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자체만으로 ‘힐링’이었다. 루시드폴의 음악은 잔잔하지만 또 강렬한 울림과 잔상이 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루시드폴 음악에 대한 이미지다.
이제 가수라는 명사 대신 종합 예술인이라는 수식어가 더 잘 어울린다. 싱어송라이터 루시드폴이 2년만에 정규 7집 앨범으로 돌아왔다. 그 어떤 ‘누군가를 위한,’ 앨범이라고 감히 말한다.
“전 매일 그대로 있었어요”라며 웃는 루시드폴이 2년간의 공백기 소감을 대신했다.
루시드폴은 지난해 결혼과 함께 제주로 이사해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싱어송라이터 루시드폴에 ‘농부’라는 명칭이 더 따라붙는다. 그리고 그곳에서 직접 감귤을 재배하며 제주에서의 생활을 만끽했다.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가 가득 담긴 앨범은 공들여 키운 감귤과 함께 세상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대중들과 소통을 시작했다.
지금껏 타이틀곡이란건 없었던 뮤지션이다. 하지만 이번엔 특별하게 ‘아직, 있다.’를 타이틀곡으로 선정했다.
“제 앨범은 타이틀곡이 없다시피 하는 경우가 많았죠. 하지만 이번 앨범에서는 처음 데모를 작업할 때부터 타이틀곡이 너무 명확했습니다. 1집 이후, 처음으로 앨범 발매와 뮤직비디오가 나오는 기적 같은 일이 발생 했어요.(웃음)”
루시드폴의 정규 7집은 마치 동화책을 연상케 했다. 아니 동화책이다. 루시드폴은 자신이 직접 쓴 동화책과 함께 사운드트랙을 포함한 15곡이 담긴 시디가 묶인 이색적인 방식으로 앨범을 제작했다. 또 한정판 1000장에 한해서는 그가 직접 재배한 감귤과 제주도에서 찍은 사진 엽서도 함께 판매됐다. 국내 ‘최초’다. 차분하고 조용하기만 하던 루시드폴의 음악에 신박한 변화다.
“어제까지 귤과 함께 한정판 1000개를 포장하고 발송했다”며 뿌듯하고 홀가분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감귤 재배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했다. 음악 작업만으로도 이미 충분한 에너지를 소모하는 뮤지션이지만 감귤 재배인 육체노동을 굳이 뛰어들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작년에 제주에 내려가서 어쩌다보니 우연한 기회에 제주 서쪽에 자리를 잡게 됐어요. 인연이라는 게 참 신기해요. 우연한 기회에 농사를 짓게 됐고, 주변 분들이 도움을 많이 주셨어요. 그곳에서 밭농사를 하는 친구들을 알게 됐고, 그게 점점 규모가 커졌죠. 주변 분들이 또 땅을 많이 빌려주셔서 5000평이나 되는 밭 농사를 하게 됐어요. 그래서 ‘음악을 못하겠다’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웃음) 그래서 귤 재배만 하자고 생각했고, 작년에 첫 수확의 기쁨을 맛봤죠.”
루시드폴의 음악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자신이 직접 경험한 일들에 대한 하나의 ‘기록’이라는 것이다. 어찌보면 전혀 연관성 없을 것 같은 귤재배도, 루시드폴에게는 직접적인 영향은 아닐지라도 음악 작업할 당시의 느낌이 그대로 담는다. 정말 친자연적이고 농산물적인 뮤지션이다.
“2년동안 지냈던 모습이 노래에 묻어있습니다. 가사에서 직접적으로 표현하지는 않더라도 전체적인 감정이 그렇다고 생각해요.”
왁자지껄하고 화려한 서울에서의 생활을 뒤로하고 한적하고 평화로운 제주도에서 새로운 터전을 잡게 된 루시드폴은 그곳의 생활이 꽤나 마음에 들어보였다. “차가 안 막히는 것 같아요. 조용하고, 만나는 사람들도 거의 없고 저와 와이프만 있죠. 그러다보니 밖에서 외식할 일도 없어요. 그렇게 음악을 듣고 곡을 쓰고. 완전히 바뀐 것 같아요.”
그리고 제주도에서 유일하게 자주 만난다는 이상순에 대해 말했다. “상순이랑은 그래도 제주도에서 비교적 많이 보는 편이죠. 올해는 많이 못 만났지만요. 2~3달에 한 번 정도? 저도 상순이도 일이 있다 보니 바빠진 것 같아요. (웃음) 서울에서 친구들이 가끔 내려와요. 그렇게 가끔씩 지인들을 보면 애틋한 것 같아요. 그래서 누군가를 오랜만에 만났을 때 굉장히 반가운 느낌이에요. 나쁘지 않아요.”
한창 인터뷰를 진행하던 중 루시드폴은 자신의 앞에 놓인 기타를 집어 들며 담담하게 노래를 불렀다. 아니 불렀다는 표현보다는 읊조렸다. 혹은 ‘써내려갔다’로 해석 하는 게 가장 어울리는 표현이다. 단 몇 분 만에 현장에 있던 기자들의 마음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이게 우리가 사랑하는 루시드폴이라고 감히 말해본다.
루시드폴은 이번 앨범에 동화도 함께 썼다. 이는 제주도에서 만났던 아이들을 위해서였다. 자신도 몰랐던 새로운 취미(?)를 알려준 ‘누군가를 위한,’. 즉 ‘아이들을 위한,’ 동화인 셈이다.
“제 글을 아이들이 좋아할지는 모르겠지만 아이들을 위해서였어요. 제주도에서 초등학교 저학년들에게 동화책을 읽어줬어요. 주로 그림이 많은 책들이었는데, 제 책은 별로 안 좋아할 것 같아요. (웃음) 시작은 아이들을 위해서가 맞아요.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면서 섞이는 방법을 처음 알았어요”
“그때 제가 아이들과 노는 걸 굉장히 좋아한다는 걸 알았습니다. 몰랐던 일을 알게 된 것 중의 하나였어요. 아이들도 저를 굉장히 좋아해주더라고요. 그게 계기가 돼서 동화책도 읽게 됐고, 번역 제안이 들어왔을 때도 흔쾌히 하겠다고 했습니다. 출판사에서 보낸 책도 아이들에게 선물 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아요.”
루시드폴은 2년마다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앨범을 발매한다. 이렇게 매번 2년마다 자신의 앨범을 탄생시키는 이유는 루시드폴만의 나름대로 확고한 규칙이 담겨있다.
“솔직하게 말씀 드리면, 2년보다는 더 자주 앨범을 낼 자신이 없어요. 하지만 2년이 넘어가면 뮤지션으로서 나태해진다고 봐요 2년이라는 게 어떻게 생각하면 길지만 앨범을 만드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거든요”
“이번 앨범도 올해 초부터 곡을 모으고 편곡을 하다보니 어느새 반년이 훅 지나갔어요. 온전히 남아있는 시간이 1년 반이예요. 그 사이에 많은 걸 봐야하고, 느껴야하고 음악도 들어야죠. 무엇보다 기타 연습도 해야하고요. 그러기엔 2년이란 시간이 너무 빠듯하죠. 그래서 제게 최소한의 공백기는 2년이라고 봐요”
“앨범을 많이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뮤지션으로 성장해야하고, 사람으로 성장해야 하잖아요. 그래서 제게 2년이라는 시간이 정규 앨범으로 봤을 때는 가장 알 맞는 시간이라고 생각해요.”
새삼스럽지만, 루시드폴의 이야기가 담긴 일곱 번째 앨범으로 그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시간이 갈수록 깨닫게 되는 것 중 하나가 ‘사람이 정말 다르구나’였어요. 음악을 듣는 방식도 다르고, 노래를 듣는 방법도 다르고, 노래 듣는 때도 다르고 너무 다 달랐어요. 그래서 아마 그 중에서 저랑 비슷한 정서와 유대를 가진 분들이 팬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분들은 곱씹으면서 제 음악을 들으실 거예요. 그냥, 루시드폴이 2년 동안 만들었던 노래와 준비했던 것들이라고 느껴주셨으면 좋겠어요”
“루시드폴의 팬이 아니고, 우연히 듣게 되는 분들에게는 큰 거부감이 없이 언제나 들을 수 있는 음악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일을 할 때, 글을 쓸 때, 설거지를 할 때 등. 늘 리프레시가 될 수 있는 음악이었으면 합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가사가 들리고. 그렇게 제 음악을 찾아서 들으실 수 있을 거예요. 이렇게 들어달라는 건 없습니다. 어쨌든 제 음악으로 어떤 하나라도 즐거움이 됐으면 합니다. 2년 후에 뵙겠습니다. (웃음)”
귀로 듣고, 눈으로 보고, 입으로 맛보는 그야말로 ‘공감각적’ 앨범이다. 그리고 상처 입은 사람들을 어루만져주는 루시드폴만의 남다른 스킬이 그대로 녹아있다. 단순히 음악만하는 사람이 아닌 누군가의 가슴에 스며드는 음악으로, 왜 음악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내려준다. 그 누군가를 위해, 담담하고 겸손하게 빛나는 앨범. 벌써부터 루시드폴의 다음 2년이 기다려진다. [사진=안테나 뮤직 제공]
김아름 기자 beauty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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