 있는 벤츠 EQE350 차량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이 불로 23명이 연기를 흡입해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인근에 있던 차량 959대가 불에 타거나 그을리면서 총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생겼다.
사고의 정확한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화재 차량에 탑재된 배터리에서 발화가 시작됐다는 점으로 미뤄보아 배터리 내부 결함이 해당 사고의 주된 원인으로 추정되고 있다.
사고 이후 경찰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 소방당국 등이 합동 감식을 진행했다. 당시 국과수는 "차량 하부 배터리팩에서 불이 시작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차량 밑면의 외부 충격으로 배터리팩 내부의 셀이 손상돼 절연파괴되면서 발화됐을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같은 기간 공정위에서도 벤츠코리아에 대한 면밀한 조사를 펼쳤다. 지난해 9월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본사에 조사관을 파견, 전기차 판매와 관련 자료를 확보하는 등의 현장 조사를 실시했다. 특히 공정위는 청라아파트 화재 사고와 관련해 벤츠가 표시광고법을 위반했는지 여부에 더욱 초점을 뒀다.
앞서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CATL' 배터리가 장착됐다고 홍보했고, 공정위는 이와 관련 '사실과 다르다'며 조사를 벌였다. 벤츠가 일부 모델에만 CATL 배터리를 탑재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제대로 알리지 않았거나 마치 모든 모델에 CATL의 배터리를 장착한 것처럼 소비자를 기만했다는 게 요지다.
조사 결과, 불이 난 벤츠 차량에는 중국산 저가 제품인 '파라시스' 배터리가 탑재된 것으로 확인됐다. 벤츠의 전기 세단 EQE 모델에서 300 트림에만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고 나머지 모델에는 중국산 파라시스 배터리가 적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마티아스 바이틀 벤츠코리아 대표는 지난해 10월 열린 국정감사에서 "CATL 배터리만이 EQE 모델에 사용됐다는 설명이 아니었으며, 고객을 기만하려던 의도도 전혀 없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공정위 심사관이 지난해 9월과 올해 1월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 상대로 현장조사를 벌인 끝에 벤츠코리아 측이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을 위반했다는 결론을 냈다. 여기에 제휴사 딜러를 대상으로 소비자에게 이 같은 허위 사실을 안내하도록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인 혐의도 받고 있다. 공정위는 조만간 전원회의를 열고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 여부와 수위를 결정할 예정이다.
벤츠코리아는 이날 공식 입장문을 통해 "공정위 의견을 존중하지만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 다르며, 제기된 혐의는 구체적인 근거가 부족하다고 본다"며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뒤 절차에 따라 공식 의견서를 제출하겠다"고 전했다.
3년 전 허위표기로 과징금···잇단 논란
업계에서는 글로벌 완성차 기업인 벤츠의 과장된 홍보 전략을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우선 업계에서는 벤츠가 비용 절감을 위해 값싼 배터리를 탑재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벤츠가 전기차에 탑재했다고 언급한 CATL 배터리는 글로벌 1위 제조사지만 그만큼 가격이 비싸다. 반면 파라시스 배터리의 경우 가격이 저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벤츠가 최종적으로 전기차 가격을 낮추기 위해 저렴한 중국산 배터리를 사용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배터리 비용을 줄여 마진을 확보하고 이와 함께 경쟁이 치열한 전기차 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전략이었다는 해석이다.
문제는 벤츠코리아가 저가용 배터리를 사용하고도 고가의 CATL 배터리를 장착한 것처럼 언급한 점이다. 업계와 전문가들은 이 같은 허위·과장 홍보가 그간 벤츠가 유지해온 명품 브랜드 이미지를 지키고 프리미엄 가치를 강조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고 있다. 전 세계 1위인 CATL 배터리가 벤츠 브랜드에 걸맞게 인식될 뿐만 아니라 차량 성능과 안정성에 대한 신뢰도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벤츠의 허위 정보 제공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벤츠는 2012년부터 2018년까지 자사 경유승용차 내 배출가스 표지판에 '본 차량은 대기환경보전법 및 소음진동관리법의 규정에 적합하게 제작되었습니다'라는 문구를 표기했다. 이 표시는 일반 소비자에 배출가스 저감성능을 갖추고 있다는 인식을 주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벤츠의 디젤승용차에는 일반적인 운전조건에서 배출가스 저감장치의 성능을 낮추는 불법 소프트웨어가 설치돼 있었다. 이에 당시 공정위로부터 배출가스 저감 성능을 사실보다 부풀려 광고한 혐의로 과징금 202억원을 부과받았다.
황용식 세종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벤츠 같은 '독일차'라고 하면 좋은 부품을 사용하는 질 높은 브랜드 이미지를 떠올리곤 하는데, 이러한 이미지 때문에 부품 사용처 표시와 관련해 더 민감하게 반응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근 배터리 허위 광고의 경우, 가격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도 이 같은 선택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며 "이는 결국 국내 소비자들을 기만하는 행위며 신뢰를 크게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전문가들은 벤츠의 배터리 허위 고지가 정보 부족에 따른 결과일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놨다.
이호근 대덕대학교 미래자동차학과 교수는 "벤츠코리아가 고의적으로 정보를 제공했다기보다는 벤츠코리아에서 알고 있는 정보가 본사보다 상대적으로 부족해 이 같은 문제가 발생했을 수 있다고 본다"며 "다만 정보 부재든 고의성이든 문제는 명백하다"고 평가했다.
또, 김대종 세종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이번 사태와 관련해 "앞으로 기업들은 광고 문구와 설명 하나까지 투명하고 정확하게 안내해야 할 것을 유념했으면 한다"며 "특히 전기차 시장처럼 안전과 신뢰가 핵심인 산업에서는 정직이 곧 경쟁력이다"고 제언했다.

뉴스웨이 황예인 기자
yee9611@newsway.co.kr
저작권자 © 온라인 경제미디어 뉴스웨이 ·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