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개봉하기 전까지 배우들은 연이은 언론사 홍보 인터뷰로 강행군을 펼친다. 이날도 며칠 째 계속된 홍보 인터뷰로 임수정은 ‘파김치’가 되기 직전이라며 피곤한 듯한 찡그림으로 애교를 전한다. 사실 그게 ‘호소’인지 ‘애교’인지는 남자로서는 분간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이 부분은 사심이 가득한 질문이었다. 피곤해 보인다. 하지만 그래도 임수정의 매력은 넘치고 있다고.
“아이고, 저도 이제 30대 중반이 넘었는데요. 하하하. 입술에 침 바르고 말씀하시는 것 같지는 않고(웃음). 아직까지도 절 어리게 보시는 분들이 되게 많아요. 사실 제가 데뷔할 때부터 교복 입을 아니는 훌쩍 지난 상태에서 시작했는데. 하하하. ‘내 아내의 모든 것’부터 였나봐요. 제가 유부녀나 성인 연기를 하면 좀 의아하게 보세요. 그게 좀 스트레스였던 적도 있는데, 지금은 그것도 충분히 경쟁력이라고 봐야 할까요. 하하하.”
임수정은 이번 영화 출연 결정이 단 한 마디 때문이었다고 웃는다. 시나리오와 연출을 맡은 윤재구 감독의 러브콜이 컸단다. “임수정을 모델로 했다”는 한 마디가 그를 움직였다고, 사실 대부분의 감독들이나 제작자 혹은 캐스팅 담당자들은 배우 캐스팅 단계에서 립서비스처럼 던지는 말이다. 임수정 역시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그 달콤한 한 마디가 결정타였다고 웃었다.
“배우들은 다 똑같을 걸요. 그 한 마디가 ‘샤르르’ 였으니까요(웃음). 정말 감동이었어요. 립서비스였다고 해도, 최고의 찬사죠. 하하하. 사실 시나리오를 읽고 한 반 정도는 마음이 넘어가 있던 상태였는데, 그 말까지 들으니 완전(웃음). 글쎄 뭐랄까요. 프러포즈 받은 느낌? 임수정이 아니면 안 된다는 말. 이보다 더한 유혹이 있을까요.”
그가 맡은 지연이란 인물은 우연한 기회에 인생을 바꿀 정도의 제안을 받는 지연이란 여성이다. 카지노 거부를 유혹해 결혼을 하고 그의 재산을 가로채는 범죄에 가담하는 여성이다. 매혹적이고 유혹적인 여성으로 표현돼야 한다. 충분히 임수정이라면 가능했다. 임수정을 보고 이런 감정을 느끼지 못할 남성이 몇 명이나 될까. 감독도 충분히 알고 있던 것 같았다. 임수정은 크게 웃었다.
“저희가 우스갯소리로 영화 속 ‘지연’이란 인물이 감독님의 이상형이 아닐까란 말을 한 적이 있어요. 정말 디테일하게 요구를 해주셨어요. 특히 크게 표현을 하지 말아 달라고 하셨죠. 아주 작은 부분으로 세상과 담을 쌓은 나이든 갑부를 유혹해야 하는 여성, 진짜 어려웠죠. 지금 생각해보면 그래요. 감정을 컨트롤하기보단 그 상황에 절 맡겨 버린 것 같았어요. 그냥 휩쓸렸다고 할까. 오히려 크게 준비를 안 하고 그때그때의 현장 느낌에 던졌어요.
특히 영화 속 카지노 거부로 출연한 이경영에 대한 느낌은 남달랐단다. 괴팍한 성격에 세상을 담을 쌓고 요트 안에서만 생활하는 노인을 유혹해야 하는 지연을 연기한 임수정은 좀처럼 감정을 잡기가 쉽지 않았다고. 완벽하게 창조된 공간 속에서만 숨을 쉬는 한 남성의 마음속으로 들어가는 작업은 결코 만만치 않았단다. 물론 이경영의 매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고.
“정말 관록이란 단어를 온 몸으로 느낄 수 있는 작업이었어요. 우선 선배님이 저와의 로맨스를 함께 할 수 있게 됐단 점에 정말 즐거워 하셨죠(웃음). 당연히 저도 대선배님과 함께 하는 점에서 마음이 너무 편했고요, 선배님이 연기한 ‘김석구 회장’은 텍스트로만 보면 도저히 상상이 안가는 인물이에요. 그런데 그 괴팍함 속에도 사랑에 대한 마음은 조금 남겨두고 있단 모습을 표현하시는 것에 완전히 사르르 녹았죠. 하하하. 특히 피아노 치는 장면은 어우 진짜. 하하하.”
이경영과 함께 영화 속에 묘한 감정의 교류를 나누는 또 한 명의 인물은 바로 유연석이다. 요즘 대세 중의 대세로 꼽히는 후배와의 작업 역시 임수정에게 엔돌핀을 생성한 또 하나의 요소였다. ‘한 참 어린 후배와의 작업’이란 말에 임수정은 “한 참이라뇨”농담처럼 발끈하기도 했다. 그의 입에서 나온 유연석에 대한 칭찬은 끊이질 않았다.
“참 멋진 배우에요. 영화 보셔서 아실 것이잖아요. 남자가 봐도 멋지지 않아요(웃음). 특히 이번 영화에서 함께 했던 키스신은 연석씨의 도움이 정말 많았어요. 이 장면이 단순하게 키스신이지만 정말 분위기는 에로틱한 장면이에요. 아버지의 아내가 될 여자와의 키스신 자체가 굉장히 도발적인 설정이잖아요. 그것도 결혼식 당일 밤 몰래 만난 장면에서. 하하하. 감독님과 연석씨 그리고 저 세 사람이 정말 공을 들인 몇 장면 가운데 하나에요. 키스신 뒤 암막으로 처리된 부분도 묘한 상상을 불러일으키고. 하하하.”
영화 자체가 현대판 신데렐라 스토리에 대한 얘기다. 어떻게 보면 여배우란 직업 자체가 현실 속 순간의 신데렐라 일 수도 있겠다. 예쁜 드레스와 구두, 대중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스포트라이트, 여기에 한 순간이지만 작품 속 실제 신데렐라로서 살아본 임수정은 어떤 생각일까. 신데렐라는 무엇이고, 만약 임수정 본인이 영화 속 지연과 같은 상황이라면
“우선, 신데렐라? 신분상승이겠죠. 동화 속에서도 있고 현실에서도 분명 존재하지만 글쎄요. 나와는 거리가 있는 상황?(웃음). 소설이나 현실 혹은 시공간을 떠나서 신데렐라? 여배우도 어떻게 보면 신데렐라가 맞죠. 하지만 직업적으로 잠깐씩 신데렐라로 사는 건 좋지만 현실이라면 전 못해요. 아휴 못살죠. 실제 내 모습이 아닌 누군가의 마음에 들기 위해 만들어진 내 모습으로 사는 것. 답답하지 않을까요.”
임수정은 뜻하지 않게 신비주의 여배우로도 대중들에게 알려져 있다. 딱히 감추거나 숨기는 것도 아니지만 말이다. 그는 다소 내성적이고 조용한 성격이 그렇게 알려진 것 같다며 웃었다. 다수보단 소수의 지인들과 인연을 오래가져가는 편을 택하기도 한단다. 이젠 좀 그것들을 깰 시기가 왔다는 것도 느끼고 있다.
“제 성향이 그런 이미지를 만든 건 아니가 생각도 들어요. 글쎄요. 활달한 것보단 혼자 즐기는 것들을 많이 즐겼는데 요즘 들어 고민은 하고 있어요. 좀 더 소통을 하는 게 좋을까라고. 분명 필요한 건 느끼고 있고. 3년 만에 영화로 만나 뵙는데, 올해 말에 ‘시간이탈자’로 개봉을 준비 중이고, 조만간 드라마도 하나 생각 중이에요. 벌써 2004년 ‘미안하다, 사랑한다’ 이후 드라마가 없었네요. 자주 찾아뵐께요.(웃음)”
김재범 기자 cine517@
뉴스웨이 김재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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