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해진의 반전 매력은 알만한 사람들만 알고 있다. 그의 투박스러운 외모와 기절초풍할 유머 감각은 전매특허가 된지 오래다. 특히 ‘유해진이 출연한 영화와 그렇지 않은 영화’로 나뉜다는 공식이 생길 정도로 충무로의 여러 흥행 법칙 중 정점에 선 아이템이 바로 배우 유해진이었다. 그는 감독들이 사랑하고 동료들이 사랑하고 팬들이 사랑하는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흥행 배우의 좋은 예를 만들어 가고 있었다. 아니 이쯤 되면 유해진은 ‘흥행’의 다른 말로 불러도 손색없는 수준이다. 하지만 우리가 모르는 진짜 유해진의 매력은 인간미다. 그의 세심하고 이타적인 매력은 ‘삼시세끼’를 통해서도 충분히 봐 왔다. 동료들은 이미 다 알고 있다. 거칠고 때로는 포복절도케 하는 연기력 뒤에 감춰진 진짜 인간 유해진의 매력을 말이다. 영화 ‘극비수사’를 보면 아주 조금이지만 ‘인간 유해진’을 볼 수가 있다. 유해진은 그런 배우이자 인간이다.
영화 개봉 며칠을 앞두고 만난 유해진은 차분한 모습이었다. 여러 작품에서 까불거리는 코믹한 이미지로 비춰진 유해진이지만 사실 그의 본 모습은 진중하다 못해 상당히 무겁고 점잖다. 질문 하나에도 깊게 생각을 하고 또 잠시 먼 산을 바라보며 생각이 잠기기를 여러 번이었다. ‘극비수사’ 속 도사 김중산이 진짜 유해진이었던 것만 같았다. 진중하고 사려 깊고.
“에이, 뭐 그런 게 어디 있어요. 나야 뭐 말 주변이 좀 없으니 그저 뜸을 들이는 것뿐이지. 이번 영화도 뭐 사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에요. 마침 들어온 시나리오가 ‘극비수사’라서. 하하하. 저야 뭐 대단한 배우도 아니고 그때그때 들어오는 시나리오에 맞춰서 스케줄 정하는 조연이잖아요. 하하하. 대신 지금까지의 내 모습과는 분명 다른 모습을 보일 수 있을 여지가 많았던 것은 분명해요. 거기에 곽경택 김윤석이란 이름이 결정을 도와준 진짜 이유이기도 하죠.”
사실 ‘극비수사’ 소식을 들은 뒤 유해진이 도사역에 캐스팅됐단 사실에 충분히 고개가 끄덕여 졌다. 하지만 영화가 공개된 뒤 생각지도 못한 반전 매력에 화제를 모았다. 진중하고 무게감 넘치는 유해진표 ‘도사 김중산’이 등장한 것이다. 당연히 유해진이 연기한 ‘도사’라면 코믹스럽고 유머스러울 것이란 선입견이 있었다. 그런 예상을 보기 좋게 빗겨나갔다. 유해진도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아마 다들 그렇게 생각하셨을 거 같아요. 감독님도 원하셨고, 저도 그랬고, 색깔을 좀 빼려고 노력을 많이 했죠. 우선 윤석이형이 뛰어다니는 형사잖아요. 활동적인 면이 강하고, 밸런스를 맞춰야 한단 생각이 강했어요. 전 좀 정적인 면을 가져가야 겠다 생각했죠. 어떤 균형미가 맞춰져야 전체적인 스토리의 무게감이 틀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봤죠.”
정말 의외의 결정은 곽경택 감독이었다. 지금도 그랬고, 당시에도 그랬단다. 유해진 본인도 ‘도사 김중산’이란 인물이 왜 자신한테 왔는지 모르겠단다. 우선 마음에 들었기에 자신이 배우로서 그려낼 여지가 넘쳐나는 인물이라 욕심이 났다. 그럼에도 가시지 않는 의문은 ‘왜 유해진일까’였다고.
“정말 궁금했죠. 기자님들도 여러분 만나면 ‘정말 의외다’는 말씀들을 많이 해주세요. 가장 최근작품인 ‘해적’이나 ‘삼시세끼’ 등도 보면 제가 코믹스럽게 나오잖아요. 그런데 김중산이란 인물은 전혀 다른 느낌이고, 나한테 뭘 보고 제안을 했는지 모르겠어요. 말씀 해주신 것 같은데 솔직히 지금 까먹었어요. 하하하. 그런 거 뭐 중요해요? 작품 잘 완성했고, 관객 분들이 좋아해주면 그만이죠.”
배우로서 소신이 분명한 듯한 이 같은 인상은 영화 속 ‘도사 김중산’과도 맞닿아 있는 듯했다. 영화 속에서 공길용(김윤석) 형사가 갈피를 잡지 못하는 듯 흔들릴 때도 김중산은 자신의 생각과 믿음을 밀고 나갔다. 흙바닥에 쓴 ‘소신’이란 단어가 ‘김중산’이란 인물을 확실하게 대변하고 있었다. 유해진의 지금과 김중산의 영화 속 모습은 어떤 부분에서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분명 있었다.
“아마 실제 김 선생님도 그러셨을 것 같아요. 요령 부리지 않고 정도만 걸어가시는 길을 택하신 것 같아요. 사실 좀 그래요. 영화 속 김중산은 먹고 사는 문제가 직면한 상황 속에서도 요령 피우지 않고 자신의 소신을 지키잖아요. 좀 무책임한 가장이죠. 그럼 김중산은 무책임한 인물이냐고? 그런 부분을 얘기하려는 건 아니죠. 자신이 선택한 부분에선 의심하지 말고 끝까지 나가라. 그걸 말하는 것 아닐까요.”
그렇게 믿고 밀어 붙인 ‘도사 김중산’ 속에서 유해진은 어느 순간 자신의 돌아가신 아버지를 보았다고 한다. 김중산의 올곧은 고집, 혹은 자신이 믿고 있는 것을 끝까지 믿는 소신이자 추진력 등이 과거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고. 영화 속 김중산의 내면과 외면 모두 아버지의 그런 이미지를 많이 따왔다고 한다. 자연스럽게 말이다.
“나도 모르게 그렇게 나오더라구요. 어느 순간 모니터 속 내 모습에서 아버지가 보이는 거에요. 그 이후부턴 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르면서 참고를 했던 거 같아요. 입고 있는 옷이나 그런 부분들. 마당 수돗가에서 머리를 감거나 양치질을 하는 모습 등. 저희 집도 유년시절 형편이 좋지를 못했어요. 그런 형편에 주변에서 도움도 많이 주신다고 했는데 아버지는 대쪽 같으셔서 다 거절하시고. 그냥 집안 사정 상관없이 당신 고집만 피우신 분이셨죠. 하하하. 지금 생각하면 그것도 소신이였죠. 김중산의 모습을 그렇게 맞춰갔던 거 같아요.”
실화란 부담과 결말이 미리 정해져 있는 대부분의 관객들이 알고 있는 수사물이기에 배우로선 상당히 부담감을 안고 출발할 수밖에 없는 얘기다. 물론 김윤석-유해진이란 걸출한 투톱과 곽경택이란 감독은 어느 누구라도 믿고 볼 수밖에 없는 조합이다. 결국 이 세 사람이 실화이자 결말이 드러난 얘기를 믿고 볼 수밖에 없는 걸출한 상업영화로 만들어 낸 공신들이다.
“시대적 배경이나 수사물이란 점이 ‘올드’하고 ‘익숙’할 것이란 걱정은 분명했어요. 거기에 결말이 드러나 있고. 위험하죠. 거기에 유괴를 소재로 해서 좀 거북스럽기도 했어요. 하지만 보시면 아시잖아요. 단순한 유괴의 얘기가 아닌 것. 더욱이 결말이 해피엔딩이고, 실제 공길용 선생님이나 김중산 선생님 모두가 잘되셨고. 참 행복한 얘기잖아요.”
김재범 기자 cine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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