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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살’ 이정재, 악역도 멋스러운 섹시한 40대 어느 날

[인터뷰] ‘암살’ 이정재, 악역도 멋스러운 섹시한 40대 어느 날

등록 2015.07.27 00:00

김재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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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일러가 다소 포함돼 있습니다.

사진 = 최신혜 기자사진 = 최신혜 기자

남자의 섹시함은 40대부터란 고리타분한 개념을 들춰보자. 잘생긴 외모, 탄탄한 재력, 멋진 화술, 완벽한 수트핏 등 많은 요소가 남자의 섹시함을 정리한다. 그럼에도 유독 40대 이상의 남자에게서 ‘섹시함’의 완성형을 꼽는 이유가 뭘까. 영화 ‘신세계’에서 최민식은 한 배우의 캐스팅을 도우면서 밝힌 일화가 있다. 그 배우에게 전화를 걸어 다짜고짜 “너 몇 살이냐”라고 물었단다. 40대가 넘었단 얘기에 “오케이”를 외치고 그에게 함께 하기를 요청했다고. 물론 감독의 마음도 이 배우에게 쏠려 있었음은 당연하다. 그리고 ‘신세계’에서 그는 남자의 섹시함을 스크린에 아로새겼다. 연기력은 두 말이 필요 없는 수준. 한 때 청춘의 아이콘이었다. 하지만 옛말이다. 이제 그는 완성형 남성미의 대명사가 돼가고 있다. 영화 ‘암살’ 속 ‘염석진’이란 인물의 이중성은 남성미의 또 다른 설명으로 보더라도 충분히 납득이 된다. 생존의 본능성과 고뇌의 이율배반적인 모습은 ‘암살’의 다른 이름이고 다른 모습이다. 배우 이정재는 이제 완성형이다.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암살’의 최동훈 감독과는 전작 ‘도둑들’에 이어 두 번째다. ‘도둑들’에서 그가 연기한 ‘뽀빠이’는 기회주의자이면서도 이른바 ‘얍삽한’ 이미지가 강렬한 캐릭터였다. 근육질의 남성미 충만한 이정재의 도전이 돋보였던 인물이다. 속 시원하게 또 화끈하게 이정재는 ‘뽀빠이’가 됐다. ‘암살’의 ‘염석진’은 ‘뽀빠이’의 ‘다크’하고 ‘시크’란 버전이랄까. 비슷하면서도 다르고 다르면서도 또 공통점이 많은 인물이었다.

사진 = 최신혜 기자사진 = 최신혜 기자

“굳이 표현하자면 그럴 수도 있지만 다른 부분이 훨씬 많죠. 염석진은 극 진행을 주도적으로 방해하는 인물이에요. 또한 스토리 전체의 반전 방향을 정하기도 하고. 극 자체의 긴장감을 이끌어야 하기 때문에 에너지도 상당해요. 배우로선 참 힘든 인물이죠. 또 20대부터 60대까지의 시간을 다 소화해야 하니 여간 고통스러운 게 아니에요(웃음). 육체적 변화부터 그 안에서 변화하는 감정의 굴곡까지 너무도 다양한 모습을 보여야 하니 비교 불가의 부담이죠.”

개봉 전 만난 이정재는 ‘암살’에 대한 호평에 일희일비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스스로가 무려 15kg의 감량에 48시간 무수면 촬영 등 자학에 가까운 캐릭터 구축 과정을 거친 작품이기에 그 어떤 출연작보다 애착이 강했다. 배우의 만족감은 끝도 없고, 만족을 하는 순간 정체되고 머무르고 썩는 단 것을 잘 알고 있는 연차이기에 부족함은 끝도 없이 느껴진단다.

“진짜 시사회에서 봤지만 영화는 편집의 미학이고, 편집의 예술이에요. 하하하. 내가 생각해도 부족한 부분이 많았는데, 염석진을 너무도 그럴싸하게 만들어 주셨으니 말이에요. 염석진은 내면을 들키면 안되는 인물이에요. 그런데 영화 속에서 딱 두 번 자신의 속내를 어쩔 수 없이 내보이는 장면이 있어요. 첫 번째가 아편굴 장면이에요. 환각 상태에서 혼자 자신의 불안정한 내면을 외치는 모습이 있죠. 영화 속에선 좀 축약됐는데 굉장히 중요한 장면이었어요. 마지막 부분에 등장하는 장면 중에 법정 장면도 그래요. 본인의 잘못을 거짓으로 포장하는 모습에 참 대단하면서도 불쌍한 인물이란 생각이 들 정도였죠.”

사진 = 최신혜 기자사진 = 최신혜 기자

이정재의 말처럼 염석진은 ‘기회주의자’일수도 있고, 그 시절 아니 ‘암살’ 속 인물 가운데 가장 현실적인 욕망의 소유자일 수도 있다. 삶에 대한 애착, 생존에 대한 본능만으로 스스로를 지배하는 그의 모습은 인간 본연의 모습이고, 또 본능이다. 시절의 배경 속에 묻히면서 그는 배신자 혹은 변절자의 낙인을 받게 되지만 말이다. 이정재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염석진을 이해하고 있었다.

“재판 과정을 보면, 당시 분위기로 염석진은 필연적으로 사형이죠. 그 시절 독립운동을 한 분들 모두가 그렇지는 않지만 필연적으로 염석진이란 인물도 실존했을 것으로 믿어요. 사람이라면 죽음 앞에서 누구나 똑같아 지지 않을까요. 본성이라고 해야 할까. 마지막 죽음의 모습에서도 그 애착이 고스란히 드러나요. 이렇게까지 해서 살아왔는데(웃음). 어떤 식으로든 그는 살아남았고. 시나리오 단계부터 감독님과 상의해 염석진의 디테일을 잡아냈어요.”

사실 염석진의 이중성과 독립군 암살단의 신념은 한 끗 차이일 것이다. 일종의 신념과 집념의 차이라고 표현해도 무방해 보인다. 시대가 만든 인물이란 점에서 염석진도 독립군도 하나의 연장선이다. 하지만 이들은 끝내 반대 방향으로 삶의 궤도를 튼다. 한 쪽은 삶의 집착으로, 또 한 쪽은 삶의 포기로. 그 끝에는 둘 다 죽음만이 있지만 말이다.

사진 = 최신혜 기자사진 = 최신혜 기자

“신념과 집념의 차이라. 정말 좋은 표현 같네요. 하하하. 독립군이 신념이라면 염석진에겐 집념만이 있을 뿐이죠. 나라를 위해 싸우는 독립군에 대한 얘기는 우리 주변에 정말 많잖아요. 하지만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염석진 같은 인물도 그 시절 분명히 수없이 존재했어요. 나라의 존재보단 삶에 대한 이유와 자신만을 위한 투쟁이랄까. 그런 얘기가 부족하고 없었다 보니 이번 영화에서도 유독 ‘염석진’이 도드라져 보일 수 있을 거에요.”

‘암살’ 속 이정재가 맡은 ‘염석진’ 자체가 스토리 전체의 브레이크를 거는 주요 포인트이기에 캐릭터에 대한 얘기가 많았다. 하지만 ‘암살’은 1930년대를 배경으로 한 시대극이란 점에서도 눈을 돌릴 필요가 있는 영화다. 사극과도 다르면서 현대극과는 더욱 다른 준비 과정과 디테일이 필요했다. 이정재 역시 이 점에 주안점을 뒀다. 설명하지 않으면 모를 디테일도 그의 열정 속에 담겼다.

사진 = 최신혜 기자사진 = 최신혜 기자

“영감(오달수)과의 대화 중에 제가 대사 도중 갑자기 침을 뱉어요. 뜬금없는 모습인데, 이게 그 시절의 디테일한 차이에서 오는 버릇이랄까. 그 시절에는 필터가 없는 담배를 피우다 보니 입에 담배잎이 자주 들어갔어요. 그런 점을 노린 것?(웃음). 그 외에 구식총이나 라이터 등 소품 위주로 다양한 디테일을 잡아갔죠. 의상도 꾀죄죄한 모습으로 좀 꾸미고. 하하하. 머리도 자주 못 감았을 것 같아서 기름이 번들번들한 상태를 만들고(웃음)”

그렇게 디테일을 잡아나간 ‘염석진’ 그리고 이정재에겐 어느덧 ‘악역’이란 의미가 예상외로 가깝게 다가서고 있었다. 데뷔 초 청춘의 아이콘으로 또 영화 ‘태풍’에선 악을 응징하는 ‘선의 히어로’ 등으로만 출연해온 이정재 아닌가. 어느덧 ‘신세계’에서의 이자성, ‘도둑들’에서의 ‘뽀빠이’ 등 이정재는 점차 어둠과 맞닿는 이미지로 변절하고 있었다.

사진 = 최신혜 기자사진 = 최신혜 기자

“하하하, 변절은요 무슨. 글쎄요. 나이가 드니 어쩔 수 없죠. 좋은 놈, 나쁜 놈으로 캐릭터를 나누면 ‘좋은 놈’은 요즘 젊고 멋진 친구들의 몫이고, 이제 전 ‘나쁜 놈’으로 가야죠. 원래 그런 거에요. 하하하. 그게 생각해 보면 그래요. 연륜이랄까. 배우들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나이든 배우들이 좀 더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나이든 배우들이 좀 더 악역에 많이 캐스팅 되는 것 같기도 하구요. ‘좋은 놈’의 에너지보다 사실 ‘나쁜 놈’의 에너지가 좀 더 강렬해야 관객 분들도 보기 좋으실거에요. 나중에 그 강렬함이 팍 하고 깨져야 어떤 쾌감도 들고. 하하하.”

‘암살’ 속 이정재는 달리고 또 달린다. 신체적 달림부터 감정의 달림까지 처음부터 끝까지 전력질주를 한다. 실존 인물에 대한 배우적인 부담감이 첫 번째일 수도 있다. ‘이정재’란 브랜드 자체에 확신을 가지는 대중에 대한 예의가 두 번째 일수도 있다. 스스로가 선택한 작품에 대한 예의가 세 번째 일수도 있다.

사진 = 최신혜 기자사진 = 최신혜 기자

“세 가지 전부 다 맞아요. 언제 슬럼프가 올지 모르는 데 달리고 달려봐야죠. 하하하. 이번에는 아마도 실존하지 않았지만 분명 실존했을 것 같은 인물에 대한 부담이 컸을 거에요. 김구 선생님을 연기한다면 어떤 특징이 있잖아요. 누가 봐도 ‘김구다’라는. ‘암살’에서 김구 선생님을 연기한 선배님이 정말 부담감을 느끼셨어요. 저 뿐만 아니라 모든 배우 스태프가 다 이해가 되죠. 염석진? 아무도 모르는 인물이에요. 그런데도 우린 이미 알고 있는 인물 같이 다가오잖아요. 저에겐 참 의미 있는 캐릭터였고, 생각 속 깊게 각인될 인물이에요.”

P.S ‘아편굴’ 촬영 당시 15kg 감량과 48시간 무수면 촬영이 화제를 모았다. 다시 한 번 재촬영을 한다면? 이 질문에 이정재는 “꼭 그래야 하냐”며 웃는다. 전작 ‘빅매치’에선 육체적 극한의 정점을 맛봤다고 했었다. 혹시 ‘빅매치’와 ‘암살’ 둘 중 하나를 골라서 다시 찍어야 한다. 이정재의 선택은? “기자님, 저한테 왜 그러세요.(울상)”

김재범 기자 cine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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