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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션’, 감히 찬사조차도 미안할 ‘142분’

[무비게이션] ‘마션’, 감히 찬사조차도 미안할 ‘142분’

등록 2015.09.25 15:28

김재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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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션’, 감히 찬사조차도 미안할 ‘142분’ 기사의 사진

자 두 가지의 조건을 제시하겠다. 당신이 어딘가에 홀로 남겨지게 됐다. 당신이 그곳에 있다는 것을 다행스럽게도 다른 사람들이 알고 있다. 구조하러 오겠단다. 그럼 문제는 해결된 것 아닌가. 대체 뭐가 문제인가. 그런데 만약 당신이 홀로 남겨진 곳이 바로 구조대와 무려 2억 2500만km나 떨어진 화성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그 어떤 생명체도 존재하지 않는다. 화성이란 곳에서 당신은 혼자다. 그럼 당신의 입에선 이 한 마디가 튀어나오게 될 것이다. “X됐다.”

영화 ‘마션’은 과학소설 역사상 최고의 작품성과 흥행성을 모두 갖춘 작품으로 불리는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실제 이 소설의 첫 문장은 “나는 X됐다”란 다소 거친 표현으로 시작한단다. 사실 거칠다는 느낌보단 아이러니하게도 희망적으로 들린다. 지구와 비슷한 크기의 거대 행성에 홀로 남겨진 이 한 남자는 낙담하지 않는다. 포기하지 않는다. 포기해야 마땅한 순간이다. 생존에 가능한 모든 조건은 단 30일에 불과하다. 하지만 정상적으로 구조대가 오려면 무려 4년이란 시간이 걸린다. 주인공 마크 와트니(맷 데이먼)는 선택을 한다. 이대로 죽을 것인가. 아니면···

 ‘마션’, 감히 찬사조차도 미안할 ‘142분’ 기사의 사진

원작 소설의 부제는 ‘어느 괴짜 과학자의 화성판 어드벤처 생존기’다. 홀로 남겨진 와트니는 생존을 택한다. 그에게 절망은 없다. 그는 홀로 남겨진 것을 기회로 삼는다. 아이러니를 넘어 사실 공감가기 힘든 감정이다. 극도의 폐쇄성과 불안 공포가 엄습할 이 공간에서 와트니는 자신의 과학적 지식과 연구의 확신을 위한 행동에 돌입한다. 이 과정이 흥미롭고 재미있고, 눈물겹지가 않다. 오히려 재기발랄한 감정으로 넘쳐난다. 우주 재난 영화에서 보여지는 이른바 ‘인본주의’ 사상은 사실 살짝 비켜나 있다.

영화는 시작과 함께 와트니를 죽음의 나락으로 떨어트린다. 미국 우주항공국(NASA)의 아레스3호 탐사대는 화성에서 채집 활동을 벌인다. 탐사활동 중에 거대한 모래폭풍을 만난 탐사대 가운데 강풍에 휘날린 파편에 맞아 와트니는 실종된다. 대원들은 와트니의 죽음을 확신하고 귀환선을 타고 지구로 향한다. 하지만 와트니는 살아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홀로 기지로 돌아온 와트니는 지구로 자신의 생존을 알린다. 지구에 남은 나사 직원들은 와트니 구조 계획을 세우기 시작한다. 하지만 2억km 밖에 있는 그를 구하는 것 자체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나사는 와트니의 동료들에게 이를 알린다. 동료들은 죽음을 각오하고 와트니를 구하기 위해 우주선을 다시 돌린다.

 ‘마션’, 감히 찬사조차도 미안할 ‘142분’ 기사의 사진

이제 와트니는 구조대가 오기까지 스스로 화성에서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를 해야 한다. 다행스럽게도 그는 식물학자다. 생명체가 자라나기 힘든 환경의 화성 토양에서 그는 감자를 재배해 낸다. 산소를 만들어 낸다. 물을 만들어 냈다. 자신이 죽음의 문턱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는 알고 있는지 아니면 잊고 있는지 그것도 아니면 그것을 즐기는지 모를 정도로 태연하다. 낙천적이다. 유머까지 있다. 결코 웃을 수 없는 상황에서도 그는 모든 것을 웃음으로 받아 넘긴다. 그리고 기다린다. 자신을 구하러 올 것이란 믿음이 있었다. 자신은 화성에서 홀로 죽을 수 없다는 바닥을 알 수 없는 확신이 있었다. 당연히 살아 돌아갈 것이란 확신은 우리의 예상대로 맞아 떨어질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사실 ‘마션’의 핵심은 그렇다. 마크 와트니의 무사 귀환이 포인트는 아니다. 극한의 상황 속에서 이를 대처하는 한 인간이 보일 수 있는 믿기 힘든 생존기와 그 생존기 안에서 보여 지는 한 인물의 변치 않는 감정의 결이다. 지구에 있는 나사 직원들은 와트니의 감정 상태가 극도로 불안할 것이라 짐작한다. 하지만 정작 화성의 와트니는 자신이 죽은 줄 알고 먼저 떠난 탐사대 대장이 남긴 음악 파일을 두고 “지옥 같은 음악 취향”이라며 불평을 늘어놓는다. 죽음보다 더한 외로움의 순간 속에서도 와트니는 자신을 놓치 않고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그저 상황을 즐기고 상황 속에서 해결책을 찾아나서는 것에만 집중한다. 그것이 바로 ‘마션’의 중점이자 핵심일 것이다. ‘살아남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살아가는 것이 진짜다’는 명제가 와트니가 홀로 화성에서 지낸 500여일의 시간에서 그려진다.

 ‘마션’, 감히 찬사조차도 미안할 ‘142분’ 기사의 사진

거장 리들리 스콧 감독이 ‘프로메테우스2’의 연출을 미루고 이 작품을 선택했단 점에서 사실을 약간 의외다. 스콧 감독은 스케일과 함께 강렬한 남성미가 느껴지는 작품을 주로 연출해 왔다. 그의 영화에선 비장미가 느껴지고 스릴감과 장대함이 넘쳐났다. 하지만 ‘마션’은 오히려 반대다. 거대한 우주, 그리고 우주를 배경으로 한 재난 상황은 필연적으로 스콧 감독의 취향을 예측하게 만들지만 역으로 ‘미니멀’한 감성이 느껴진다. 카메라는 오롯이 인물에 포커스를 맞추고, 와트니의 표정과 몸에 시각을 집중시키게 만든다.

서스펜스와 화려한 액션에도 ‘마션’은 별다른 취향을 선보이지 않는다. 악당도 없고, 영웅도 없다. ‘인터스텔라’와 ‘그래비티’가 담고 있던 우주에 대한 거대 담론은 더욱더 없다. 놀랍게도 이 점이 ‘마션’의 모든 것을 집중하게 만드는 힘이 된다. 홀로 남겨진 한 남자와 그 한 남자를 구하러가는 동료들의 인간애 그리고 가족들의 모습에서 스토리는 충분히 눈물을 잡아 뽑아내는 신파성을 그려낼 수 있다. 미국 제일주의 사상이 결합돼 서글프면서도 거북스러운 장면이 등장할 법도 하다. 하지만 이런 지점을 교묘하게 비켜간다. 완벽한 의도이고 연출이다.

 ‘마션’, 감히 찬사조차도 미안할 ‘142분’ 기사의 사진

영화 곳곳에 등장하는 올드팝의 리듬감은 ‘마크 와트니’가 지닌 긍정적인 사고 체계와 결합돼 관객들의 발을 구르게 할 것이다. 마지막 구조의 순간 자신도 모르게 손을 움켜쥐고 ‘힘내 와트니!!!’를 외치는 자신을 발견한다면 이미 당신도 ‘와트니의 긍정’에 전염됐다.

우주를 배경으로 한 SF재난 영화가 이토록 긍정적이고 담백하단 사실이 놀랍다. 기교도 없다. 사연도 없다. 오로지 사람만 존재한다.

 ‘마션’, 감히 찬사조차도 미안할 ‘142분’ 기사의 사진

물론 거장 리들리 스콧의 힘이 가장 컸을 것이다. ‘마션’, 찬사 조차도 이 영화에게는 미안할 따름이다. 개봉은 10월 8일.

김재범 기자 cine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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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웨이 김재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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